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4

2015.02.02

아이돌로 시작해 거장 반열에 오르다

레만이 그린 리스트의 초상

  • 전원경 문화콘텐츠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5-02-02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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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로 시작해 거장 반열에 오르다

    ‘리스트의 초상’, 앙리 레만, 1839년, 캔버스에 유채, 113×86cm, 프랑스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 소장.

    한국 ‘아이돌 가수’는 아시아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타다. 그들의 음악성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아이돌 가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가와 언어를 가리지 않고 여성 팬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아이돌 가수의 시초는 누구일까. 음악 산업이 낳은 사상 최초의 국제 스타는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1811~1886)다. 리스트는 천재성과 스타성, 그리고 잘생긴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19세기 중반 막 성장하기 시작한 유럽의 음악 산업은 바로 이런 스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스트의 신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베토벤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 재능을 보였던 리스트는 열한 살 때 스승 체르니와 함께 베토벤을 찾아갔다. 리스트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첫 악장을 연주하자 베토벤은 자리에서 일어나 리스트의 두 손을 잡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야, 너는 뮤즈의 축복을 받은 아이로구나. 앞으로 너의 연주가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거다.” 이 일화의 진위야 확인할 길 없지만 ‘거장의 축복을 받은 소년’이라는 신화는 ‘스타 탄생’의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리스트는 20대 초반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순회연주를 했다. 각국 청중, 특히 여성들이 꽃미남 천재 피아니스트에 열광했다. 이미 그와 같은 비르투오소로 파가니니가 있긴 했지만, 악마와 결탁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으스스한 오명을 쓰고 있었다. 반면 리스트는 교양 있고 예의 바른 태도에 잘생긴 외모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의 연주회마다 귀부인이 몰려들어 보석반지와 장갑, 꽃다발을 던지며 열광했다. 리스트는 이러한 팬의 환호에 보답하려고 연주회장에서 피아노를 돌려놓아 자신이 연주하는 모습을 청중이 볼 수 있게 했다. 그전까지 연주회장 피아노는 객석에서 건반이 보이는 방향, 즉 정면으로 놓여 있었다. 피아니스트는 청중을 등진 채 연주했는데 리스트가 이러한 관습을 깨뜨린 것이다.

    그렇다면 리스트는 정말 귀부인들의 환호를 받을 만한 미남이었을까. 독일 출신 화가 앙리 레만(1814~1882)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그는 분명 눈에 띄는 미남이다. 또렷한 얼굴형에 날카로운 콧날, 단발형 헤어스타일, 그리고 상대를 꿰뚫어보듯 예리하게 빛나는 눈빛 등 모든 요소가 예사롭지 않다. 팔짱을 끼고 몸을 옆으로 한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는 요즘도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의 프로필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만약 리스트가 귀부인들의 환호와 엄청난 수익이 주는 매력에 빠져 순회연주를 계속했다면 그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끝도 없이 계속되는 연주회에 지쳤는지 리스트는 막 중년으로 접어들던 1848년 바이마르 공국의 궁정악장 제의를 받아들이며 순회연주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대신 작곡에 전념하면서 ‘피아노 소나타 b단조’‘파우스트 교향곡’‘순례의 해’ 등을 남겼다. 이 작품들로 만들어진 작곡가 리스트의 명성은 오늘날에도 굳건하다. 리스트는 아이돌 스타로 태어나 진정한 음악가로 인생을 마친, 참으로 복받은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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