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2015.01.19

국민소득 5만 달러, 15년 뒤에나?

세계 10개국만 이룬 ‘선진국 중 선진국’…생산성 혁신만이 유일한 활로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 juwon@hri.co.kr

    입력2015-01-19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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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소득 5만 달러, 15년 뒤에나?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한 1월 2일 출근길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한 국가가 선진국이냐 아니냐는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다. 기대수명, 문맹률, 교육, 생활수준, 소득불평등도, 행복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면 무엇보다 부가가치나 부(富) 같은 경제력이 높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력의 평가는 1인당 국민소득(Gross National Income·GNI)으로 대변된다.

    선진국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동유럽이나 중남미 저소득 국가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를 제외하면, 선진국이 되는 1인당 국민소득 하한선은 약 3만 달러다. 다행히 한국의 국민소득은 2015년 3만 달러 내외여서 가까스로 이 기준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3만 달러대에 진입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4년 1만 달러까지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달성됐지만, 1만 달러에서 3만 달러에 이르는 데는 2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그래프1 참조).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다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상당 기간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와 5만 달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3가지 시나리오

    특히 5만 달러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선진국 중 선진국’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탄탄한 경제 성장세를 보이는 국가군인 25개국의 평균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이기 때문이다. 2013년 현재 5만 달러 이상 국가는 노르웨이, 호주, 미국 등 10개국에 불과하다. 이웃 일본도 아직 4만 달러대에 그치고 있다.



    그럼 한국 경제의 5만 달러 달성은 언제쯤 가능할까. 물론 이는 전적으로 경제성장률에 달렸다. 국민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다양하지만 그 근간에는 경제성장률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앞으로 보여줄 경제성장률 수준에 따라 5만 달러 달성 시기에도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먼저 향후 경제성장률이 현재의 잠재성장률 수준인 3%대 중반에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경제는 2021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지나 2024년 5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래프2 참조). 총 9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반면 향후 잠재성장률을 현 수준보다 1%p 낮은 2%대 중반으로 가정할 경우 2024년 4만 달러를 지나 2030년 5만 달러에 도달해 총 15년의 소요기간이 예상된다. 성장률을 4% 중반으로 설정해 매우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쓰자면, 2019년 4만 달러를 지나 2021년 5만 달러를 달성하게돼 총 소요기간은 6년으로 짧아진다.

    여기서 잠시 다른 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 이상인 선진 10개국이 3만 달러에서 5만 달러로 넘어가는 데 걸린 평균 소요기간은 10년이었다. 국가별로 짧게는 4년, 길게는 16년이 걸렸다. 이들 국가에서는 잠재성장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낮아지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러한 경험을 준용해보면, 앞의 시나리오 가운데는 2%대 중반 성장률로 2030년 5만 달러대에 진입하는 경로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3%대 중반 성장률을 유지해 5만 달러 달성 시기를 당기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5만 달러에 조기 진입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새로운 경제 모델이다. 최근 한국 경제는 무언가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다. 수년 전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3%대를 기록하면 경제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곤 했지만, 지금은 평균 수준으로 받아들인다. 가계, 기업, 정부 할 것 없이 모든 경제 주체에게서 과거 같은 역동성이나 활력은 찾아보기 어렵고, 경제 활동의 정체는 일상화됐다.

    부지불식간 체념한 듯 받아들이는 이 저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데 핵심 조건은 바로 효율성이다. 이제까지와 같은 양적 투입 중심의 경제 성장 시스템에서 질적 투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 모델로의 전환이 절실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에 바탕을 둔 생산성이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자본과 노동의 절대적 투입량 보장이다. 향후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하락한다면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생산 요소 부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발전의 힘은 자본스톡(stock) 축적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정자산의 순자본스톡 증가율은 금융위기 이전 연평균 11% 수준에서 이후 3.5%로 크게 떨어졌다.

    국민소득 5만 달러, 15년 뒤에나?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성장잠재력 약화의 또 다른 걸림돌은 노동력의 절대 부족이다. 실업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이 웬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사람이 부족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곧 닥칠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력 경제 활동 연령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총인구÷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은 이미 2012년 73.1%를 정점으로 하락세로 전환됐다. 생산가능인구 규모 자체도 2016년 3704만 명을 정점으로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응하려면 자본 축적을 위해 더 적극적인 투자 활성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과 고령인력의 활용도를 끌어 올리고,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노동력을 확충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각 경제 주체가 뚜렷한 경제 철학을 지녀야 한다. 먼저 국민은 경제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성장 위주의 경제 발전도 문제지만, 현재 세대가 편하자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인기 영합적 경제 기조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스스로 나서서 뭔가를 하려 하기보다 경제 성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작업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민간 주체 역시 선진국에 걸맞은 의식 수준을 가져야 한다. 특히 부정부패와 지하경제가 존재하지 않게 함으로써 신뢰로 굴러가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통해 정부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까지 민간 부분에서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늘어야 한다.

    6·25전쟁 직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3만 달러에 이른 지금을 두고도 서구 선진국들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국민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라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도약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 과정 역시 쉽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또 다른 기적 역시 노력을 통해서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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