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6

2015.05.04

슈퍼 갑질, 대기업 광고대행사 불공정 횡포 과연 멈췄을까

과징금 33억 원 부과 이후 시정 주장…하청 제작사는 눈치 보며 묵묵부답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05-04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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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 갑질, 대기업 광고대행사 불공정 횡포 과연 멈췄을까

    4월 2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 7곳에 과징금 33억 원을 부과하고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우리나라 TV 광고 제작 시장은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들의 손에 돌아가고 있다. 광고주가 광고대행사에 의뢰하면, 대행사는 사전 제작회의를 거쳐 큰 틀을 짜고, 제작은 100여 개 광고제작사 가운데 한 곳에 맡기는 구조다. 그런데 4월 22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서 제일기획, 이노션, 대홍기획, SK플래닛, 한컴, HS애드, 오리컴 등 7개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에 과징금 33억 원을 부과했다. 사유는 광고대행사가 일감을 맡긴 광고제작사에게 제때 제공했어야 할 서면계약서의 미교부, 대금의 지연 지급, 어음대체결제 수수료 미지급 등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 공정위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7개사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불공정거래를 일삼았다.

    1년 4개월 뒤 대금 지급하기도

    일반적으로 ‘계약서’는 계약자 간 합의된 사항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사후 법적 효력을 따지기 위해 사전에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광고업계에서 계약서란 ‘구두’라는 단어가 생략된, 실체가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7개 광고대행사는 광고주가 광고 내용과 대금을 확정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광고제작사들에게 구두로 작업을 지시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들은 대부분 광고 제작이 완료되고 전파를 탄 이후 계약서를 작성했다. 대홍기획의 경우 2011년 연말 제작된 광고물에 대한 계약서를 2012년 12월에야 작성했고, 이노션은 광고제작사로부터 견적서만 받은 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제작이 끝난 뒤 견적보다 낮은 금액의 계약서를 발급했다.

    계약서 미교부는 약과다. 7개 광고대행사는 광고물 제작 이후 마땅히 지급해야 할 대금을 늦게 지급하면서 그 기간 발생한 대금 지연이자를 광고제작사들에게 전혀 주지 않았다. 제일기획의 경우 185개 광고제작사에게 대금을 늦게 주면서 이에 따라 발생한 지연이자 3억700만 원가량을 지급하지 않았고, 대금 또한 법정지급일(발주자에게 지급받은 날로부터 15일 또는 용역 수행을 마친 날로부터 60일 가운데 먼저 다가온 날)보다 최대 1년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지급하기도 했다. SK플래닛도 107개 광고제작사에게 법정지급일보다 늦게 대금을 지급하면서 지연이자 1억9000만 원가량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는 제조업으로 치면 제조 위탁받은 물건이 매장에 진열된 후, 건설업의 경우 아파트 준공을 마치고 입주가 시작된 후에도 하청업체에게 대금과 지연이자가 지급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광고업계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에 대해 광고제작사 측은 익숙한 일이라는 반응이다. 한국영상광고제작사협회(협회) 한 관계자는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은 일반적이다. 이는 광고 수주를 받고 몇 주 만에 광고 제작물을 넘겨야 하는 촉박한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또 광고대행사에 따르면 광고주가 의뢰할 때 금액을 확정짓지 않기 때문에 계약서를 쓸 수 없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고 한다”며 광고제작사와 대행사 모두 광고업계에 만연한 관행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광고대행사들이 일상적으로 대금 지급을 미루는 것에 대해 묻자 그는 “평균적으로 제작 전 대충 제작비 총량을 설정하는데 광고대행사에서 금액을 확실히 정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광고물 제작 전 견적서를 뽑아 가도 광고대행사에서 선급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광고제작사는 대부분 초기 제작에서 손해를 보며 일한다. 이렇게 말하면 광고대행사는 광고주 쪽에서 미리 돈을 주지 않는데 어떻게 대금을 줄 수 있느냐고 하지만 공정위 하도급법에 보면 광고 제작은 광고대행사 책임하에 진행하게끔 돼 있다. 광고대행사가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본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광고 제작을 지시하는 쪽과 광고 제작 비용을 산정 및 처리하는 쪽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협회 관계자는 “제작파트와 일하고 나면 정산은 제작관리파트가 하는 구조다. 광고물 제작 완료 후 대금 문제를 논의하려고 제작관리 쪽 사람을 만나면 시비를 건다. ‘이런 비싼 조명을 써야 했나, 엑스트라를 써야 했나’ 등 제작파트와 합의했던 부분까지도 지적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제작 전 견적과 정산 때 견적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전혀 새로운 견적서가 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불공정 관행에도 입 못 떼는 제작사

    광고대행사들이 대금 지급을 미루는 데 따른 또 다른 문제도 발생하고 있었다. 입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을 닫는 광고 제작사가 발생하는 것.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전체 광고제작비 가운데 조명기사, 촬영 스태프, 장소 협찬비 등 20~30%는 현금으로 미리 지급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광고대행사에서 미리 대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광고제작사는 대부분 융자를 받든지 해서 현금으로 지급하고 제작에 들어간다. 그런데 대금 지급이 늦어지면 제작사가 2차 수급사업자 쪽에 지급해야 할 대금도 미뤄져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결국 제작사 유지조차 힘들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광고대행사를 통하지 않고 광고제작사가 직접 광고주와 일을 진행하는 것은 어려울까. 협회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광고시장은 그렇게 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특정 감독을 지정해 작업하고 싶다고 해도 대금 지급은 제일기획을 통해 하게 돼 있다. 광고주가 제작비와 매체비 등을 분리해 쓸 수 없어 전체 비용을 광고대행사에 지급하고 일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대기업, 이름을 알 만한 중소기업 등은 모두 광고대행사를 통해 진행한다. 조그마한 회사는 직접 제작사에 의뢰하기도 하지만 전체 광고 제작 시장에서 10% 미만”이라며 광고 제작 시장의 섭리를 설명했다.

