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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남자

점으로 표현된 해, 달, 별, 우주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점으로 표현된 해, 달, 별, 우주

점으로 표현된 해, 달, 별, 우주

‘호박’, 구사마 야요이, 2013년, 제주 본태박물관 소장.

이번 주부터는 주요 미술관의 현대 작품들을 감상해보려 합니다. 여러분 앞에 큰 사각형의 방이 있고 거기에 어른 키만한 호박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이 호박은 강한 플라스틱의 일종인 FRP로 제작됐습니다. 보통 호박은 둥글넓적한데, 이 호박은 파프리카처럼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피망처럼 보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현대미술 작가로 꼽히는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입니다. 구사마는 1929년생으로 올해 86세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 많은 이를 놀라게 합니다.

작품 주인공인 호박은 노란색 바탕 위에 크기가 각기 다른 원형의 검은 반점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두 손으로 호박을 만질 때 울퉁불퉁 느껴지는 표면에서 가장 높게 솟은 곳에는 큰 점들이 마치 구슬처럼 세로로 길게 나열돼 있습니다. 표면에서 골짜기처럼 내려가는 곳에는 점점 더 작은 점이 무수히 표현돼 그야말로 점투성이인 작품입니다. 이런 점들은 호박 표면뿐 아니라 전시장 바닥과 벽면, 천장 등 보이는 모든 표면에 빼곡히 표현돼 있습니다. 그래서 구사마를 ‘땡땡이 작가’ 또는 ‘닷 아티스트(dot arti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 호박은 무엇이고, 수많은 원형의 점은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집니다. 구사마는 씨앗을 판매하는 종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꽃과 과일들에 친숙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좀 특이하죠. 그중에서 특히 호박을 좋아했습니다. 수수한 호박과 자신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10대 때부터 수십 년간 지긋하게 제작해온 호박이 이제는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명품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수수한 호박도 예술로 승화하면 멋진 명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자신도 그러한 것처럼.

구사마는 열 살 즈음 어느 날, 식탁보에 수놓아진 꽃문양을 유심히 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집 안을 봤는데, 시각적 잔상의 여운으로 집 안이 온통 꽃무늬로 가득 차 보였다고 합니다. 백열전구를 유심히 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때 보이는 둥근 잔상처럼, 식탁보에서 봤던 그 꽃무늬가 동그란 원형의 모습으로 집 안 가득히 죽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잔상효과를 섬세한 예술적 시선으로 잘 포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작품 속에 보이는 무수한 점은 해와 달, 별과 우주를 상징하기도 하고, 구사마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치료제이기도 합니다. 정신병원과 스튜디오를 매일 오가며 치료받는 구사마에게 원을 통한 창작 활동은 일종의 자가치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을 보는 이들도 마음이 환해지고 평온해진다고 합니다. 그의 치료제가 전이되는 듯합니다.

그의 작업은 순수예술뿐 아니라 패션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루이뷔통 등 명품업체와 협업해 각종 가방과 의상, 액세서리, 그리고 백화점 윈도 디스플레이에 그의 이미지들이 광범위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는 이 작품은 제주도에 있는 본태박물관의 소장품입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본태박물관은 요즘 새로운 문화 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일본 나오시마 등에도 유사한 호박 작품이 있지만, 굳이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제주에서 구사마 작품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입력 2015-05-26 11:29:00

  •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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