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9

2015.03.16

리퍼트 대사 치료 홍보 대박 세브란스 크게 웃었다

5박 6일 입원 국내외 외신 연일 보도…홍보 효과 수천억 이를 듯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5-03-16 0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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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퍼트 대사 치료 홍보 대박 세브란스 크게 웃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3월 10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퇴원하며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치료를 해주신 훌륭한 의료진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얼굴과 손목 부분에 끔찍한 상처를 입고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5박 6일간 입원했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3월 10일 오후 퇴원 기자회견에서 수술을 맡은 의료진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세계적 수준(world standard)’이라는 말에 병원 관계자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어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 정갑영 연세대 총장, 정남식 연세대학교의료원장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개별적으로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하겠지만 항상 깊이 존경하고 감사하겠다. 기억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박 대통령, 귀국 후 곧장 세브란스로

    리퍼트 대사는 3월 5일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강연을 준비하던 중 김기종(55·구속)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오른쪽 얼굴에 길이 11cm, 깊이 3cm 자상을 입었고 왼쪽 손목 부위에는 관통상을 입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얼굴 상처는 1cm 차이를 두고 목 경동맥을 비켜갔고, 얼굴 근육을 조정하는 수많은 신경과 침샘도 건드리지 않았다. 왼쪽 손목에 입은 관통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힘줄 2개가 파열됐지만 현 우리 의료기술로 충분히 복구할 수 있는 정도의 상처였다.

    리퍼트 대사가 입원해 있던 5박 6일간 정치권은 ‘종북 배후설’과 사건이 일으킬 외교적 파장이나 셈법을 계산하느라 시끄러운 반면, 시민들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대표하는 손님에게 같은 한국인이 저지른 야만적 범죄를 대신 사과하고 위로하는 분위기였다. 여야 대표, 부총리, 국무총리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3월 9일 중동 순방에서 돌아온 즉시 리퍼트 대사를 찾아 위로의 말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전용기에서 내려 청와대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으며, 복장 또한 리퍼트 대사가 입은 세브란스병원 환자복의 색깔과 같은 연한 그린으로 통일했다. 연한 그린은 ‘치유’를 상징하는 색이다.



    온 나라가 위로와 사과 분위기에 있을 당시, 새어나오는 미소를 애써 참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연세대의료원 임원진과 홍보 관계자들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은 리퍼트 대사가 입원해 있던 5박 6일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외신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총 10차례의 정례 브리핑은 물론 비정례 기자회견도 많았다.

    국내 언론뿐 아니라 외신들이 타전한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관련 기사에는 세브란스병원이 빠지지 않고 언급됐다. 배경 화면으로는 세브란스병원 로고와 건물, 기자회견장이 나왔으며 브리핑에 나선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과 정남식 연세대의료원장, 수술에 나선 교수들 또한 외신에 얼굴이 비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오르는 등 주목을 끌었다.

    홍보 전문가들은 세브란스병원이 이번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으로 얻은 홍보 효과가 박 대통령이 2006년 5월 20일 한나라당 대표로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 선거 유세에 참가했다 피습을 당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리퍼트 대사 치료 홍보 대박 세브란스 크게 웃었다

    3월 5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회의실에서 유대현 성형외과 교수(오른쪽)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수술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리퍼트 대사와 비슷한 위치에 상처를 입고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던 박 대통령은 수술 결과에 만족해 지방선거 기간에 박수를 많이 쳐 생긴 손관절 부상도 함께 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세브란스병원 측은 “홍보 효과가 100억 원에서 150억 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박창일 건양대의료원장은 당시 세브란스병원장으로서 언론브리핑을 도맡았는데 1년 7개월 후 연세대의료원장이 됐다.

    병원 홍보 전문대행사 닥터피알의 송경남 대표는 “리퍼트 대사의 5박 6일간 치료로 세브란스병원이 얻은 홍보 효과는 2006년 박 대통령 피습 당시를 넘어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 36일 동안 머물렀을 때보다 훨씬 더 크다고 봐야 한다. 대충 잡아도 수천억 원은 넘을 것이다.

    미국 CNN, 영국 BBC, 일본 NHK를 비롯한 각국 신문과 방송을 통해 연일 리퍼트 대사의 쾌유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브란스병원은 이제 국제적 병원으로 발돋움했다. 충격적인 피습을 당한 주한 미국대사의 빠르고 적확한 치료를 통해 외국인에게 세계적인 병원이라는 신뢰감을 확실히 심어줬다. 앞으로 저명한 외국 환자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남식 연세대의료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심장질환을 치료한 심장내과 분야 최고 명의이기도 하다.

