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0

2015.06.01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오베라는 남자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5-06-01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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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452쪽/ 1만3800원

    매일 아침 6시 15분 전 눈을 뜬다. 그는 평생 자명종이라곤 가져본 적이 없을뿐더러 자명종이 울리지 않아 늦잠을 잤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침마다 여과기에 똑같은 양의 커피를 넣는다. 컵 두 개에 한 잔씩 따르고 나면 주전자에 딱 한 컵 분량이 남을 만큼만. 커피를 내리는 동안 동네 시찰을 나간다. 거주 지역 내에 자동차가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알리는 교통 표지판이 제대로 서 있는지, 자전거보관소가 아닌 곳에 세워둔 자전거는 없는지, 24시간만 주차할 수 있는 구역에 시간을 초과한 차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의 재킷 주머니엔 모든 차량번호를 꼼꼼히 적어놓은 작은 수첩이 있다. 전날 적어둔 번호와 비교해 같은 번호가 나오면 당장 조치를 취한다.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에게 이건 ‘원칙’ 문제이기 때문이다.

    40년 동안 같은 집에 살며, 평생 같은 차종(사브)만 몰고, 한 세기의 3분의 1을 같은 직장에 다니고, 매일 같은 일과를 되풀이하는 ‘오베’라는 이름의 남자. 하지만 59세가 된 오베의 삶에 균열이 생겼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가 딱 맞게 내린 커피를 함께 마셔줄 사람이 없다. 아내의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그는 ‘평화로운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자살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사방에서 출근하지 않는다면 세상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아내는 금요일에 죽었고, 일요일에 묻혔으며, 그는 다음 날 출근했다. 그것이 오베 방식이다.

    하지만 6개월 뒤 월요일, 지각을 한 적도 없고 병가를 낸 적도 없는 그에게 직장의 젊은 관리자가 이렇게 말했다. “좀 느긋하게 살면 좋지 않아요?”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 연금으로 살면서 집에 들어앉아 죽을 때만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그럴 순 없다. 오베는 죽기로 결심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변호사를 불러 유언장을 썼다. 장의사에게 미리 돈을 내고 교회묘지 아내 옆에 묻히기로 했다. 청구서를 다 납부했다. 주택융자도, 빚도 없다. 전화와 신문구독도 끊었다. 컵도 씻어 놓았다. 이제 천장에 고리를 박고 밧줄을 걸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오베 건너편 집에 이사 온 ‘얼간이’ 가족이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누르며 그의 평화로운 죽음을 방해한다. 멀대 같은 남편은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고, 아내는 염치없는 부탁만 하고, 어린 두 딸은 따박따박 말대꾸를 한다. 게다가 네 식구로도 모자라 이웃집 여자 배 속에는 곧 출산할 셋째아이가 있다. 이 성가신 가족을 어떻게 떼어낼 것인가.

    소설은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고 싶은 오베와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의 죽음을 방해하는 ‘개념 없는’ 이웃들 이야기다. 그런데 꼬장꼬장하고 까칠한, 웬만해선 길에서 마주치고 싶지도 않은 노인네가 알면 알수록 이웃을 챙기는 속 깊은 ‘상남자’였고, 개념 없는 줄로만 알았던 이웃들도 그런 오베를 좋아하고 지지하면서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렇다. 동네마다 ‘오베’는 한 명씩 있다. 우리는 흔히 그런 이를 ‘꼰대’라 부른다. 하지만 누구도 ‘꼰대’ 마음속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스웨덴의 무명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은 그것을 멋지게 해냈고, 스타가 됐다.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김동욱 지음/ 김영사/ 360쪽/ 1만7000원


    동아시아 건축물의 공통점은 지붕이 건물에 비해 크고 곡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 건축물은 엄격한 대칭을 강조하고, 한국은 자연스러움을, 일본은 실내 공간에 집중하는 차이를 보인다. 서로 다른 듯 닮은 한중일 건축물을 비교하고 조형미와 기능성의 득실을 따졌다. 또 한국 전통 난방인 구들이 일본에 전파됐으나 정착하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상호 교류를 통해 이뤄낸 동아시아 건축의 성취를 정리했다.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한정주 지음/ 다산초당/ 704쪽/ 3만3000원


