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2015.06.08

군대 다녀오면 총리 못 된다?

참여정부 이후 배출된 총리 10명 가운데 6명이 ‘병역 불이행’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06-08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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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다녀오면 총리 못 된다?

    고건, 이해찬, 한명숙, 정운찬, 김황식 전 국무총리(왼쪽부터).

    “의원님은 6선 의원에 장관, 경기도지사까지 역임했는데 이번 기회에 총리에 지명되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군대에 다녀와서 총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네? 군대 다녀오면 총리를 못 하나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낙마한 뒤 후임 총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던 5월 초, 충청 출신 인사들과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이 사석에서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다.

    이 의원은 13대와 14대, 16대부터 19대까지 6선을 기록했고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과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또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자유민주연합 부총재 겸 총재권한대행, 국민중심당 최고위원,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장, 선진통일당 당대표를 지냈고 현재는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있다.



    여야 지도부를 두루 경험하고 장관과 광역단체장을 거쳐 6선을 기록한 이 의원에 대해 잦은 당적 변경을 이유로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이 의원만큼 ‘총리 스펙’을 잘 갖춘 이도 드물다는 얘기가 동시에 나온다. 그런 이 의원이 자신의 ‘군필’을 총리 발탁 결격사유로 꼽은 이유는 뭘까. 당시 모임에 동석했던 한 인사는 “이 의원이 웃으며 농담처럼 자신이 ‘군필’이라 총리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최근 총리에 발탁된 인사들이 대부분 군 미필자라는 점을 에둘러 꼬집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총리 지명의 필요조건?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는 동안 역대 총리 가운데 병역을 이행한 총리보다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총리가 더 많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정운찬, 김황식 전 총리, 그리고 최근 지명된 황교안 총리 후보자 모두 ‘군 미필’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필 총리가 잇따라 나오면서 정가와 관가에서는 “국방의무 불이행이 마치 총리 지명의 필요조건처럼 돼버렸다”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나온다.

    실제 노무현 정부 이후 현재까지 총리를 역임한 9명의 전직 총리 가운데 병역의무를 마친 이는 3명뿐이다. 노무현 정부 때 한덕수 총리와 이명박 정부 때 한승수 총리,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정홍원 총리 3명이다. 이완구 전 총리는 보충역으로 1년간 군 복무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고건 전 총리는 20세 때인 1958년 제1보충역 판정을 받았지만, 만 40세 때인 1978년 ‘고령’을 이유로 병역의무가 종료됐다.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13회로 합격한 고 전 총리는 고령으로 병역의무 종료 이전(1978)까지 내무부 새마을담당관, 강원도부지사, 내무부 지방국장, 전라남도지사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고 전 총리에 이어 총리 바통을 이어받은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돼 병적이 제적돼 병역을 이행하지 못했고, 한명숙 전 총리는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로 병역의무가 없는 경우였다.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로 재임한 한덕수 전 총리가 유일하게 육군 병장으로 전역해 참여정부 유일한 군필 총리로 기록됐다.

    ‘기관지확장증’으로 대통령 자신이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 재임 때는 3명의 총리 가운데 2명이 군 미필 총리였다. 이명박 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한승수 전 총리만이 육군 중위로 전역해 유일한 군필 총리였다. 정운찬 전 총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외아들(부선망독자)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70) 후 한국은행에 1년 정도 다니다 곧바로 유학을 떠나, 미국 마이애미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1972), 미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1976)를 받고 30대 초반이던 1978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정 전 총리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한 인사는 “당시는 군 복무 기간이 3년 가까이 되던 시절”이라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군에 가지 않으면 그만큼 더 빨리 사회에 진출할 수 있어 ‘군 면제’가 큰 특혜로 인식됐다”고 회고했다.

    군대 다녀오면 총리 못 된다?
    ‘군 면제’는 큰 특혜

    정운찬 전 총리 후임으로 총리 바통을 이어받은 김황식 전 총리는 양쪽 시력이 다른 ‘부동시’를 이유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정홍원 전 총리는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군필 총리다. 총리에 오른 지 63일 만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물러난 이완구 전 총리는 ‘부주상골’을 이유로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이 전 총리는 자신이 보충역 판정 당시 찍었다는 엑스레이 검사 기록까지 제시하며 보충역 판정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부주상골은 발목에 있는 일부 뼈가 붙지 않아 심해지면 평발 변형을 불러올 수 있는 증상이다.

    이완구 전 총리에 이어 지명된 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만성담마진’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가려움을 수반하는 진피 상층의 국한성 부종’을 뜻하는 담마진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예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은 “지난 10년간 담마진으로 면제받은 사람이 병역 대상자 365만 명 가운데 4명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도 “‘담마진은 가려움증을 말하는데, 6개월 정도 가렵다고 긁으면 군대 면제되는 것이냐’고 묻는 문의전화가 걸려온다”며 “그렇게 가려웠느냐”고 묻기도 했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만약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총리에 오르면 참여정부 이후 10번째 총리로 기록된다. 그와 동시에 10명의 총리 가운데 여섯 번째 ‘미필 총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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