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4

2015.04.20

인부 목숨 위협하는 가설물 시장 복마전

가설협회는 인증 장사, 노동부는 묵인, 업체들은 이권 놓고 진흙탕 싸움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4-20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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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부 목숨 위협하는 가설물 시장 복마전

    2013년 6월 6일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주상복합 신축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거푸집이 무너지며 인부 4명이 갇히는 사고가 발생해 119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가설업계에서는 한국가설협회(가설협회)를 중심으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노동부)의 방조와 업체 간 이권 다툼이 이어지며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동안 가장 중요한 근로자의 안전 문제는 허공으로 떠버렸다. 최근 가설협회 관계자들이 검찰에 구속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던 일이 드디어 터졌다” “지은 죄보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내용이 적어 당사자들은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 것” 등의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가설협회에 대한 보도(‘주간동아’ 960호 참조)가 나간 이후 ‘주간동아’에는 불법·불량 비계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다. 국내 건설현장 가설기자재(가설재) 가운데 사용량이 가장 많은 단관비계용 강관 판매 시장에서 7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는 A사가 불법·불량 비계를 제조해오고 있다는 의혹이었다.

    A사는 2009년 가설재 안전인증(자율안전확인) 기관인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단관비계용 강관의 자율안전확인서를 처음 취득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존 제조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자 ILG 설비와 KS 규격이 아닌 중국산 풀하드를 수입해 제조한 단관비계용 강관으로 2013년 다시 자율안전확인서를 받은 뒤 가격 경쟁으로 시장을 석권했다”는 게 제보자 측 주장이었다.

    제보 내용을 종합하면 A사의 △ILG 설비는 강관파이프의 외부 면만 아연도금하고 내부 면은 도장(페인트)을 해 양면 모두 도금해야 하는 국내 규격에 맞지 않고 이 때문에 정상 제품보다 원가를 낮출 수 있었으며 △노동부 고시의 단관비계용 강관 재료 기준(STK500 이상의 기계적 성질)을 위반했고 △인증받을 당시 재질보다 품질이 낮은 값싼 재료를 사용해 안전 기준에 적합한 정상 제품의 판매가 위축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보자는 “A사가 안전인증에 문제 있는 제품을 생산하면서 가설협회를 통해 노동부 본부 및 지청에 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노동부 T고용노동지청(T지청)의 I과장을 A사 측에서 기존 업체들과 결탁한 부패 공무원으로 만들어 노동부 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했고, 일반 업체의 민원은 들어주지도 않던 노동부가 이번만큼은 신속하게 확인하고 감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불량 가설재 양산한다 vs 경쟁사 음해다

    인부 목숨 위협하는 가설물 시장 복마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현장에서 작업 인부가 안전모와 추락방지용 안전벨트도 착용하지 않은 채 발판 없는 공사용 비계(벽면에 설치한 쇠파이프) 위를 걸어 다니며 작업하고 있다.

    제보대로라면 A사는 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량 비계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은 물론, 노동부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기업으로 여겨진다. 관련 내용에 대해 질의하자 A사 관계자는 “오히려 우리가 기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음해와 모함을 받는 상황”이라며 다른 주장을 펼쳤다.

