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2015.01.05

“김정은 기사는 쓰지 않는다”

‘NK뉴스’, AP 평양지국 합의 폭로…선전자료 기사화 의무, 현지 인력 북측 지정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1-05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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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심장에 들어선 최초의 독립적인 서방언론 종합지국.’ 3년 전 이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평양에 의욕적으로 지국을 연 미국 뉴스통신사 AP(Associated Press)가 구설에 올랐다. 지국 운영과 관련해 북한과 맺은 비공개 합의에서 ‘언론사로서는 해서는 안 될 약속’을 했다는 비판이 그것. 최근 미국의 북한 전문 회원제 뉴스사이트 ‘NK뉴스’는 AP 최고경영진이 북한 측과 교환한 합의문을 공개하며 비판에 나섰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뉴스통신사 AP는 2009년부터 북한 당국 및 조선중앙통신과의 협의를 거쳐 2012년 1월 평양에 종합지국을 개설했다. 이후 평양 현지에서 만들어진 AP의 영문기사와 사진, TV 뉴스 자회사인 APTN 명의의 영상물은 ‘AP(Pyongyang)’ 크레딧을 달고 전 세계로 타전되고 있다.

    평양지국 비공개 합의

    ‘NK뉴스’가 공개한 합의문 내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조선노동당과 공화국 정부의 정책을 전 세계에 배포하는 데 기여한다’는 지국 설치 목적. 이에 따라 매달 10개 분량의 북한 측 선전자료를 영어로 번역해 ‘AP의 이름으로’ 송고하는 데 합의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해당 기사의 내용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양측의 충분한 협의에 따라 진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AP 평양지국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검열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조건이다.

    또한 합의문은 AP 평양지국에서 근무할 현지 고용 인력을 북한 관영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이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집필기자와 사진기자, 운전기사 총 3인으로 구성된 이들의 임금 역시 AP 측이 직접 지급하게 아니라, 사무실 임대비나 통신비 등과 함께 매달 현금 1만2000달러를 한꺼번에 조선중앙통신 측에 주는 형식이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이들은 AP에 의해 고용된 것이 아니라 조선중앙통신에서 고용해 파견한 셈. 이들 북한 측 인력은 실제로는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소속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반면 북한 당국은 지국장을 포함해 AP 본사에서 파견하는 언론인에게는 상주 비자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이들이 자리를 비우는 상당 기간 평양지국은 AP 본사나 서방 언론인의 감독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다른 국가에서는 허용된 적이 없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는 게 AP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 심지어 AP가 운용 중인 ‘윤리준칙선언(Statement of Ethical Principles)’과도 상충되는 부분이 적잖다는 것이다.

    합의문 공개와 함께 ‘NK뉴스’는 “AP는 북한 체제의 보호장구(mouthpiece)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나 양측이 합의한 조건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익명의 내부자 평가를 인용하고 있다. 문서화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에 관한 비판 기사는 출고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약속도 있었다는 것. 실제로 지국 개설 이래 김 제1비서에 초점을 맞춰 작성한 기사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게 ‘NK뉴스’ 측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NK뉴스’는 ‘AP 평양지국이 타협했을지언정(compromised) 북한에 대한 주요 정보원(source)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기고를 함께 소개했다. 접근이 쉽지 않은 땅에 돌파구를 뚫었다는 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 형식의 글이다. 2012년 이후 프랑스 뉴스통신사 AFP, 영국 로이터 등이 평양지국 개설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AP 평양지국을 둘러싼 이번 폭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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