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2015.02.09

박병호의 험난한 빅리그 도전

파워, 홈런 비거리 매력적…주전 경쟁 심한 1루 포지션이 변수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5-02-09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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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호의 험난한 빅리그 도전

    2014년 11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한국시리즈 2차전 경기에서 넥센 박병호가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고 있다.

    프로야구만큼 불문율이 많은 스포츠도 드물다. 한국 프로야구에 비해 메이저리그는 그 다양함이 놀라울 정도다. 미국에서 뛰다 한국 리그에 진출한 외국인 투수들은 자신을 상대로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타자에 대해 “불문율을 깼다. 메이저리그라면 다음 타석에서 곧장 머리로 공이 날아간다”고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경기 전 유니폼을 입고 상대 팀 외국인 선수와 그라운드 한가운데서 만나 환담을 나누기도 한다. 경기 전 상대 선수와 그것도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 안에서 만나는 것은 미국에서 매우 금기시하는 행동이다.

    불문율과 관행은 그라운드 위 선수들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에게도 있다. 한국 선수들을 살피고자 경기장을 찾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특정 선수에 대해 코멘트를 기피하고 실명 인터뷰도 한사코 사양한다. 관심을 갖고 세심히 관찰하는 선수는 있지만, 다른 구단 소속이기 때문에 실명을 거론한다거나 평가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불문율을 지키기 위해서다. 지난해 서울 목동야구장은 거의 매 경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로 북적댔다. 일찌감치 넥센이 시즌 종료 후 거포 유격수 강정호(28)를 공개경쟁입찰(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보내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특히 관심이 높았다.

    목동야구장에서 종종 만난 스카우터들은 관행을 지키면서도 은근슬쩍 한국 취재진 혹은 국내 구단 전력 분석 요원들에게 정보를 구했다. 일부는 우회적으로 넥센 구단에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곤 했다. 그 키워드는 박병호(29), 그리고 박병호의 수비 포지션이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1루수인 박병호에 대해 “혹시 다른 포지션도 수비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곧잘 했다.

    박병호는 2015시즌 후 구단 동의하에 공개경쟁입찰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 피츠버그가 500만2015달러의 이적료, 그리고 4+1년 최대 2100만 달러라는 후한 대우로 강정호와 계약하자 미국 애리조나에서 훈련 중이던 박병호도 현지 인터뷰에서 조심스럽게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장석 넥센 구단주는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강정호처럼 박병호도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52홈런 박병호 vs 40홈런 강정호



    강정호는 2014시즌 홈런 40개를 날렸다. 박병호는 52개 홈런을 쳤다. 각 나라 리그별로 구장 크기, 투수 능력에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 시즌, 그것도 128경기에서 50개 이상 홈런을 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홈런 능력만 보면 강정호가 이미 메이저리그 도전에 성공했기 때문에 박병호의 도전에도 큰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성공 가능성도 더 높아 보인다.

    그러나 수비 포지션이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강정호는 미국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장타력을 가진 유격수다. 반면 박병호는 거포의 격전지인 1루수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출신 1루수는 지금까지 몇 명이나 있었을까. 1루수로 출장한 기록은 단 2명, 실질적인 1루수는 1명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루수로 활약한 유일한 아시아인은 최희섭(36·KIA)이다. 2004년과 2005년 플로리다와 LA 다저스에서 2시즌 연속 15개 홈런을 쳤다. 뇌진탕 등 큰 부상의 시련 속에서 고군분투했고, 지금까지도 아시아 출신의 유일한 빅리그 내야 거포로 꼽힌다.

    메이저리그가 한국 프로야구보다 더 깊이 신뢰하는 일본 프로야구는 지금까지 8명의 내야수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대부분 유격수와 2루수였다. 일본 리그에서 통산 400홈런, 2000안타 대기록을 달성한 나카무라 노리히로는 2005년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일본에서 포지션은 3루수였지만 메이저리그의 강한 타구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1루와 3루를 오가며 메이저리그에서 단 17경기만 뛰고 돌아왔다. 나카무라의 실패는 많은 점을 보여준다. 3루에서는 수비로 신뢰감을 주지 못했고 1루에서는 타격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전성기 때 아시아 최고 거포로 인정받았던 이승엽(39·삼성)도 처음 자유계약선수(FA)가 된 2004년, 그리고 이후 일본 프로야구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메이저리그 도전 기회가 있었지만 예상보다 박한 대우에 태평양을 건너지 않았다. 이승엽은 박병호와 같은 1루수지만 선호도에서는 더 유리한 좌타자였다. 최희섭은 “모든 리그가 그렇지만 메이저리그는 특히 1루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타격 극대화를 위한 자리가 1루수이기 때문이다.

    1루는 장타력 갖춘 거포들의 격전지

    박병호의 험난한 빅리그 도전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넥센 박병호.

    최희섭은 2005시즌 15개 홈런으로 가능성을 다시 보여줬다. 하지만 2006년 스프링캠프에서 보스턴에 트레이드됐다. 그 배경에는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3대 유격수로 꼽히던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LA 다저스 입단이 있었다.

    유격수인 가르시아파라와 LA 다저스의 계약이 최희섭의 트레이드로 이어진 이유는 포지션 변경에 있었다. 메이저리그 타격왕 출신으로 당시 32세였던 가르시아파라는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1루로 포지션을 바꿨다. 메이저리그, 특히 지명타자가 없는 내셔널리그에는 30대 이후 타격에 집중하려고 포지션을 1루로 바꾸는 거포가 즐비하다. 갑작스러운 거물급 경쟁자의 등장으로 최희섭이 트레이드된 것.

    역대 최고 포수로 꼽혔던 미네소타의 조 마워는 지난해 1루수로 완전히 변신했다. 앨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 등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들 모두 지난해 1루 출장이 더 많았지만 원래 포지션은 3루였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에서 1루수는 많은 마이너리그 유망주뿐 아니라 베테랑 거포와 싸워 이겨야 경기에 나갈 수 있는 포지션이다. 좌타자 비율이 늘어나고 수비 능력의 중요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1루수에게는 타격, 특히 장타력이 첫 번째로 꼽힌다.

    메이저리그 시각에서 40홈런 유격수 강정호는 매우 희귀한 유형이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았다는 위험성에도 투자 대상으로 그 매력이 크다. 그러나 박병호는 오직 타격과 홈런 능력만으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도전이 더 험난할 수 있다. 이장석 구단주는 “1루수가 불리하다고 하지만 최근 미국은 스테로이드 시대가 끝나면서 거포 1루수가 귀해졌다. 박병호의 파워나 홈런 비거리를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도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박병호는 자신의 가치와 경쟁력을 끌어 올리고자 최근 3루 수비 훈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지난해까지 김민성과 함께 3루를 봤던 윤석민이 유격수로 이동했다. 3루 수비도 수준급인 박병호가 여러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3루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3루 수비 훈련은 올 시즌 갑작스러운 부상 등의 공백이 있을 경우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라는 게 대외적인 이유다. 하지만 박병호에게 눈독을 들이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더 크게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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