    A사 관계자에 따르면 T지청 I과장과 A사와의 갈등이 시작된 건 2014년 3월부터다. I과장은 2014년 3월 13일 A사 제품의 기계적 성질(인장 강도, 항복점, 연신율)이 미달돼 자율안전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것을 적발하고 사업장에서 A사의 제조 납품 단관비계용 강관 구매를 중단할 것을 조치했다. A사 관계자는 “관할권도 없으면서 생산한 지 1년 이상 된 출처 불명의 제품을 현장에서 수거, 무단으로 시험 의뢰해 불량제품으로 단정 짓고 관내 조선업체들에게 공문을 발송해 제품을 쓰지 못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면서 “우리 제품은 2013년 11월과 2014년 3월 대구지방고용노동청과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가설재로 판매되는 전 제품 시료를 수거해 노동부 산하 공인기관에서 제품 안전시험을 한 결과 문제없다는 판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T지청에서 관할이 아닌데도 각종 자료를 요구하는 한편, 관할 지청(대구)에서 제품 안전시험 결과 문제가 없다고 나왔는데도 같은 노동부끼리 믿지 못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정 처신을 하고 있어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I과장이 부임한 이후 우리 업체만 피해를 입고 다른 업체가 반사이익을 보는 것 같아 결탁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2014년 7월 29일 노동부는 지방관서에 ‘안전인증(자율안전확인) 기준에 맞지 않은 경우’에 대한 지침을 내려보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지방관서는 사업장에서 사용 중인 가설재를 수거해 성능시험을 한 결과를 근거로 안전인증 및 자율안전확인 제도에 따라 인증된 제품이 사업장에서 사용 중 동 기준에 맞지 않게 된 것이라 해도, 원칙적으로 제품 제조 단계에서 미사용 제품을 수거해 확인하는 것이 산업안전보건법 제34조 1항 및 제35조 1항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안전인증 취소 또는 해당 제품 전체에 대해 사용 중지 명령 등의 조치를 바로 행할 수는 없으며, 해당 인증제품 제조업체 관할 지방관서에서 실시한 미사용 제품의 수거, 확인 결과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2014년 8월 T지청은 노동부 지침에 따라 A사의 단관비계용 강관 신규 구매를 중단했던 조치를 철회했다. 지난해 감사를 받고 다른 곳으로 발령 난 I과장에게는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다 7개월이 지나서야 직위해제 처분이 내려졌다. 현재 I과장은 소청심사를 청구한 상태다. I과장은 “나 외에 (노동부 내) 다른 사람들은 이 분야를 모르는 사람이 많고, 안전 보건공단에서도 KS규정을 알고 인증을 줘야 되는데 잘 몰라서 검사할 때 그 부분을 누락했으며, 현대중공업 특별감독을 갔는데 A사 제품이 안 좋은 제품인데도 인증이 나 있어서 어떻게 된 건지 묻자 (안전 보건공단 측에서도) ‘잘못 내줬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로 감감 무소식이었고, 나만 문제를 지적하다 보니 오히려 내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A사 측으로부터 ‘왜 우리 제품을 건드리느냐. 가설재를 T지청에 쌓아놓고 시위하겠다’는 협박을 받았고, 현장에서 제품을 샘플링하자고 했을 때도 A사 측이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A사 관계자는 “품질에 하자가 있었다면 어떻게 7년 가까이 생산, 판매를 하고 국내 전체 마켓의 50% 이상을 점유하며 일본 등 해외 수출 물량을 월 3000t 가까이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며 “경쟁력 있는 제조기술로 국내외 마켓을 확대해나가는 데 대해 경쟁사의 시샘과 원료 공급사의 연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인허가 관련 민간단체와 일부 공무원, 경쟁업체가 결탁해 ‘자율안전확인 신고증명’에 대한 인허가 관리권을 쟁취하려고 경쟁하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가설협회나 국회의원과의 결탁 의혹에 대해서는 “대구 지역 국회의원은 알지도 못하고, 가설협회와는 업무 외적으로 관계가 일절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A사가 의혹의 제보자이자 ‘결탁한 경쟁업체’로 지목한 C사는 2014년 9월 22일부터 세 차례 T지청과 유착관계에 있다는 의혹 사항을 확인하려는 고용부 감사담당관의 조사를 받았으나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종결 처리됐다. C업체 측은 “막상 조사 내용이 인증 제품의 불법 조사 여부와 전혀 관계없는 데다 당사를 매장하려는 분위기만 조성돼 황당했고 큰 의문점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A사 제품 성능과 관련해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D사 관계자는 “사실이 아닌 걸 곡해했을 때 ‘음해’라고 하지 문제가 있는 제품이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A사 제품은 KS 인증에 미달돼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규격을 지켜 생산하는 회사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보통 단관비계용 강관은 10~20년씩도 쓰는데 A사 제품은 6개월 만에 녹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A사가 한국철강협회에 일반 구조용 탄소강관의 규격 개정 요청을 신청한 것도 업체 간 다툼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A사 관계자는 “철강산업에서 국가 산업표준은 선진국과 동등한 수준의 글로벌스탠더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에서는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항복 강도를 높이고 강재 두께에 대한 관리 범위를 축소해 소성변형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7년 STK500 이상의 고강도 강종에서 연신율 기준이 높게 강화됐다. 안전 강화를 위해서라지만 실상은 특정 원료업체에서 자동차용으로 개발한 고장력강을 사용케 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다른 업체 관계자들은 “A사가 자사 제품이 연신율 기준에 미달하자 KS 규정을 바꾸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업계 표준은 지키지 않고 인증받았다는 ‘미니멈’만 갖고 생산하니 KS 인증 제품을 쓰는 업체들만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인부 목숨 위협하는 가설물 시장 복마전

    2012년 3월 27일 오전 10시 50분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 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발전소 5호기 내 보일러동에서 작업하던 인부 13명이 철골 구조물이 붕괴되면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상자를 실은 119 구급차가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다.