    협회에서 2013년 김상훈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측에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 ‘광고제작 환경개선 연구’에 따르면 광고대행사들의 횡포는 공정위 조사에서 밝혀진 것 외에도 유형이 다양했다. 당시 연구팀이 무작위로 선정한 22개 광고제작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불합리한 재작업 요구(95.4%), 과도한 무료서비스 요구(72.7%), 특별한 사유 없이 발주 취소(81.8%) 등 불공정 거래 관행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을 파악할 수 있다(표 참조).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 위해 당시 조사를 진행했던 연구보조원에게 문의하자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광고업계 전반의 관행을 알아보려고 국내 광고제작사에 개별적으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사정을 알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대기업 광고대행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대부분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간담회를 열어 광고제작사 관계자 몇 명을 어렵사리 초청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그 업체들도 절대로 자기 이름이 나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며 “뿌리 깊은 불합리한 관행에도 제작사들은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광고제작사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협회에 등록된 업체 20곳에 연락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냉랭했다. 제작사들은 “그에 대해 할 말 없다” “우리 업체는 불공정거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할 말 없으니 협회 쪽에 연락을 취해보라”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제일기획과 주로 일한다는 한 업체는 공정위 발표가 있었음에도 “제일기획과 오랜 기간 일해왔지만 계약서를 주지 않는다든지 대금 지급을 미룬다든지 하는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슈퍼 갑질, 대기업 광고대행사 불공정 횡포 과연 멈췄을까
    대행사 “2년 전 일, 지금은 개선”

    한편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공정위 시정조치에서 가장 큰 과징금 12억1500만 원을 부여받은 삼성그룹 계열 제일기획 측은 “공정위 조사는 2013년 5월에 진행된 부분이다. 당시에는 광고 제작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아무래도 광고 제작물은 무형물이라 제조업에서의 완제품 개념과 동일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납품 완료 시점을 광고주 시사 날짜로 할지, 방송 송출 시점으로 할지 특정 지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애매모호한 부분을 회사 차원에서 전면 보강했다”고 답했다.

    공정위 조사가 이뤄진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3년 12월부터 광고 제작물 수령일을 ‘광고주 시사일’로 명시하고 공정위 기준에 맞춰 빠른 시일 내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13억 원을 들여 전자계약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 과거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하도급 관련 업무개선회의를 실시하고 있으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100여 차례 하도급법 관련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제일기획 측은 “당시에는 계약한 내용을 서면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회사 차원에서 반성하고 개선했다”고 말했다. 1년 4개월씩이나 대금 지급이 미뤄졌던 건에 대해서는 “과거 제작관리파트와 제작사의 대금 지급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이 늦어지면서 미뤄졌던 것”이라며 “현재는 시스템상 계약 내용을 입력하는 대로 바로바로 지급하게끔 바뀌어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이노션 측도 “2년 전에는 하도급법이 시행되기 전이라 관행대로 해온 부분이 있다. 또 광고업의 특성상 촉박한 기간 안에 제작이 진행되다 보니 심지어 광고 소재가 바뀌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유동성이 컸다. 이 때문에 사전 계약서 작성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대금 지급이 미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관행이라는 이유로 잘못을 저지른 것 역시 우리 잘못이다. 지금은 이런 부분에서 계속 개선해나가는 중이고, 2년 전과는 작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명했다.

    롯데그룹 계열 대홍기획의 설명도 비슷하다. 대홍기획 측은 “과거에는 광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비용이 확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장비나 소품, 촬영시간 등 현장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많아 촬영이 끝나고 소비된 내용을 토대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 이유로 대금 지급도 미뤄졌다. 공정위 지시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계약서를 쓰라는 것인데 현업에서는 업무 과정이 복잡해진다고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기본적으로 공정위 시정명령에 따르겠다는 것이 기본 처지다. 앞으로는 이 같은 일이 없게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광고를 제작한 뒤 1년이 지나 계약서가 발행된 건과 관련해서는 “전산 오류 때문이었다. 2011년 연말에 제작 완료된 건이었는데 업무 담당자가 해가 바뀌어 계약서를 작성하다 보니 2012년으로 잘못 작성해 그해 연말에 교부됐다. 이와 관련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도 실시했다”며 회사 측 잘못을 인정했다.

    광고대행사들은 대체로 과거 잘못된 업계 관행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불문율처럼 따랐던 것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공정위 시정명령을 준수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광고대행사들 눈치를 보느라 바쁜 광고제작사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광고대행사들이 과연 횡포를 멈췄을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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