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2015.01.19

무늬만 가구점? 유통 공룡 이케아의 공습

교통대란에 영세상권 줄줄이 붕괴…영업일수 규제 뒷북, 광명역세권 특구계획은 어디로?

  • 김지현 객원기자 koreanazalea@naver.com

    입력2015-01-19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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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늬만 가구점? 유통 공룡 이케아의 공습

    2014년 12월 18일 경기 광명시에 개장한 이케아 광명점.

    KTX 광명역은 썰렁했다. 대지 26만4131㎡(약 8만 평), 건축면적 4만8184㎡(약 1만5000평)로 4068억 원을 들여 야심차게 지은 역은 개통 11년 후인 지금도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전철역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영등포역으로 향하는 광명역발 1호선은 오전 9시 46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는 아예 열차가 없고, 오후 6시 30분부터 40분~1시간 10분 간격으로 운행될 뿐이었다. 한 번 열차를 놓치면 칼바람이 부는 역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역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해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차들의 행렬이 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그 행렬의 끝에 ‘IKEA(이케아)’라는 노란색 간판이 있었다.

    1월 13일 화요일 개점 4주째를 맞은 경기 광명시 이케아 광명점(이케아)은 평일인데도 몰려든 고객으로 혼잡했다. 대부분 방학을 맞은 아이와 쇼핑하러 온 젊은 부부들이었다. 연면적 13만1550㎡, 매장(지상 2·3층)과 주차장(지하 1·2층, 지상 1층)으로 구성된 건물은 완전한 ‘이케아식’ 쇼핑을 실현하고 있었다. 상품 코너에 서서 물건을 홍보하는 직원도 없고, 고객이 직접 제품 바코드를 찍어 결제하는 ‘셀프 계산’을 했다. 레스토랑도 김치볶음밥, 불고기덮밥 등 너덧 가지 한정된 음식 중에서 선택해 배식받는 구조였다. 그래도 고객들 얼굴에는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이 넘쳤다.

    하지만 건물 건너편은 불편함의 연장이었다. 이케아와 그 옆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 광명점 동쪽에는 3만㎡의 공터가 있다. ‘광명국제디자인클러스터 예정 부지’라는 현수막 옆에 ‘이케아 임시주차장’이라는 간판이 서로 어울리지 않게 서 있었다. 1월 9일부터 이케아가 마련한 추가 주차공간이다. 이케아는 본관 건물에 2000여 대의 주차공간이 있지만 하루 1만~2만 명의 고객이 몰고 오는 차량을 감당할 수 없자 이 공간의 2만1000㎡를 급히 대여했다. 여기에 600여 대 차량을 주차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주말에는 꽉 찬다.

    이케아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크리스마스에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매장에 못 들어갔고, 지난 토요일(1월 10일)엔 오후 1시에 들렀는데 ‘만차’라서 인근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쇼핑카트에 물건을 싣고 공터까지 걸어가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교통난, 영세상권 몰락은 예견된 일

    광명역 주변 교통난은 불 보듯 뻔했던 일. 역에서 1.2km 거리에 이케아,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 광명점, 코스트코 광명점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명시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이케아에 대책 수립을 떠넘겼다. 광명시 교통기획팀 관계자는 “교통대란과 같이 예상치 못한 문제는 개선방안을 수립하고 이행할 것을 이케아코리아 대표이사 명의로 계약했다”고 설명했다. 광명시는 1월 7일 이케아에게 ‘교통대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1월 15일부터 건물 임시사용 승인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냈고, 임시주차장 마련은 그 결과다. 하지만 임시주차장도 언제까지 사용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광명국제디자인클러스터 부지에는 신축 건물 3개가 들어설 예정이며, 건물 착공 전까지만 주차장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광명시 주택안전과 관계자는 “언제 착공할지 모른다. 1년 후로 예상하고 있다”며 막연한 답변을 내놓았다. 언제라도 공사가 시작되면 이케아 고객은 다른 주차장을 찾아 불편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이케아가 문을 연 후 주변 영세상권도 위협받고 있다. 현재 이케아는 가구뿐 아니라조명기구, 청소용품, 장난감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다. 매장 옆에 식당이 있어 쇼핑과 식사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 광명점과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어 옆 건물 고객의 발길까지 붙잡는다.