    조선 선비는 부모와 스승이 지어준 이름(名), 관례를 치르고 짓는 이름(字), 자신이 뜻한 바나 의미 있는 사물 또는 장소에 따라 지은 이름(號) 등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았다. ‘명’과 ‘자’가 타고난 운명이라면 ‘호’는 자신의 의지와 사상, 성격이 담긴 개성적인 삶의 지표였다. 저자는 조선시대부터 오늘까지 역사 흐름을 꿰뚫는 키워드로서 ‘호’를 분석했다.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주원섭 지음/ 자연과생태/ 376쪽/ 1만6000원


    서늘한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산나물, 깊은 산속 곰이 먹는다 해서 곰취. 34년간 군 생활을 마치고 예편한 저자는 숲해설가로 변신해 ‘곰취와 숲 나들이’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 아내 별명은 ‘각시취’. 숲을 평생 사무실로 삼고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부부가 7년 넘게 매일 숲에서 만난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철학이 있는 식탁

    줄리언 바지니 지음/ 이용재 옮김/ 이마/ 376쪽/ 1만7000원


    금요일엔 포장 음식을 사다 먹고, 일요일 아침엔 생산자 직거래 장터에 가며, 저녁엔 지역에서 재배하는 채소를 먹고, 다음 날엔 수입 오렌지주스와 커피를 마시며 저혈당 빵에 고지방 치즈를 먹는 당신. 아무런 원칙도 없이 유행, 상식, 주워들은 의견, 편견, 합리화한 욕망으로 뒤죽박죽된 당신의 식탁을 철학자가 정리해준다. 먹는 법을 아는 것이 곧 사는 법을 아는 것.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사물인터넷 전쟁

    박경수·이경현 지음/ 동아엠앤비/ 282쪽/ 1만5000원


    모바일 이후 사물인터넷이 정보기술(IT) 트렌드를 주도할 것이라 하지만 정작 사물인터넷의 실체를 정확히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책은 전통적 강호인 제조사, 신경망을 갖추고 재도약을 꿈꾸는 통신사, 스마트폰 생태계의 승자인 플랫폼, 블루오션을 만난 솔루션 사업자 등 4개 그룹의 사물인터넷 준비 현황과 전략을 소개한다.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천국여행

    미우라 시온 지음/ 민경욱 옮김/ 블루엘리펀트/ 274쪽/ 1만2000원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배를 엮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등으로 큰 호응을 얻은 미우라 시온의 단편집. 장모 병수발에 아들의 오토바이 사고로 급전이 필요한 아내가 “당신이 죽으면 보험금이 나올 텐데”라고 하자 충격을 받은 남편, 유령을 보는 남자와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죽은 여자친구 등 출구 없는 나날에 갇힌 이들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밝혀주는 7가지 이야기.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 1, 2

    유경순 지음/ 봄날의박씨/ 1권 720쪽, 2권 544쪽/ 1권 2만5000원, 2권 2만3000원


    한국 현대사에서 ‘혁명의 시대’라 부를 정도로 변혁에 대한 열망이 폭발했던 1980년대를 노동운동사 중심으로 재조명한 책. 1권은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던 변혁적 노동운동과 그 추동 주체인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 그들이 만든 정치조직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정리했다. 2권은 노회찬, 심상정 등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 50여 명의 육성을 담았다

    원칙대로 살다 평화롭게 죽기
    뜻밖의 미술

    제니 무사 스프링 엮음/ 손희경 옮김/ 아트북스/ 180쪽/ 1만8000원


    지난해 가을 서울 석촌호수에 등장한 거대한 오리인형. ‘러버덕’이라 부르는 이 오리인형은 네덜란드 출신 현대미술 작가 플로렌테인 호프만의 대표작으로 11개국 20개 이상 도시를 순회했고 서울에는 딱 한 달간 머물렀다. 책은 이처럼 미술관 밖으로 나온 예술을 소개한다. 건물 벽에 매달린 오두막, 벽지 바른 쓰레기통, 손뜨개 산호초 등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유쾌한 웃음을 전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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