주간동아 994

2015.06.29

좁은 입지, 대회를 잃다

디오픈 첫 개최지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윅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nhy6294@gmail.com

    입력2015-06-29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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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2일 미국 US오픈이 태평양 연안의 링크스(links) 스타일 코스인 워싱턴 주 시애틀 인근 체임버스베이 골프장에서 막을 내렸다. 해안지역의 험준한 지형에 만들어진 링크스는 많은 골퍼를 힘들게 하지만 멋진 경관으로 골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코스다. 7월 중순에는 링크스의 대표격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브리티시오픈이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인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여전히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대 골퍼들에게 거의 잊힌 역사적 코스가 있다. 브리티시오픈이 처음 열렸으며 이후 24번이나 개최된 스코틀랜드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이다.

    얼마 전 프레스트윅 지배인 켄 굿윈으로부터 올여름 이 골프장을 이용하는 온라인 부킹(www.prestwickgc.co.uk)을 홍보하는 내용의 e메일을 받았다. ‘1860년 디오픈(브리티시오픈을 영국에선 이렇게 부른다) 개최지는 주중 150파운드(약 26만 원), 종일 이용권은 255파운드, 주말은 175파운드입니다. 디오픈의 발상지를 체험하는 색다른 경험입니다.’

    프레스트윅이 골프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지배인이 세일즈를 위해 한국 기자에게 홍보 e메일을 보낸 것 이상으로 크다. 이곳은 1851년 ‘골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올드 톰 모리스가 12홀 코스로 처음 만들었다. 1860년에는 처음으로 디오픈이 열렸으며 이후 1870년까지 매년 개최됐다. 6908야드(약 6km) 18홀 코스이고, 톰 모리스 부자와 윌리 파크가 우승을 겨루던 6개 홀 그린은 여전히 보존되고 있다.

    디오픈과 쌍벽을 이루는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오거스타내셔널은 1933년 개장 이래 한 곳에서만 매년 개최해 이제는 세계 최고 골프장이자 억만금을 줘도 못 가는 고급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디오픈 최초 개최지인 프레스트윅이 지금 판촉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디오픈이 생긴 계기는 당대 최고 골퍼를 가리기 위한 한 내기였다. 1859년 최고 골퍼로 추앙받던 앨런 로버트슨이 죽자 1860년 10월 17일 아침 공 좀 친다고 알려진 골퍼 8명이 프레스트윅에 모였다. 12홀 코스를 3회씩 도는 방식이었는데, 36홀 174타를 친 윌리 파크가 우승했다.



    이듬해부터는 톰 모리스 부자가 홈 코스 이점을 활용해 4번씩 우승을 나눠 가졌다. 아버지는 1861, 1862, 1864, 1867년, 아들은 1868, 1869, 1870, 1872년 각각 우승했다. 1870년 영 톰 모리스는 대회 3연패 후 매년 챔피언에게 수여하는 은장식이 달린 빨간 모로코가죽 벨트를 영구 소유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듬해인 1871년 디오픈은 챔피언벨트를 만들 돈 25파운드가 부족해 결국 대회가 무산됐다. 프레스트윅의 어떤 멤버도 돈을 내려 하지 않았던 것. 많지 않은 돈이지만, 당시 디오픈의 중요도가 그리 크지 않았을 수도 있고, 톰 모리스 부자가 너무 뛰어나 흥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한 해를 쉰 디오픈은 1872년 세인트앤드루스와 에딘버러의 아너오브컴퍼니가 우승 트로피 제작비를 공동 부담하면서 재개됐고, 오늘날의 ‘클라렛 저그’가 이때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1873년부터 디오픈은 세인트앤드루스로 옮겨갔으며 이후 프레스트윅, 세인트앤드루스, 머슬버러 골프클럽이 클라렛 저그 제작비를 분담하면서 순회 개최한다.

    1920년 디오픈 개최권이 세인트앤드루스의 영국왕립골프협회(R·A)로 넘어가면서 프레스트윅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1923년 코스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뮤어필드가 대회를 개최하기 어렵게 되자, 프레스트윅에 이웃한 로열트룬이 처음으로 디오픈 개최지로 선정됐다. 1925년 개최된 디오픈에서 좁은 장소 때문에 갤러리가 선수의 발을 밟는 사건이 생기자 프레스트윅은 이후 디오픈 개최지에서 영원히 배제된다. R·A가 자신보다 개최 역사가 오래된 골프장을 의도적으로 배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좁은 입지, 대회를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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