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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안 풀리네~ 도로명, 지하철역명 분쟁

이해관계 얽혀 진흙탕 싸움…의견 수렴하고 장기적 가치 내다봐야

안 풀리네~ 도로명, 지하철역명 분쟁

안 풀리네~ 도로명, 지하철역명 분쟁

서울메트로 9호선 봉은사역 역명에 대해 지금도 논쟁이 뜨겁다.

새 도로명, 지하철역명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2014년 11월 19일 도로명주소법이 전면 개정 시행된 후 전국 도로명 16만1321개 중 705개가 변경됐다.

도로명과 지하철역명 개정 절차는 꽤 까다롭다. 도로명을 개정하려면 해당 주소 사용자의 20% 이상이 관할 시장 등에게 신청하고, 도로명주소위원회가 변경 사유와 새 도로명에 대한 주민 의견을 심의한 후 도로명 변경이 확정되면 다시 해당 주소 사용자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 결정된다. 서울 지하철역명 개정은 자치구나 기관이 개정을 요구하면 자치구 주민과 지명위원회, 해당 지하철공사의 의견을 수렴해 서울시 지명위원회가 동의하면 서울시 교통정책과가 최종 결정한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에도 도로명과 지하철역명을 둘러싼 이권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반대 목소리가 큰 사안은 3월 28일 개통한 서울메트로9호선운영㈜이 운영하는 9호선 봉은사역의 역명이다.

반대 여론 중심에는 ‘한국교회연합’(한교연)과 ‘코엑스역명추진위원회’(추진위)가 있다. 한교연은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봉은사역명 사용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봉은사’라는 이름이 역명 제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세부 내용을 보면 ‘역명 제정 기준은 역사에 인접한 문화재 명칭을 사용하는 것인데 봉은사는 문화재청에 등록된 사찰이 아니며, 역명은 이전 우려가 없고 고유명사화된 주요 공공시설명을 사용하게 돼 있는데 봉은사는 공공시설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또 박 시장이 2007~2010년 봉은사 미래위원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이해당사자가 종교적으로 편향된 행정을 강행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역사성 살려야”…실제론 종교 갈등

하지만 봉은사 측은 “박 시장과 봉은사는 사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봉은사 홍보실 관계자는 “박 시장은 행정전문가로서 봉은사 미래위원장을 역임한 것일 뿐이다. 봉은사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봉은사역명 제정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추진위는 봉은사역명 제정에 대한 온라인 투표 과정이 왜곡됐다고 강조한다. 2014년 1월 1~

15일 강남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는 봉은사역 1위(60.5%), 코엑스역 2위(35%), 아셈역

3위(4.5%)였다. 김상호 추진위 위원장은 “투표 기간에 봉은사 홈페이지에 온라인 투표를 독려하는 배너가 있었고 배너는 강남구청 홈페이지로 연결됐다”며 “1차 오프라인 설문에서는 코엑스역이

1위로 앞섰는데 결과가 뒤집혔다. 봉은사에 의한 여론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봉은사 측은 이를 강하게 반박했다. 봉은사 홍보실 관계자는 “봉은사 신도들에게 투표를 의무화한 적이 없다. 그리고 봉은사 홈페이지 방문자들이 강남구청 홈페이지에 몰려가 투표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의 ‘차범근로’ 지정은 인근 사찰에서 반발해 무산된 경우다. 화성시는

5월 중 오산·화성·수원을 관통하는 서부로 중 5.2km 구간에 ‘차범근로’라는 명예도로명을 붙일 예정이었다.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의 고향이 화성이란 사실을 널리 알려 화성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자는 취지였다. 화성시청 토지정보과 관계자는 “명예도로 제정을 놓고 차범근 전 감독을 설득하는 데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로 인근 용주사 측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융·건릉과 신라시대 지어진 고찰 용주사의 역사성을 볼 때 개인 이름을 딴 명예도로명은 적절치 못하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용주사는 인근에 ‘용주로’가 있는데도 차범근로 제정을 원치 않았다”는 게 화성시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후 용주사와 화성시청이 팽팽하게 맞서자 차 전 감독이 “차범근로 제정을 사양하겠다”고 밝혀 화성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차범근로 제정 취소가 공식화된 후 5월 19일 용주사 기획국장인 법진 스님은 BBS 불교방송 ‘양창욱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서부우회로 중 일부 구간을 다른 이름 없이 ‘차범근 명예도로’로만 쓸 뻔했다” “(차범근 전 감독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우리는 종교적인 문제로 접근하진 않았지만, 화성문화원장 하는 분하고 그쪽(기독교 측면)에서 얘기가 돼서 (화성)시장님께 이야기를 해 (차범근 명예도로) 추진이 됐다는 말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가 문의한 결과 화성시청 관계자와 화성문화원장의 주장은 달랐다. 화성시청 관계자는 “용주사 측에서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도로명은 서부우회로가 아니라 서부로고, 차범근로는 서부로라는 공식명에 별칭처럼 추가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고정석 화성문화원장은 “내가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행정 사안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처리하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사실 확인도 안 된 정보를 ‘그렇다더라’는 식으로 막말을 하면 어떡하느냐”고 언짢아했다. 이에 대해 용주사 측은 “법진 스님이 ‘다 끝난 일’이라며 더는 인터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답변만 전해왔다.

안 풀리네~ 도로명, 지하철역명 분쟁

한국교회연합이 서울메트로 9호선 봉은사역 역명 철폐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지역 이기심으로 주소 쉽게 바꿔

도로명 새 주소도 진통을 겪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욕심은 아파트 도로명 주소까지 쉽게 바꾼다. 서울 송파구 잠실레이크팰리스 아파트의 주소는 기존 ‘잠실동 44번지’에서 지난해 1월 ‘석촌호수로 169’가 됐다. 하지만 최근 석촌호수 수위가 낮아지면서 ‘인근 지반이 불안하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집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은 도로명 주소를 바꿀 방법을 모색했다. 행정자치부(행자부) 주소정책과 관계자는 “아파트 측이 주요 출입구 위치를 바꾼 후 올해 1월 도로명 주소가 ‘잠실로 88’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오래된 역명도 지역 이미지와 상권 활성화를 이유로 개정 논란에 시달린다. 서울도시철도공사 8호선 장지역은 역명이 ‘묘’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송파구 장지동 주민들이 ‘가든파이브’역으로 개정을 요청했고, 송파구도 8호선 문정역 이름을 ‘문정로데오’로 변경해줄 것을 서울시에 신청한 상태다.

정부는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약 4000억 원을 들여 도로명 주소를 정비해왔다. 하지만 예산은 대부분 새 도로명 표지판과 건물 번호판에 쓰였다. 행자부 주소정책과 관계자는 “전국 17만 개 도로명 표지판 하나에 약 150만 원, 그보다 더 많은 건물 번호판에 1만5000원이 든다. 이것이 예산의 90%”라고 밝혔다. 예산이 과도하게 낭비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도로명이나 지하철역명은 장기적 관점을 갖고 다수의 합의하에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내 도로명, 지하철역명은 너무 쉽게 제정되고 바뀌는 경향이 있다”며 “지역의 가치는 세련된 이름이 아닌 실질적 개발 계획이 결정짓는다. 지역·향토 전문가, 주민, 행정가, 대표 시설 관계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면서도 지역성을 상징하는 제정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력 2015-05-26 09:51:00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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