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6

2017.07.12

김민경의 미식세계

꽃놀이만큼 반가운 다찌놀이

철철이 가볼 만한 통영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gmail.com

    입력2017-07-11 10: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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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통영에 가면 하늘과 바다, 총총 솟은 섬들이 내주는 안온한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감탄을 자아내는 남해의 비경, 깊고 시린 동해의 풍경, 과묵하고 차분한 서해의 분위기와 달리 통영 바닷가는 살갑고 아늑한 기분이 들게 한다. 변화가 더딘 오래된 골목,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 푸릇푸릇 청춘을 뽐내는 관광객,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술과 역사의 흔적 등이 한데 어우러져 통영만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 통영의 맛이 있다. 사계절 내내 색다른 재료를 내주는 바다를 벗 삼아 통영의 맛도 함께 자라왔다.

    바닷길을 오가는 이들을 위한 시락국과 충무김밥, 쓰린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는 졸복국과 해물뚝배기, 철철이 기다려지는 도다리와 멸치, 굴 등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중 애주가와 애식가에게 으뜸은 ‘다찌’가 아닐까 싶다. 다찌는 선술집을 뜻하는 일본어 다치노미(立飮み), ‘서서 간단히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의 다치구이(立食い), 친구를 뜻하는 도모다치(ともだち) 등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통영에서 맛있는 건 여기 ‘다 있지’를 줄여 쓴 데서 왔다는 귀여운 설도 있다.

    다찌 식당에는 메뉴판이 따로 없다. 손님 수와 술 양에 따라 기본부터 추가 안주까지 주인장이 알아서 척척 내준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음식이 나와 상 가장자리까지 빈틈없이 금세 메운다. 재빠르게 손질해 내놓은 전복, 멍게, 해삼, 미더덕, 꼴뚜기, 낙지는 바다의 맛과 향을 그대로 전한다. 앞으로 이어질 맛 여정의 문을 여는 ‘웰컴 푸드’ 같다. 날렵한 칼솜씨가 느껴지는 여러 활어회는 저마다 육질과 고소한 맛이 제대로 살아 있다. 제철 재료 위주로 차려진 날것의 바다를 맛본 다음에는 굽고 끓이고 데친 음식을 맛볼 차례다. 살이 빠져 나가지 않게 잘 조리한 게 · 새우 · 조개 · 소라 종류는 달달한 감칠맛으로 가득 차 있다. 생선이나 조개를 넣어 끓인 탕은 시원하고, 데친 새끼오징어는 달고 탱탱하며, 데친 문어는 말캉말캉하고, 삶은 장어 내장은 보들보들 고소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생선구이는 소금 간을 세게 하지 않아 살집에 물기가 많고 부드러워 아무리 먹어도 목이 메지 않는다.

    반찬 외 해산물 요리는 간을 세게 하지 않기 때문에 집집마다 개성 있는 양념장이 등장한다. 참기름 소금장, 초장, 고추냉이 간장은 기본이다. 집된장에 갖은 양념을 넣은 막장, 묵고 묵어 새콤한 맛이 나는 조선간장, 고추와 마늘 등을 잔뜩 썰어 넣은 묽은 간장에 해산물 구이나 데친 해산물을 찍어 먹는 맛이 색다르다.

    기본으로 나온 그릇들이 비워질 때면 술병도 바닥을 드러낸다. 한 병 더 주문하면 양념에 버무린 게, 꾸덕꾸덕하게 말린 과메기, 쫀득하게 쪄낸 가오리, 고소한 멸치회 무침처럼 사람의 손맛이 깃든 맛깔스러운 음식이 나온다. 밥 대신 곡기를 채우라며 부침개나 떡 구이, 찐 고구마나 호박, 땅콩 등을 함께 내준다.



    한밤까지 배 속 가득 바다를 채우며 거나하게 취해도 내일 걱정은 하지 말자. 날 밝으면 시락국이나 졸복국으로 숙취와 피로 따위는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통영 다찌와 같은 형식으로 술과 음식을 내주는 식당은 전북 전주, 경남 진주와 마산 등지에도 있다. 저마다 지역색을 살린 음식을 한상차림으로 내주니 3~4명이 함께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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