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2015.01.05

내용은 빤한데 가슴은 찡하네

뮤지컬 ‘킹키부츠’

  • 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1-05 11: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내용은 빤한데 가슴은 찡하네
    남자 배우의 여장은 이제 더는 새롭지 않다. 뮤지컬 시장에서는 ‘헤드윅’의 성공 이후 ‘라카지’ ‘프리실라’ 등 트랜스젠더나 드래그퀸(여장남자)이 주인공인 작품이 속속 등장했다. 이유가 뭘까. 관객 처지에서는 여성스러움을 연기하는 남자 배우들과 그들이 신은 아찔한 하이힐, 화려한 화장, 파격적인 복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또한 십중팔구 드래그퀸은 편견에 사로잡힌 타인과 충돌하거나 남과 다른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따라서 갈등 구조를 만들기에도 수월하다. 남자 배우가 드래그퀸을 연기하면 ‘파격’ ‘충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홍보하기에도 좋으니 어찌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단점은 그렇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 못하면 어설퍼지고, 자칫하면 빤한 이야기가 된다는 점이다.

    ‘폐업 위기에 놓인 구두 공장 사장 찰리가 드래그퀸 롤라에게 영감을 얻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드래그퀸 전용 슈즈 ‘킹키부츠’를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980년대 영국 노샘프턴, 주변 공장이 줄줄이 망해가던 중 남성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강철 굽을 가진 하이힐을 개발해 재기에 성공한 스티브 팻맨의 이야기다. 여기에 친구 사이 우정과 사랑, 남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편견의 시선, 그걸 극복하는 과정…. 들으면 들을수록 빤해 보이지만 뮤지컬 ‘킹키부츠’는 유쾌하고 화려한 넘버에 주인공들의 성장 과정을 빤하지 않게 풀어내며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았다.

    작품은 구두 공장장의 아들 찰리와 권투선수의 아들이자 드래그퀸인 롤라가 드래그퀸 전용 부츠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1980년대를 주름잡은 디바 신디 로퍼의 곡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들썩들썩한 댄스곡과 애잔한 발라드까지 조화롭게 녹아들어 즐기기에 무리가 없다. 롤라 역을 배우 오만석과 강홍석이 완벽하게 소화해 “롤라 역은 누가 맡아도 좋다”는 평이 나온다.

    찰리(지현우, 김무열, 윤소호)와 롤라의 찰떡 호흡에 6명의 드래그퀸 에인절의 군무가 더해지면 ‘킹키부츠’의 화려함이 완성된다. 케이블채널 Mnet ‘댄싱9’에 출연했던 무용수 한선천을 비롯한 6명의 남자 배우는 10cm 높이의 하이힐 위에서 여성보다 더 여성스러운 에인절의 면모를 보여준다. 구두 공장 벨트컨베이어 위에서 펼쳐지는 ‘함께 외쳐봐 YEAH’ 장면과 2막의 화려한 런웨이 장면에선 벌떡 일어서고 싶은 충동이 든다.

    롤라 역의 오만석은 ‘킹키부츠’ 제작보고회에서 “헤드윅이 인생에 대한 철학을 좀 더 깊이 풀어냈다면 롤라는 가볍게 드러낸다”며 “롤라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Be yourself’)를 인용하는데, 너 자신이 되고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남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솔직해지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들의 여정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치유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극 말미에 롤라가 들려주는 행복해지는 비법 6가지도 놓치지 말자.



    2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대극장.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