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4

2015.04.20

신종 뇌물주의보! 기프티콘

주기는 쉽지만 거절하기는 어려운 선물, 공직자 발목 잡을 수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4-17 16: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신종 뇌물주의보! 기프티콘

    기프티콘도 금액과 받는 대상에 따라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사례가 될 수 있다.

    ‘○○님으로부터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촉촉한 딸기 생크림케이크. 유효기간은 4월 20일까지.’ 회사원 김모(30) 씨가 생일 아침 사촌으로부터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다. 해외에 있는 사촌은 “선물을 직접 못 줘 미안하다”며 ‘기프티콘(Gifticon)’을 보냈다. 김씨는 근처 빵집으로 달려가 기프티콘 바코드를 점원에게 보여줬고 케이크를 받았다.

    기프티콘은 ‘선물 쿠폰 기능을 담은 아이콘’을 뜻한다. 모바일 상품권을 통칭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이지만, 원래는 SK플래닛이 판매하는 모바일 상품권 이름이다. 기프티콘이 보통명사화된 것은 1억7000만 명 이상이 가입한 메신저 ‘카카오톡’ 때문. 2014년 6월까지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기능을 SK플래닛의 기프티콘이 수행했고, 이로써 카카오톡 사용자는 기프티콘을 모바일 상품권과 같은 뜻으로 인식하게 됐다. 기프티콘의 인기로 국내 모바일 상품권 시장 규모는 2010년 283억 원에서 2013년 1413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교사는 뇌물·촌지로 이중처벌 가능

    기프티콘은 보내기 편하고 쓰기 쉽다. 스마트폰만 몇 번 터치하면 상대방에게 전송된다. 200원어치 사탕부터 100만 원대 자전거까지 종류와 가격대도 다양하다. 또 상대방에게 직접 선물을 주기 어렵거나 껄끄러운 경우 모바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최근 30, 40대 학부모 사이에서는 교사에게 현금 대신 기프티콘을 보내는 문화도 생겼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송모(40) 씨는 초등학생 아이의 담임교사에게 가끔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을 보낸다. 스승의 날에는 명품 화장품 기프티콘을 선물하기도 했다. 송씨는 “우리 윗세대처럼 돈봉투를 드리면 선생님이 불편해하고, 아예 안 드리기도 뭐해서 기프티콘을 보낸다. 젊은 엄마들은 쉬쉬하면서도 많이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기프티콘을 받는 교사는 처벌된다. 서울시교육청(교육청)은 3월 20일 ‘2015년 불법찬조금 및 촌지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교육청은 촌지의 주요 유형으로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선물, 현금, 모바일 상품권 수수’를 지적하고 “학부모의 개별 방문을 통한 선물은 간소한 선물이라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반하면 징계를 받는다. 금품이 10만 원 미만이면 경징계(감봉·견책), 10만 원 이상이면 중징계(파면·해임) 처분을 받는다. 200만 원 이상이면 형사 고발도 가능하다. 교육청은 교사의 금품 수수를 신고한 사람에게 최고 1억 원의 보상금을 주는 등 신고 및 적발 규정도 강화한다. 단 스승의 날, 졸업식 등 ‘공개적인’ 행사에서 주는 꽃다발 등 3만 원 이하 선물만 허용될 뿐이다. 이제 학부모는 교사에게 어떤 기프티콘도 보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기프티콘 문화가 확산하면서 학부모와 교사 간 모바일을 통한 선물 수수가 은밀하게 이뤄진 면이 있다. 이제부터는 커피, 과자 등 1만 원 이하 기프티콘도 금지”라고 말했다. 2012년 2월 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금품 수수는 통상적인 관례의 범위인 3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금품을 3만 원으로 제한했더니 학부모들이 3만 원에 맞춰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더라. 그래서 아예 학부모 부담을 덜고자 더 강력한 촌지 근절 대책을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프티콘은 금액에 따라 뇌물이 될 수도 있다.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 예정인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법에 적용되는 대상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다. 이들에게 100만 원 이상의 기프티콘을 보내면 김영란법에 위배된다. 교사의 경우 공무원 행동강령과 김영란법 위배로 이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내년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교사는 금품 규모에 따라 이중으로 처분받을 수 있다. 또 지금은 금품을 받은 교사만 처벌받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금품을 준 학부모도 함께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종 뇌물주의보! 기프티콘

    서울시교육청은 “교사가 모바일 상품권을 받았을 경우, 모바일 상품권 업체에 연락해 반환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난감한 선물, 반환 쉬워져야

    그러면 모바일로 온 기프티콘을 거절하면 될 텐데, 이것도 쉽지 않다. SK플래닛 등 일부 업체가 운영하는 기프티콘에는 수신 거부 기능이 없다. 선물을 원치 않아도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기프티콘 송신자는 ‘환불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수신자가 기프티콘을 쓰지 않을 경우, 선물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받을 사람을 정하는 것이다. 기프티콘을 안 쓰고 사용 유효기간이 지나면 수신자나 송신자 계좌로 현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수신자가 선물을 원치 않으면 기프티콘 유효기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하다.

    카카오톡으로 기프티콘을 받았을 경우, 카카오톡 콜센터로 연락하면 반환이 가능하다. 교육청은 4월 9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무원 행동강령의 금지된 금품을 받았을 경우 처리 요령’ 안내문을 올렸다. 안내문은 ‘모바일 상품권을 받았을 경우’의 규정을 따로 두고 ‘모바일 상품권 업체에 문의해 상품권을 반환하라’고 설명한다.

    받기 난감하고 반환은 더욱 힘든 기프티콘. 사랑과 감사의 의미를 담은 선물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법을 위반하는 ‘뇌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기프티콘을 거절하거나 반환하는 기능이 보편적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바일을 통한 선물이나 메시지 송·수신 내용은 증거가 명백히 남는다. 선물을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법을 위반하게 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기프티콘 운영 업체는 선물을 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