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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뿌리 뽑힌 도시 난민 03

영국·미국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

삶의 터전 지키고, 획일화 거부하는 원주민 실천이 변화 열쇠

영국·미국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

1964년 영국 도시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는 런던 도심의 황폐한 노동계급 주거지역에 중간계급이 진입함으로써 지역 경관이 업그레이드되고 노동계급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명명했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담긴 최초의 문제의식이 도시 변화에 내재하는 계급 역학을 규명하는 것이었음을 알려준다.

당시 글래스는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로 첼시와 햄프스테드를 비롯한 런던 서부 지역들을 지목하면서, 극도로 낙후하고 황폐한 이스트엔드는 아직 무사하다고 했으나 이후 런던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브릭레인, 혹스턴, 달스턴 등 이스트엔드 지역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아 이뤄지는 양상을 보였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산층 백인이 대거 교외로 이주하면서 도심 쇠퇴와 공동화가 급격하게 진행됐고 뉴욕, 보스턴, 시카고 등 대도시 도심은 남부에서 온 흑인들과 동유럽 이민자들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게토로 변해갔다. 미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러한 도심 지역에 백인 중간계급 소수 분파가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주류 사회에 대항하는 대안적 가치를 중시하고 문화적 소양이 있으며 진보적 정치성향을 지닌 이들이 백인 일색인 교외의 획일성과 보수성에 염증을 느끼고, 사회적 다양성과 도시생활의 진정성, 그리고 저렴한 임대료를 좇아 도심으로 이주를 감행한 것이다.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 미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중간계급 급진주의자들의 전위적 실천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문화다. 도시사회학자 샤론 주킨(Sharon Zukin)에 따르면 1950년대 미국의 산업구조조정 이후 로어맨해튼 지역에는 방치된 창고와 공장이 넘쳐났다. 이러한 공간은 자연스레 예술가나 기타 창의산업 노동자들에 의해 값싼 작업 및 주거공간으로 사용됐다. 이 과정에서 지역 성격이 공업지역에서 주거 및 창의지역으로 변형됐고, 이는 본의 아니게 자본의 본격적 유입과 부유층의 이주를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처럼 값싼 작업공간을 찾아 예술가들이 어떤 장소에 정착하고 그들의 활동을 통해 지역의 문화가치가 상승하면, 개발자들이 들어와 이윤을 획득하는 방식은 현재까지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쿨한’ 중산층의 도심 진입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처럼 두 단계를 거쳐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단계에서는 예술가나 장인들이 자신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제 손으로 직접 낙후한 건물 및 지역의 미화를 수행한다. 이것을 고전적 젠트리피케이션 또는 개척자 젠트리피케이션이라 한다. 이어서 개발자 주도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대자본이 투입되면서 표준화하고 획일화한 젠트리피케이션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영미권의 젠트리피케이션 경향은 첫 번째 단계가 생략되고 두 번째 단계로 직접 돌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부 진보적 중간계급 성원들의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도심 주택 개량을 의미하던 젠트리피케이션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기획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로 변질된 것이다. 이를 지칭하는 말이 슈퍼젠트리피케이션과 신건축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전자는 공공임대주택이나 기타 노동계급주거지를 최고급 주택단지나 상업시설로 대체하는 것을 뜻하고, 후자는 나대지나 버려진 산업용지에 대규모 주거시설이나 상업시설을 짓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런던 매너하우스는 전자를, 배터시는 후자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백인 고소득층의 집단적 도심 이주는 유색인종과 하층계급을 도심에서 추방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초기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도심의 사회적·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중간계급의 매혹이었는데, 원주민인 유색인종과 하층계급이 임대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전치’되는 상황에서 애초의 사회적 혼합은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백인 중간계급 인구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도심은 사회적 불평등의 공간으로 전화한다.

뉴욕, 런던, 시드니 등 서양 대도시는 이제 간호사, 교사, 경찰 등 중간 수준의 임금생활자조차 살기 버거운 곳이 돼가고 있다. 도심 생활이 이처럼 소수 고소득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면서 도심의 사회적 구성은 점점 더 동질화돼간다. 교외의 획일성이 도심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견인차는 미학이다. 그런데 미학을 강화할수록 도심은 관광지가 돼간다. 특히 노동계급의 거리문화가 스펙터클로 전화하면서 참혹했던 슬럼의 흔적들은 트렌디한 카페 옆에서 위험을 탈각한 시각적 쾌락의 대상으로 거듭난다. 산업사회 유물인 창고와 공장건물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거주지를 거쳐 부유층의 ‘힙한’ 주거공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구획되지 않은 내부와 벽돌이 드러난 벽면, 높은 천장 등으로 대표되는 ‘뉴욕 로프트’ 스타일은 도시적 ‘쿨함’의 상징이 돼 세계적 차원의 복제 대상이 된다.

1~2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은 소수 전문가 외에는 거의 언급하지 않을 만큼 전문 용어에 가까웠다. 그러나 몇 개월 사이 이 말은 사회적으로 초미의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됐다. 사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국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이미 10년 이상 거세게 진행돼왔다. 1990년대 이후 쉼 없이 변화와 확장을 지속해온 서울 홍대 앞을 비롯해 2000년대 이후 ‘핫플레이스’로 등극한 북촌, 가로수길, 서촌, 경리단길, 해방촌, 성수동, 우사단길 등 많은 장소가 한국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웅변한다.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미래

물론 구체적 양상은 앞서 언급한 미국이나 영국 사례에 비춰볼 때 상이하다. 첫째,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한국 도심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게토화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공간보다 상업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셋째, 영미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중요한 인종 문제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의 장소들이 예술가, 장인, 소규모 생산자 및 기업가들의 자발적 미학을 통해 활력을 얻었다는 점, 자본의 진입으로 획일화됐거나 획일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점, 애초 자신의 땀을 투여해 장소를 만든 사람의 상당수가 자기 노력의 결과로 올라간 임대료 때문에 다른 곳으로 전치됐다는 점, 그리고 도심이 삶의 터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내외국인을 위한 관광지가 돼간다는 점 등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섣불리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보다 먼저 이를 경험한 선진국들도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젠트리파이어’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젊은 예술가와 기업가들의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서울 마포구 당인동에서 ‘그문화다방’을 운영하는 문화기획자 김남균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을 결성해 세입자권리운동을 펼치고, 문화예술공간 ‘000간’은 의도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불가능한 종로구 창신동의 비좁은 언덕길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과거 홍대 앞,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소위 ‘핫플레이스’로 모여들던 예술가들이 창신동이나 중랑구 상봉동 등 주변으로 퍼져나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여지를 만들지 않으려 하는 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한 학습효과일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이 알려지기 전 행동패턴에 비해 좀 더 성찰적 접근이 가능할 것임은 예상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세력과 그것을 피하고 방지하려는 세력 간 투쟁이 향후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입력 2015-05-26 10:33:00

  • 이기웅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 연구교수 keew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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