    이에 광명시 소상공인들은 2012년부터 ‘이케아 광명입점저지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반대시위를 펼쳤으나 이케아의 입성을 막지 못했다. 최근 광명사거리역 가구단지에는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홍승표 광명시 가구사업유통협동조합 이사는 “기존 가구단지에 오는 고객이 절반까지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가구업체 운영자는 “이대로 가면 우리 가구업자들 다 죽는다. 이케아 방문객 대부분이 서울에서 오기 때문에 그 여파가 아현가구거리 등 다른 지역에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무늬만 가구점? 유통 공룡 이케아의 공습

    경기 광명시 광명사거리역 가구단지. 이곳 상인들은 이케아 광명점이 문을 연 후 손님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말한다(왼쪽). 이케아 광명점이 임시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광명국제디자인클러스터 예정 부지.

    용도 변경 후 낮은 매매가 특혜 논란

    국내 가구업계 항변에도 이케아는 매장 증설을 서두르고 있다. 2013년 12월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흥지구에 5만1297㎡(약 1만5517평) 대지를 매입했고 3월 중 본격적인 매장 설립을 준비해 2017년 상반기 중 개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어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3호점을 포함해 2020년까지 국내에 총 5개 매장을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양시의 ‘이케아 봐주기’ 특혜가 논란거리다. 이케아는 원흥지구 대지를 총 매매 가격 733억5471만 원, 3.3㎡당 472만 원에 사들였다. 그런데 해당 대지는 ‘자족기능 확보시설’에서 ‘자족시설 및 유통판매시설’로 용도 변경 후 매각됐다. 유통판매시설로 용도가 변경되면 대지의 부가가치가 크게 오르는데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용도변경 이전에 비해 20억 원 정도 오른 가격으로 매매계약을 한 것이다. 용도 변경 전 가격은 약 713억 원이었다. 이케아 광명점의 대지 매매가였던 3.3㎡당 990만 원에 비해서도 절반밖에 안 된다. 고양시가 이케아를 유치하려 토지 가격을 일부러 내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케아가 고양시에 입점한다는 발표에 일산가구단지 상인들은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데 이젠 생계가 막막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양기대 광명시장은 신년사에서 “KTX 광명역세권은 2012년 코스트코 광명점 입점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이케아와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 개장과 함께 연 매출 1조 원의 상권 형성이 기대되는 등 대한민국의 쇼핑 특구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가본 KTX 광명역세권은 쇼핑 특구가 아닌 ‘이케아 특구’였다. 인근 야산으로 둘러싸인 역 앞 대지에는 이케아와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 코스트코 건물 3개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케아 측은 “광명시 소상공인과 상생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지만 역 주변에는 작은 가게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다 눈에 띈 작은 건물에도 임대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나부낄 뿐이었다.

    광명시는 뒤늦게 이케아의 영업일수 규제에 나서 영세상인을 달래는 모습이다. 현재 이케아는 가구를 판매하는 ‘전문점’으로 지정돼 있지만 ‘대형마트로 분류해 영업일수를 규제해야 한다’는 상인들 압력에 못 이겨 산업통상자원부에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건의한 상태다. 이케아는 입점 전 “건물 내 350평(약 1157㎡) 공간을 확보하고 광명시 가구업체 전시장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날 찾아간 공간은 고객 눈에 띄지도 않는 주차장 1층 구석이었고 전시 준비는 전혀 안 돼 있었다.

    한국에 북유럽식 가구에 대한 환상을 몰고 온 이케아. 광명역세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광명시의 야심을 실현할 것인가, 독단적인 행보로 광명시를 ‘이케아시’로 만들 것인가. 시민들의 불만과 영세상인들의 항의에도 이케아는 별다른 해명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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