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5

2015.02.09

선진국도 예외 없이 연금에 칼질

민간과의 형평성 제고, 공무원 자조 노력 강조…정부와 정치권이 주도

  •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전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 소위원장 bjh5432@unitel.co.kr

    입력2015-02-06 1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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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국도 예외 없이 연금에 칼질

    공무원연금개혁 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014년 12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상반기 중 합의안을 내지 못하면 장기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우리보다 앞서 공무원연금을 개혁한 세 나라의 사례는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하다.

    미국은 1983년 공무원연금제도를 개혁했다. 83년 말까지 임용된 미국 연방공무원은 구공무원연금(CSRS)에 가입하는 반면, 84년 1월 이후 임용자는 신공무원연금(FERS)을 적용받는다. CSRS는 보험료(7%)가 낮고 연금액이 급여의 56.25%(30년 재직 시 상한 80%)로 높다. FERS는 보험요율(평균 8.6%)이 높고 연금액은 급여의 30%(연당 1%씩 상향, 62세 이후 1.1%씩 상향)로 낮다. 이에 따라 정부는 FERS 가입자의 경우 국민연금(OASDI)과 공무원저축(TSP)에도 추가로 가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TSP에 가입하면 정부가 퇴직 시까지 급여의 1%를 자동적립해주며, 공무원이 원할 경우 추가 적립도 가능하다. 단 상한이 있다. 급여의 3%까지는 정부가 100% 같은 금액을 적립해주고 이후 2%에는 50%만 매칭해준다. 현재 미국 공무원의 86%가 TSP 추가 적립을 하고 있다. 민간퇴직연금(401k) 가입률(73%)보다 높다.

    일본, 연금제도 일원화하고 수령액 축소

    TSP 제도 도입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1983년 연금 개혁 과정에서 수익자의 자조 노력 비중을 높였다. 아울러 공무원도 국민연금에 가입하게 해 연금제도의 투명성을 높였다. 한편 기존 재직자도 원할 경우 신제도를 택할 수 있게 해 개혁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했다.

    현재 미국 공무원 보수는 민간근로자 평균의 2배가 넘는 수준이며, 연금 수령액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받는 대기업 근로자와 비슷한 수준이다. 1983년 국민연금 개혁은 의회와 정부 주도로 이뤄졌으며, 공무원 등 이해관계자는 개혁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일본은 1985년 기초연금을 도입해 모든 급여 소득자를 이에 가입하게 했다. 이전까지 민간근로자는 후생연금, 공무원은 공무원연금에 각각 가입했으나 이때부터 누구나 기초연금을 가진 상태에서 추가로 후생연금과 공무원연금 혜택을 받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처럼 체계가 개편되자 후생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차이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일었고, 자연스럽게 양자를 일치시키는 작업이 시작됐다.

    2005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연금제도 일원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2006년 4월 각의에서 일원화 기본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국회에 제출된 관련법 개정안은 정치적 혼란 속에 국회가 해산하면서 2009년 7월 폐기되고 만다.

    선진국도 예외 없이 연금에 칼질

    2014년 11월 6일 공무원연금제도 개선 호남권 국민포럼이 열릴 예정이던 광주 서구 내방로 광주시청 중회의실에서 공무원 노동조합 위원들이 포럼 중단을 요구하며 안전행정부 포럼 진행 공무원들에게 물을 뿌리고 있다.

    이후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2012년 4월 ‘피용자연금 일원화를 위한 후생연금보험법 등 개정 법률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돼 그해 8월 통과되면서 연금제도가 일원화됐다. 10월 시행 예정인 이 법안은 이때부터 신규 공무원이 민간근로자와 동일하게 후생연금에 가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무원연금에 있던 우대제도의 하나인 직역가산금(후생연금보다 연금 수령액을 약 8.5% 높여주는 제도)이 사라진 대신, 공무원은 미국 TSP와 유사한 공무원저축제도에 가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 공무원의 보수는 대기업 근로자보다 낮아도 직역가산금 등의 영향으로 연금 수령액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제도 개편으로 연금 또한 줄어들 전망이다. 이 방향으로의 개혁은 정부와 국회가 주도했으며, 공무원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는 개혁 작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한편 독일은 공무원연금제도가 이원화돼 있다. 연방 공무원의 53%, 전체 공무원의 38%인 관리 공무원은 은퇴 후 정부가 재원을 100% 확보해 평생 지급하는 ‘은급’을 받는다. 우리의 국가유공자 수당과 비슷한 제도다. 나머지 공무원인 공무피용자는 민간근로자가와 마찬가지로 일반 법정연금에 가입한다.

    기존 은급액은 40년 가입 시 은급 산정 기초급여의 71.75%였으나, 2003년부터 8번에 걸쳐 하향 조정했다. 그 배경에는 공무원 보수가 높아 은급이 법정연금의 2배 이상인 현실이 있었다. 2012년에도 월평균 은급액은 2570유로로 법정연금 1200유로(45년 가입, 소득대체율 47%)의 2배가 넘는다. 10년간 인상율도 13%로 법정연금의 8.5%보다 높았다. 이런 사실이 지적되면서 은급제도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협조

    주목할 점은 정부가 은급 재원 조달을 위한 기금 적립에 나선 것이다. 1998년부터 연방정부(일부 주 포함) 차원에서 지급 준비금을 적립하고 있는데, 재원은 공무원 급여 인하로 절약한 금액의 50% 등이다. 이렇게 조달한 금액은 2018년 이후 은급 지급 예산으로 사용할 예정이며 관리는 연방내무부가 맡아 주로 연방은행 채권에 투자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진 은급 개혁 작업은 정부와 국회가 주도하고 있으며 공무원 등 이해관계자의 참여는 제한적이다.

    이상 3개국의 공무원연금 개혁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첫째, 공무원연금 개혁 작업이 ‘공무원연금의 안정적 운영’이라는 장기 비전하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주도로 추진됐다는 점이다. 둘째, 장기 비전을 달성할 방법으로 미적립 채무의 증가 억제나 축소를 통한 제도의 지속가능성 확보, 민간근로자 연금과의 형평성 제고, 적정 급여 수준 확보를 위한 공무원의 자조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주기적으로 손보는 미시적 개혁보다 한두 차례의 거시적 개혁을 통해 공무원연금제도의 큰 틀과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해 비용을 줄이면서 수용도도 높였다는 점이다.

    이번에 정치권 주도로 추진되는 우리나라의 공무원연금 개혁 작업이 주기적 개혁으로 이어질 미세 개혁이 아닌, 수십 년간 지속할 제도의 큰 틀을 세우는 근본적인 개혁이 되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등 이해관계자는 당연히 목소리를 내되 대승적이고 협조적인 자세로 우리의 공무원연금, 나아가 공적연금 전반의 백년대계 구축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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