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4

2015.04.20

갖고만 있어도 잡혀간다? ‘야동 대란’의 진실

사업자 중심 규제, 개인은 큰 영향 없어…애초에 불가능한 단속 볼멘소리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4-17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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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고만 있어도 잡혀간다? ‘야동 대란’의 진실

    한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음란 동영상을 보고 있는 누리꾼.

    “앞으론 야동(야한 동영상) 갖고만 있어도 걸리나요?” “정부가 딸통법(전기통신사업법) 시행한다는데 이제 밤에 어떡하라는 건지.”

    성인 콘텐츠 규제를 두고 누리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일부 개정한 전기통신사업법이 4월 16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된 법의 골자는 P2P(개인 간 파일공유) 사이트의 음란물 유통을 방지하고 청소년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유해 정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법 조항에 명시된 일부 표현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한다. “앞으로 ‘야동’은 찾기 힘들 테니 미리 다운로드해야 한다”는 소문도 떠돈다. 일부 누리꾼은 개정된 법을 ‘딸통법’이라 부르며 “국가가 개인의 정상적인 성생활까지 통제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연 이 법의 실체는 무엇일까.

    개정법의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웹하드 및 P2P 사업자가 음란물 인식(업로드)을 방지하고, 음란물 정보의 검색 및 송·수신을 제한하며, 음란물 전송자에게 음란물 유통 금지를 요청하는 경고문구 발송을 위해 기술적 조치를 하고, 운영관리 기록을 2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는 규정도 추가됐다.

    누리꾼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은 ‘P2P 사이트 음란물 업로드’다. P2P는 시스템 특성상 개인이 파일을 다운로드하면 동시에 자동으로 업로드가 된다. 앞으로 P2P 사이트에서 성인물을 소비할 수 없다는 괴담이 떠돈 이유다.

    아동·청소년 출연 음란물은 주의



    하지만 이런 우려는 사실이 아니다. 방통위에 따르면 개정법에 해당하는 대상은 개인 수요자가 아니며 웹하드 및 P2P 사업자, 그중에서도 미래창조과학부에 등록된 67개 ‘특수유형의 부가통신등록사업자’다. 프루나, 온디스크, 티디스크 등 유명 대형 웹하드가 포함된다.

    방통위 관계자는 “음란물 유통을 줄이고자 국내 사업자 책임을 강화한 것”이라며 “개인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인터넷을 통해 유포하는 것은 이번 개정법의 단속 대상이 아니다. 다만 개인이 일반인의 음란물을 유포하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대량의 음란물을 올리면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정작 따로 있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소위 ‘아청법’ 11조는 아동·청소년을 이용하는 음란물의 제작 및 배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둔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하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판매·대여·배포·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운반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은 소지하기만 해도 처벌될 수 있는 무서운 법이다. 다운로드해놓고 시청하지 않아도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에도 맹점이 있다. 먼저 콘텐츠 등장인물의 연령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것. ‘아청법’은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을 금지하고 있는데 성인임에도 어려 보이거나, 성인인지 청소년인지 구별하기 애매한 경우 처벌이 어렵다.

    갖고만 있어도 잡혀간다? ‘야동 대란’의 진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음란물 게시’를 이유로 3월 25일 접속을 차단한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

    또 출연자를 아동·청소년으로 국한했기 때문에 3D(3차원)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아동·청소년 이미지는 규제할 길이 없다. 2014년 9월 수원지방법원(수원지법)의 한 판결이 이 점을 포함한 사례다. 당시 판결을 내린 수원지법 신원일 판사는 “아동·청소년 캐릭터의 성행위를 표현하는 음란 애니메이션을 배포한 A씨를 ‘아청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은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라는 법문언이 주관적이고 모호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에 관한 인식 기준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외적 형태만으로 판단할 것인지, 스토리상에 나타난 설정 등으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서 법 조항만으로는 기준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이다.

    어쨌거나 ‘야동’을 자주 다운받는 누리꾼에겐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유상배 YK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아청법’ 실시 이후 음란물 상담 문의가 늘었다”며 “아동·청소년 출연이 의심되거나 제목만 보고 내용을 알 수 없는 동영상은 저장하지 마라.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이면 당장 삭제하라. 추후 구속되면 콘텐츠 확인 후 얼마 만에 삭제했느냐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음란물 규제 강화” vs “실효성 없다”

    정부는 올해 음란물 규제 활동을 대대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는 3월 2일 ‘인터넷 음란물 근절 TF(전담반)’를 공식 출범하고, 25일 국내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 접속을 일시적으로 차단했다. 레진코믹스는 약 7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한 사이트로, 인터넷 비즈니스를 통한 창조경제 실현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대한민국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정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레진코믹스였지만 방통심의위는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접속 차단을 시행했다. 일부 일본 만화에서 가학적, 피학적 성행위 묘사 등 음란물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레진코믹스 측은 “성인 콘텐츠에 대해서는 법 규정에 맞게 성인인증을 통해 운영해왔으며, 방통심의위로부터 사이트 차단과 관련해 사전 공지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레진코믹스는 차단 조치가 2시간 만에 풀려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다.

    레진코믹스의 일부 이용자는 “어느 콘텐츠가 그렇게 유해하고 비윤리적이냐”며 접속 차단 조처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기자는 방통심의위 관계자에게 음란물로 판단된 콘텐츠에 대해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작품명은 밝힐 수 없으며 문제가 된 장면도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와 다른 성 문화를 가진 해외 콘텐츠들의 문제점이 몇 가지 나왔고 지금도 유해한 콘텐츠를 면밀히 검토 중”이라며 자세한 대답을 피했다.

    정부의 음란물 단속은 크게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이며, 개인이 ‘아청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야동’ 소비는 앞으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는 “정부의 과도한 콘텐츠 규제는 비효율적이다. 불가능한 단속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규제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건전한 콘텐츠를 진중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또 성인물·음란물을 규정하는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현실의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유해 매체를 선정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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