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2015.06.22

거미로 표현된 모성애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입력2015-06-22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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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로 표현된 모성애

    ‘마망(Maman)’, 루이즈 부르주아, 1999년, 927.1×891.5×1023.6cm, 청동·대리석·스테인리스 스틸.

    어린 자녀를 걱정하는 ‘앵그리맘’의 모성애가 화제가 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가 1999년 제작한 대형 청동 거미입니다.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38년 미국으로 이주해 70여 년간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한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마망(Maman)’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높이가 9m가 넘고 지름이 10m가량 되는 원형 바닥 위에 8개의 거미 다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청동으로 제작한 다리는 마치 울퉁불퉁한 힘줄이 솟은 듯 매우 힘차게 돌출돼 있어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8개의 거미 다리 끝은 예리합니다. 마치 땅속으로 파고들 것 같습니다. ㄱ자 형태로 꺾인 8개의 다리는 각각 2개 조각들로 연결돼 있는데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리는 두꺼운 원형 스테인리스 스틸 몸체와 단단히 연결돼 있고, 몸체 상단에는 동그란 피라미드 모양의 몸통이 맨 위로 돌출돼 있습니다.

    거미 몸통 아래에는 알주머니가 왼쪽으로 쏠려 있습니다. 거미가 막 오른쪽 방향으로 이동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주머니는 안이 들여다보이는 투각 형식이며, 그 속에 럭비공만한 크기의 하얀 대리석 알 12개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질감이 매우 부드럽고 매끈합니다. 알을 보호하려는 어미 거미의 모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거미 다리 가운데 화면 오른쪽으로 가장 많이 뻗어 있는 다리가 앞쪽이고, 1번 다리라고 부릅니다. 작품을 설치할 때 이 다리를 기준으로 작품의 방향과 각도 등을 정하고 도면 작업을 수행합니다.

    무게 2.5t의 대형 거미 조각을 설치하는 작업은 볼만합니다. 대형 크레인 2~3대가 공중에서 동시에 거미 몸체 1개와 다리 8개를 결합하는 작업이라 위험할 뿐 아니라, 정밀함까지 필요합니다. 특히 공중에서 결합된 거미 몸체를 바닥에 내려놓을 때 8개의 다리가 미리 설치한 바닥 홈과 정확히 맞아야만 설치가 완성됩니다.



    작가는 왜 이토록 큰 거미를 제작했을까요. 우리 정서상 거미는 조금 징그럽고 꺼려지는 곤충이지만, 생물학적으로 거미는 모성애를 상징합니다. 거미는 자식들의 먹이로 자기 몸을 내주거나, 다른 동물이 자식들을 해칠 것 같으면 역시 몸을 던져 자식들을 구한다고 합니다. 작품명 ‘maman’은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이죠.

    부르주아는 평생 모성애를 담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불행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작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문제들, 어려움과 난관, 그리고 불행과 슬픔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데 여성적인 따뜻함, 부드러움, 포근함 등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죠. 이런 생각을 작품 속에 투영하려 노력했습니다.

    ‘마망’은 총 6점(edition)이 제작돼 전 세계 명소에 설치됐습니다. 사진 속 작품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된 ‘마망’의 모습입니다. 이 밖에도 일본 롯폰기 모리 빌딩, 캐나다 국립미술관과 서울 이태원로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마망’이 있습니다. 부르주아는 ‘마망’보다 작은 거미 작품을 ‘스파이더(Spider)’라고 명했는데 역시 6점이 제작됐고, 그중 2점이 한국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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