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2015.06.29

베이비부머 고령사회 거지 되나

금융자산 일본 단카이 세대 30% 수준…정부가 자산 형성 여력 제공해야

  • 곽영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fosyms@daum.net

    입력2015-06-29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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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는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해 2018년에는 ‘고령사회’(고령인구 비율 14%)로 진입한다. 2020년에는 일반 국민도 고령사회의 여파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다. 먼저 ‘베이비붐’ 세대가 문제다. 올해부터 정년퇴직이 시작되는 이들은 2020년 대부분 은퇴 상태가 된다. 그때가 되면 고령층의 소득과 소비는 감소하고 저축률은 하락하며 자산은 재조정될 것이다. 여기에 국가 전체적으로 부동산가격 하락 등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9년부터 집값 하락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어느 나라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은퇴자의 노후준비는 부족한 데 반해, 이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는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준비된 일본, 준비 안 된 한국

    고령화가 국가 경제에 미칠 가장 핵심적인 문제 또한 고령층은 급속하게 증가하는 데 반해 준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또한 고령화로 파생되는 사회경제적 영향이 일본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심지어 일본 단카이 세대(1947~49년생)의 은퇴가 가져온 일본 내 변화보다 더 심각한 파고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단카이 세대와 한국 베이비붐 세대는 큰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단카이 세대는 부자이나 베이비붐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실제 일본의 현재 고령층은 어느 연령층보다 많은 금융자산을 보유한 세대다. 65세 이상 고령세대가 전체 금융자산의 60%, 실물자산을 포함한 총자산의 80%를 보유하고 있다. 60대가 가장 많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70대는 보유액이 다소 줄지만 그래도 50대보다 훨씬 많다.



    더욱이 일본 고령자 가계는 소비지출의 70%를 연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서둘러 자산을 처분해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일본 고령자들은 평균 20년치 생활비를 유산으로 남긴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나서 상속세를 강화하는 대신 증여세를 완화함으로써 고령세대의 자산을 젊은 세대로 조기에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형편이다.

    반면, 국내 고령자 및 은퇴준비 세대는 보유자산의 규모와 구조 양쪽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국내 고령자와 은퇴준비 세대의 가계자산은 이웃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적다.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일본이나 대만의 절반도 안 된다. 2012년 중 1인당 금융자산은 한국이 5020만 원인 반면, 대만은 9310만 원, 일본은 1억7230만 원에 달한다(2012년 평균 환율 기준. 1대만달러=38.04원, 100엔=1413.14원 적용). 대만이 우리나라보다 1.95배, 일본은 3.5배 수준이다(그래프 참조).

    베이비부머 고령사회 거지 되나
    고령층에서는 금융자산 격차가 더 벌어진다. 우리는 50대에 가계자산이 최대가 되며, 60대의 금융자산 보유는 40대의 절반에 그친다. 40대에서는 한일 간 금융자산액이 비슷하지만 60대에는 일본이 우리의 4배에 이른다. 2020년 이후 국내 은퇴 세대는 재취업이나 실물자산 처분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때 자산가격의 급변동이 발생하면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령층일수록 가계자산 중 실물의 비중이 높은 점도 우리와 다르다. 국내 1인당 순자산(실물자산+금융자산-부채)은 대만에 약간 못 미치고,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이 자체는 큰 결함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의 경우 가계자산 중 부동산 편중이 너무 심하고, 고령화할수록 그 비중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부동산가격 변동 위험에 노출돼 있고, 유동화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가격의 추세적 하락 국면이 지속될 경우 리버스 모기지(주택연금) 등 고령화의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마저 쓰지 못하거나 쓰는 것이 제한될 우려가 크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50, 60대에도 여전히 과도한 가계부채를 안고 있다. 1인당 금융부채는 한국이 2310만 원, 대만이 2190만 원, 일본이 3920만 원으로 소득과 대비해볼 때 부채 수준은 조금 높은 정도지만 문제는 상환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금융자산÷부채비율로 보면 한국은 2.2배로 4.3배, 4.4배인 대만이나 일본의 절반에 불과하다(그래프 참조). 베이비부머의 은퇴 시점에 상환이 집중되면 고령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하는 것은 물론,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제시한 수치들이 ‘평균치’라는 점도 문제다. 다시 말해 부족한 재원마저 구성원에게 골고루 분배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소수에게 부가 집중할수록 고령화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우리의 경우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부의 불평등이 좀 더 심하다. 드러난 수치도 문제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 고령사회 거지 되나
    최고의 은퇴준비는 금융자산 만들기

    가계의 부족한 금융자산을 보강해주는 것이 고령화 대응의 핵심이다. 고령화와 가계자산 구성의 취약성 때문에 은퇴준비 세대를 중심으로 자산 포트폴리오의 재조정, 즉 적극적인 자산운용 압력은 저절로 커질 테고, 정책당국도 이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 이때 가계의 자산 및 부채 특성에 맞춰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물자산을 금융자산으로 원활하게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토지와 주식 등 자산가격의 하락으로 1000조 엔 이상 국부를 잃고, 이것이 다시 장기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진 사례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실물경제의 성장을 유지하고, 그 바탕 위에서 고령층이 부동산자산을 유동화해 현금흐름을 창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금융자산을 축적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또한 부동산금융제도 개선, 역모기지 활성화, 역외펀드 같은 다양한 금융상품 제공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가계부채 부담을 덜어 자산 형성 여력을 제공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충격을 주고, 이것이 다시 경기침체를 불러오는 악순환의 발생을 막아야 한다. 저금리·장기대출상품 제공 등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계부채 대부분이 부동산과 연계돼 있어 부동산가격 급락이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택 공급 조절 등을 통해 부동산가격의 추세적 하락을 억제해줄 필요가 있다.

    셋째, 정책당국은 세제나 제도 변경을 통해 금융자산의 형성을 촉진해야 한다. 이때 필요하다면 재정 투입을 고려해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재정건전성도 유지해야 한다. 재정은 고령화 대응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대응은 대규모 재정지출을 동반하는, 장기간에 걸친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대한 문제이자 세대 간 형평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다기한 문제다. 그러나 적절한 집행 시기를 놓치면 추후 더 큰 재정 지출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일본이 고령화 초기에 좀 더 과감한 재정·금융정책을 실시했더라면 재정적자의 고착화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하는 막대한 정부부채 문제를 완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의 기능도 중요하다. 금융기관은 가계의 금융자산 형성에 도움이 될 양질의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고령화 진전은 부실채권 증가를 야기해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저하하기 쉽다. 가계에 가해질 고령화 충격을 완화해야만 금융기관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자금 조달과 운용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동시에 금융자산의 축적과 관리를 통해 고령세대는 물론, 고령화시대에 저성장과 부담을 떠안게 되는 모든 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금융효율성을 높여야 할 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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