    알 수 없는 노동부의 조사 기준

    논란은 A사를 두고만 있는 게 아니다. 과거 가설업계에 몸담았던 E씨는 “노동부의 편파적인 조사와 다른 업체 봐주기로 우리 회사만 빚더미에 앉았다”며 “노동부에서 A사나 F사의 문제 있는 제품은 처벌하지 않으면서 자사 제품은 안전인증 기준에 미달한다며 제품 사용 중지와 작업 중지를 지시하고 안전인증까지 취소하겠다고 했다. 노동부에 민원을 넣었지만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공문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E씨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도 진상규명을 요청했지만 권익위에서 재촉하고 한 달이 지나서야 노동부로부터 원론적인 답변을 받았다”며 “감사원에도 민원을 제기했으나 3개월 넘도록 답변을 받지 못했다. 노동부에 가설재 관련 민원이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답변을 받는 민원인은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주장했다.

    E씨는 “안전인증 기준에 적합한 재질(STK690)의 강관파이프로 안전 난간을 생산하면서 품질 관리를 소홀히 한 것만으로도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똑같이 안전인증 기준 위반으로 처분받은 A사, F사, G사, H사는 중국산 저가 풀하드 소재 강관파이프라는 불법재질로도 가설협회로부터 당당히 안전인증서를 발급받아 대형 조선소에 납품하는 등 아무런 불이익도 받고 있지 않다. 처벌할 거라면 똑같은 잣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2013년 12월 31일 Y고용노동지청(Y지청)은 조립식 안전 난간을 생산한 F사 사업장을 방문해 수거한 제품을 가설협회 측에 성능시험을 의뢰한 결과, 노동부 고시 안전인증 기준에 맞지 않자 해당 품목의 제조 중지를 명령했다. 이후 F사는 제품을 개선해 가설협회에서 재검증을 받았고, 2014년 1월 23일 Y지청은 ‘우리 청에서 행정 조치한 사항에 대해 귀사의 안전 조치가 완료됐음이 확인돼 제조 중지 명령을 해제한다’며 재발 방지를 당부하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는 가설협회의 시스템 비계 제작을 맡은 B사가 1999년부터 2014년 5월 22일까지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가설재를 제조, 유통해오다 노동부 평택고용노동지청에 적발됐으나 ‘사후 안전인증 절차를 거쳐 안전성 등이 확인됐다면 수거, 파기 명령 조치를 할 필요는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고 아무런 조치도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24쪽 참조). 제품이 불합격돼도 보완해 재검증받으면 통과되는 상황에서 어떤 제품이 안전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0여 년가량 가설업계에서 일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 건설사들이 부도가 나 창고대방출을 하면서부터 중고 임대사업이 시작됐고 시장이 혼탁해졌다”고 말했다. 가설협회가 생기고 재사용 가설재 인증제가 생기면서 임대업체들이 재사용 가설재를 쓸 수 있게 돼 국내 가설시장에서 임대업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70% 가까이로 커진 것. 그는 “제조업체와의 전세가 역전돼 임대업체의 목소리가 커졌고, 가설협회도 임대업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임대업체만 돈을 벌고, 제조업체는 생산한 제품이 순환돼야 하는데 동맥경화가 생겼다. 이 때문에 일부 제조업체가 중국산 저가 자재를 들여와 저렴한 가설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설재를 납품받아 쓰는 곳도 사고가 나면 제조자 책임이라 방치하고, 임대업체 책임이라 방치하니 누가 근로자 안전을 책임지겠는가. 노동부에서 가설협회에 막대한 권한만 주고 감시는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의 업계 현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업체 공장에 가서 노동부 감독관이 시료를 샘플링하는 방식으로는 인증에 탈락할 업체가 거의 없다는 게 업계 사람들의 주장이다. 공장에 간 감독관이 제조업체가 주는 양품을 받아와 검사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도 인증이 취소됐다면 가설협회나 노동부에 밉보였을 거라는 소문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취재하면서 만난 업체 사람들은 가설협회의 ‘인증 장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이를 묵인하는 노동부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근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현장에서 사고가 나지 않길 바라며 공기 단축을 위해 오늘도 바삐 걸음을 옮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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