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2015.06.29

별난 놀이 큰 인기, 나를 감금해줘!

안대 쓴 채 방에 갇히는 순간 60분 카운트다운…탈출 게임 즐기며 연예인 기분 만끽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6-29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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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난 놀이 큰 인기, 나를 감금해줘!
    굳게 잠긴 철문이 늘어선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간다. 앞서가던 직원이 문 앞에서 멈춰 선다. 사진기자와 한 팀을 이뤄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휴대전화를 포함한 소지품을 꺼내 미리 맡긴다. 또 방 안에서 체험한 내용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이제 직원이 안대와 메모지, 필기구를 건넨다.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방 안에 들어서자 바깥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음성변조된 목소리로 지금 처한 상황과 해결해야 할 미션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들어선 방 테마는 ‘파파라치’. 지금 갇힌 곳은 이 시대 최고 여배우의 방. 우리는 이곳에 정치 스캔들의 증거를 수집하려고 잠입한 파파라치다. 안내 영상이 끝나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주어진 시간은 60분. 시간 내 미션을 해결하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방을 탈출해야 한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방 탈출 게임’을 체험했다. 말 그대로 제한 시간 내 방을 탈출해야 하는 게임이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던 게임을 현실 세계로 옮겨놓은 것이다. 체험 방마다 미션과 상황이 다르지만 주로 관찰력,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나온다. 이를테면 벽에 쓰인 힌트를 바탕으로 방 안에서 해당하는 아이템 수를 계산하고, 그렇게 만든 수식으로 도출한 결과가 맞은편 서랍 혹은 옷장의 자물쇠 비밀번호가 되며, 자물쇠를 열면 다음 미션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힌트가 주어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종합편성채널 JTBC ‘크라임씬’ 시리즈나 케이블채널 tvN ‘더 지니어스’ 시리즈에 나올 법한 미션이다.

    방 탈출 게임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오락이지만 동남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에선 ‘트랩 팩토리’ ‘스위트 이스케이프’ ‘이스케이프 헌트’ 같은 업체들이 감옥, 지하실, 정신병원, 피라미드 안 등 다양한 ‘감금 공간’을 만들어 플레이어들을 유혹한다. 국내에서 방 탈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서울 마포구 홍대 부근과 강남구 역삼동에 있다. 몇 주 간격으로 문을 연 두 업체는 콘셉트는 유사하지만 지점이나 분점이 아닌 개별 사업체다.

    문제 해결 자체에 흥미

    4월 마포구 서교동에 문을 연 ‘서울 에스케이프 룸’(대표 아르너 민)이 국내 최초의 방 탈출 게임 공간이다. 게임 참가는 1998년 이전 출생자만 가능하고 ‘스파이룸’과 ‘서재룸 1, 2’를 선택할 수 있다. 각 방은 2~4인용으로 인원수와 요일, 시간대에 따라 이용료가 달라진다. 1인당 1만2500~1만9000원이지만 피크타임인 평일 오후 6시 이후나 주말에는 1만7500~2만4000원으로 가격이 올라간다.



    5월 문을 연 강남구 역삼동 ‘코드 이스케이프’(대표 김태윤)에는 ‘파파라치’ ‘탐험가의 집’ ‘산업스파이’ ‘키드냅’ ‘동물원의 비밀’ 등 5가지 테마룸이 준비돼 있다. 동물원의 비밀은 연인과 가족에게, 여배우의 방을 테마로 삼은 파파라치는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난도가 가장 높은 테마는 산업스파이. 참고로 키드냅 테마의 경우 미성년자는 참가할 수 없다. 입장료는 3명 이상이면 1인당 1만8000원, 3명 미만이면 인원에 관계없이 4만4000원이다.

    두 업체 모두 특별히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만으로 두 달치 예약이 꽉 찼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방 탈출 게임을 체험한 젊은이들의 ‘간증’이 넘쳐난다. 젊은이들은 노래방, 영화관 같은 흔한 데이트 코스 외에 새로운 놀잇감을 반기는 분위기다.

    데이트 코스로 치면 1시간에 4만~5만 원이라는 적잖은 비용이 드는데도 이들이 자발적으로 감금을 즐기는 이유는 뭘까.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에서 추리 코드가 인기인 데다 요즘에는 복잡한 놀이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퍼즐 풀이, 탈출 미션 등을 TV 예능프로그램이나 영화를 통해 보고 즐기기만 하다 ‘나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쪽으로 발전한 것이다. TV에서 연예인들이 하던 게임을 직접 즐기니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신기한 느낌도 받는데, 이런 부분이 이 게임의 인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문제해결 자체에 흥미를 느낀다. 특히 범죄나 추리소설, 영화 속에 자주 나오는 상황에 처해졌을 때의 경험 자체와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지적능력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범죄물 같은 장르 영화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를 직접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는 것도 매력 요인으로 꼽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태윤 코드 이스케이프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인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 연구소 출신이다. 싱가포르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할 때 방 탈출 게임을 접하고 국내에 도입했다. GSK에선 팀워크 향상을 위해 회식 대신 직원들이 함께 방 탈출 게임에 참가하기도 했다.

    별난 놀이 큰 인기, 나를 감금해줘!
    중학생이 성인보다 더 잘 풀어

    “외국계 회사들은 ‘팀 빌딩’ 문화가 강하거든요. 아직까지 일반인 체험자가 더 많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국내 기업체 회식 문화를 음주에서 게임으로 바꿔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주중 8인 이상 단체 고객에게는 입장료 할인 혜택을 드리고 있어요.”

    게임 공간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서는 테이블 위 캐스트 퍼즐을 풀면서 음료를 할인받을 수 있고, 게임하는 일행을 기다리거나 게임을 마치고 나오면 소품을 활용해 인증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카페를 포함한 전체 공간이 게임룸인 셈이다.

    “2030세대가 주로 찾는데 용돈을 모아 게임하러 오는 청소년도 많아요. 중학생이 성인보다 잘 풀고, 고등학생은 자꾸 학습 과정에 접목시키려고 해 문제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게임에 팀워크가 필요하다 해도 5명 이상이 한 방에서 플레이하는 건 추천하지 않아요. 사공이 너무 많으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거든요.”

    모두가 탈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탈출 성공 확률은 10~20%밖에 안 되는데 오히려 이런 점이 도전정신을 자극한다. 업체 관계자는 “하루에 5가지 방을 모두 체험하고 가는 손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기본적으로 10명 중 1명꼴로 탈출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놨어요. 탈출에 쉽게 성공하면 흥이 떨어지고 도전정신이 감소하거든요. 못 풀어서 자책하기보다 푸는 과정을 즐겼으면 해요. 방 탈출에 성공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아니다 싶으면 빨리 방향 전환을 해야 해요. 정 안 되면 함께하는 플레이어의 이야기를 듣거나, 직원 인터폰 찬스를 활용해보세요. 남의 도움을 받는 것도 미션 클리어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도움받는 걸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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