    단단히 체면 구긴 강북삼성병원

    일각에선 리퍼트 대사가 위기에 빠진 세브란스병원을 구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여대생 청부 살인범 윤모(69·여) 씨에 대한 허위진단서 발급 의혹과 특실에서 4년간 초호화판 생활을 하게 한 것 등에 대한 비판적 보도로 지난 2년여 동안 병원 명성에 적잖은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리퍼트 대사를 치료한 것이 세브란스병원을 일거에 한국 최고 병원으로 각인시켰다는 해석이다. 더욱이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면 ‘만년 2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세브란스병원이 1등 병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대학병원들도 있다. 특히 대한민국 최고기업 삼성 계열의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은 체면을 구길 대로 구겼다. 리퍼트 대사는 피습 사건 직후인 3월 5일 오전 7시 40분쯤 112순찰차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인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 1시간 30분가량 응급처치를 받은 후 돌연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의료계에선 고개를 갸우뚱했다. 긴박하게 얼굴과 손목에 대한 수술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같은 급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하고 응급처치도 마친 상황이었다. 전원은 리퍼트 대사 측이 요구한 것으로 안다. 대사 아들이 최근 그 병원(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나는 등 친근감이 있고 다른 연고가 있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다른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 병원에도 특실과 VIP실이 잘 갖춰져 있고 수준 높은 의료진이 포진해 있다. 병원을 옮긴 게 아쉬운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최고의 ‘병상 외교’

    리퍼트 대사 치료 홍보 대박 세브란스 크게 웃었다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3월 9일 오전 도착해 곧바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실제 리퍼트 대사 부부는 1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을 낳았다. 중간 이름을 한국어 ‘세준’으로 지었는데 ‘세브란스’에서 첫 자를 따왔다고 한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세브란스병원과 진료협약을 맺고 있기도 하다. 리퍼트 대사는 평소 세브란스병원의 외국 환자 특화 병동인 ‘국제진료센터’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는 미국 의료관광협회에서 ‘세계 최고 국제병원’으로 선정됐으며 MD 앤더슨, 존스홉킨스 등 세계 유수 병원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주한 미국대사관 측이 강북삼성병원에 머무는 1시간 30여 분 동안 얼굴 미세성형의 명의와 손목수부 접합수술의 최고 의료진을 수소문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등 소위 재벌가 회장님들이 자주 입원한 세브란스병원 VIP병동이 ‘병상 외교’를 펼칠 적소라고 판단했다는 후문도 있다. 실제 리퍼트 대사는 전망 좋은 VIP병동 특실에서 한미 고위 인사들의 병문안을 받으며 ‘병상 외교’를 펼쳤다.

    리퍼트 대사의 얼굴 수술을 맡은 유대현 성형외과 교수는 박 대통령 피습 사건 당시 봉합수술을 집도한 탁관철 전 교수의 수제자이고, 탁 교수가 출장을 간 이틀 동안 박 대통령의 주치의를 대신 맡은 경험도 있다. 손목을 수술한 최윤락 정형외과 교수는 수부외과와 미세수술에서 국내 최고로 알려졌다. 이들은 당초 5시간 넘게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시간 30분 만에 리퍼트 대사의 얼굴과 손목 수술을 모두 마쳐 주위를 놀라게 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리퍼트 대사의 본원 입원 결정은 여러 가지 인연에 수준 높은 의료진의 실력이 결합된 결과였다. 아직 치료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엄청난 홍보 효과를 본 것만큼은 사실이다.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다시 불붙은 제중원 뿌리 논쟁

    리퍼트 대사 치료 중 제중원 뿌리 홍보…서울대병원 “유감”


    세브란스병원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치료하면서 ‘영원한 라이벌’ 서울대병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정남식 연세대의료원장이 3월 9일 기자 브리핑에서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라고 발언한 것이 발단이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그동안 서로 제중원이 자신들의 전신이라고 논쟁을 벌여왔다.

    정 의료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리퍼트 대사의 고향 미국 오하이오 주와 세브란스병원의 인연을 설명하며 “고종이 호러스 알렌 박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중원을 설립했고, 그것이 세브란스로 이어졌다. 제중원의 창립자 알렌 박사는 오하이오 주 댈러웨이 출신이고 제중원의 후신인 세브란스의 이름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출신인 루이스 세브란스에서 온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고종에 의해 만들어진 ‘국립병원’이며 따라서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의 효시라고 주장한다. 최근 잠잠하던 제중원 뿌리 논쟁은 서울대 의대동창회가 제중원 설립 130주년을 기념하는 2015년 달력을 배포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이에 연세대 의대 동은의학박물관이 제중원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2월에는 제중원의 뿌리를 두고 두 대학병원 간부와 교수가 신문기고를 통해 맞부딪히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연세대의료원이 리퍼트 대사의 치료를 계기로 너무 많은 걸 챙기려 한다. 대단한 홍보 효과를 얻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걸 뿌리 논쟁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은 유감이다.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라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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