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6

2017.07.12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인공태양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몽상’

넘쳐나는 ‘공짜 수소’로 핵융합?! 현실은 각종 난관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7-10 19: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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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를 놓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이렇게 묻는 이가 많다. “핵융합에너지를 이용해 인공태양을 벌써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조만간 핵융합에너지가 개발되면 에너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럴 법하다. 잊을 만하면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니까. ‘땅 위의 인공태양, 핵융합 시대 열린다!’

    이렇게 핵융합에너지에 열광하는 것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을 모방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왔다.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비행기를 발명했듯, 과학자는 태양 같은 별(항성)이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을 보면서 핵융합에너지의 꿈을 키워왔다. 그렇다면 정말 인공태양이 인류의 미래를 환하게 밝힐까.



    핵융합, 10억 도까지 올려라!

    태양 같은 별에서 수소(H) 원자 2개는 결합해 헬륨(He) 원자가 된다. 이 핵융합 반응에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태양에너지가 곧 핵융합에너지다. 태양이 표면 온도 5000~6000도로 달궈지는 건 이 에너지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에 도달한다. 햇빛이다.

    만약 인류가 인공태양을 만들 수 있다면, 그래서 핵융합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핵융합에너지 원료인 수소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구상에 널리고 널린 물(H2O)에서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나 원자력발전소에서 핵(분열)발전에 사용하는 우라늄처럼 고갈될 염려도 없다.



    그러나 세상일이 이처럼 쉬울 리 없다. 수많은 과학자가 반세기 넘도록 매달렸지만 핵융합에너지, 즉 인공태양은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나오는 ‘인공태양을 만들었다’는 언론 보도는 앞뒤 사정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핵융합에너지를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먼저 핵융합 반응이 가능하려면 수소 원자 2개가 융합해야 한다. 수소 원자 안에는 양(+) 전기를 띠는 원자핵이 있다. 과학시간에 배웠듯 양전기가 양전기를 만나면 서로 밀어낸다. 이 힘을 거슬러야만 수소 원자 2개가 하나가 될 수 있다.

    원자핵끼리 밀어내는 힘을 거스르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에너지가 높은 밀폐공간에 두 수소 원자를 집어넣어야 한다. 한마디로 굉장히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얼마나 높아야 할까. 놀라지 마시라! 10억도다.

    그나마 바닷물 1ℓ(1000g)에 약 0.03g  비율로 들어 있는 중수소(중성자 1개)를 뽑아 연료로 사용할 때 필요한 온도가 이 정도다. 공기나 물속에 있는 보통의 수소(중성자 0개)로 핵융합 반응을 하려면 이 온도로도 역부족이다. 말이 10억 도지, 이렇게 온도를 올리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현재 과학자들은 1억 도 정도까지 온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고, 2억~3억 도를 목표로 노력 중이다.

    10억 도에 턱없이 모자란 2억 도 정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방사성물질 삼중수소(중성자 2개)가 필요하다. 바닷물에서 뽑아내는 중수소와 달리 삼중수소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삼중수소는 리튬-6(6Li)를 이용해 얻는데, 1g의 삼중수소를 얻으려면 약 3만 달러(약 3400만 원)가 든다. 그러니 ‘널리고 널린 수소로 핵융합에너지를 만든다’는 통념도 틀렸다.

    지금 과학자들은 삼중수소를 싸고 안전하게 얻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이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면 핵융합에너지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수소나 중수소와 달리 삼중수소는 방사성물질이다. 삼중수소를 이용하는 순간 핵융합에너지 역시 방사선이나 방사성 폐기물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플라스마를 다스리는 자!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도대체 2억 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핵융합 반응에 필요한 밀폐공간을 무엇으로 만들까 하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갖는 건 당연하다. 자연계에 1억 도, 10억 도를 견디는 물질은 없으니까.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똑똑한 과학자 몇몇이 마법과 같은 해결책을 개발했다.

    고온 상태의 수소는 양전기를 띠는 수소 이온(H+)과 음전기를 띠는 전자(e-)로 나뉜다. 수소 기체를 넣고 온도를 계속 높이면 나중에는 수많은 수소 이온과 전자가 뒤엉킨 독특한 상태(플라스마 · plasma)가 된다. 이 상태에서 전류를 흘리면 전기를 띤 수소 이온과 전자가 마치 물처럼 흐른다.

    자석으로 만든 도넛 모양의 밀폐공간에 이런 상태의 수소를 가둬두고 전류를 흘리면 도넛 안쪽을 빙빙 돈다. 터널 안을 빙빙 돌 뿐 벽에 닿지 않으니, 굳이 수억 도의 고온을 견디는 물질을 찾을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이 ‘지상에 태양보다 더 뜨거운 인공태양을 만드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과학계의 자신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도넛 안을 도는 이 유체 상태를 통제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에너지가 밖으로 새는 등 문제투성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과학자 여럿이 머리를 싸매고 이 고에너지 유체를 좀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젠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인공태양의 꿈이 왜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 감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공동으로 프랑스에 짓는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이터·International Thermalnuclear Experimental Reactor)는 핵융합 반응을 하는 독특한 유체 상태를 약 400초, 그러니까 6~7분 동안 지속되도록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핵융합 반응 때 나오는 열에너지로 물을 끓인 후,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상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만큼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니 최소한 수십 년 안에 핵융합에너지가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믿는 일은 몽상에 가깝다. 참고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이터 사업비는 150억 유로(약 19조6000억 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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