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8

2015.03.09

욕설과 웃음에 담긴 김수미의 내공

신한솔 감독의 ‘헬머니’

  • 강유정 영화평론가 · 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3-09 11: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헬머니’는 할머니의 사투리식 발음이다. 워낙 영어가 널리 사용되는 시대라 이 영화 제목에서 지옥과 돈을 연상하고 자유시장 경제의 암투와 그늘을 그리려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음 그대로를 연상하면 된다. 할머니, 헬머니라고 말이다. 영화 ‘헬머니’에 담긴 지배적인 정서는 이 소박함과 따뜻함이다.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욕, 그런 욕의 아이러니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사람을 살리는 욕이란 무엇일까. 영화 속에서 그 욕은 마음과 몸이 약해져 울고 있는 자식을 향해 퍼붓는 어머니의 욕으로 구체화한다. 미워서 하는 욕이 아니라 나약한 아들이 안타까워서 맵게 사랑의 채찍을 때리는 것, 비록 형식은 욕이지만 그 안에는 ‘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격려가 담긴 그런 욕 말이다.

    영화 ‘헬머니’는 이 욕을 소재 삼아 서사를 확장해간다. 욕으로 하는 오디션, 즉 ‘욕배틀’이란 신선한 소재가 이 영화의 홍보 포인트다. 방송이나 심의에서 늘 가려지고 편집되는 욕을 전면에 내세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 얼마나 다양한 욕이 맛깔나게 쏟아질지 대중의 기대가 모이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주인공이 배우 김수미이니 기대감은 일종의 확신으로 다가온다. 김수미는 이미 영화 ‘육혈포 강도단’이나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통해 욕의 진수와 참맛을 선보인 바 있다.

    이처럼 영화의 시작이 욕이고 홍보 역시 욕 위주로 이뤄지지만 사실 이 영화는 가족, 그중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헌사에 가깝다. 삶의 희로애락과 산전수전을 모두 겪고 이제 나약한 몸만 남은 어머니, 그 어머니가 세상을 견디고자 모지게 내뱉어야만 했던 욕의 윤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헬머니’는 배우 김수미가 없었다면 기획부터 어렵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딱 떨어지는 캐스팅을 보여준다. 아들을 연기하는 정만식이나 김정태의 앙상블도 괜찮다. 문제는 어떤 점에서 기대나 예측이 오히려 재미의 역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은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웃음을 준비한다.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드물 것이다.



    게다가 ‘헬머니’는 코미디나 유머가 아니라 가족애와 눈물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엄마가 왜 감옥에 가야 했는지, 왜 큰아들은 어머니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지 하나 둘씩 그 이유가 밝혀지며, 무거운 세월을 견뎌야 했던 어머니의 희생이 드러난다. 할머니가 욕으로 살린 사람들의 얘기가 보태지면 이내 헬머니는 욕 잘하는 따뜻한 엄마 정도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모성의 상징이 된다. 만약 우리에게 영웅이 있다면 그가 바로 헬머니라는 듯이 말이다.

    과거 정치범으로 투옥됐던 민주열사가 죽음을 고민할 때 욕으로 삶의 기운을 북돋웠다거나 죽음을 생각하는 대기업 회장을 욕으로 눈물짓게 하는 장면들에서 김수미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묘사됐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또 그가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이태원식 영어 개그와 욕 개그도 보여준다. 나이 70에도 단독 여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배우로서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욕설과 웃음에 담긴 김수미의 내공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