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6

2017.07.12

특집 | 양날의 검, 지역인재채용

지방고 출신도 서울서 대학 나오면 서울 인재?

지역 균형 발전의 마중물 vs 지역 외 대학 출신 역차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7-10 13: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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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방책으로 유명무실했던 지역인재채용할당제(지역할당제)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할당제란 공공기관이 신입 직원을 공채할 때 해당 기관이 위치한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를 우대하는 제도다. 그동안 지역할당제는 단순히 권고 사항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각 지방에 위치한 공공기관에 해당 지역 인재를 적어도 30% 이상 채용할 것을 지시했다. 지역할당제 강화는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이 때문에 권고에 불과하던 지역할당제가 의무화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정부는 지역할당제를 법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 당시 여야 3당 의원과 일부 기초자치단체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 35% 의무채용 법제화’를 위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할당제 의무화를 촉구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6월 26일 모든 공공기관 신입 직원 30% 이상을 지역에서 뽑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역할당제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규정으로 참여정부 시절 처음 법제화됐다.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29조의2는 공공기관이 신규 채용할 때 기관이 위치한 지역의 고교나 대학을 졸업한 인재를 우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2014년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에서 지역할당제는 더 구체화된다. 법 시행령 제9조에는 지역균형인재 육성을 위해 각 공공기관이 신규 채용 인원 35%를 채용할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해당 공공기관을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효과 없는 ‘지역할당제’ 권고

    명문 규정이지만 강제성이 없어 각 공공기관의 지역인재채용률은 법 규정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신규 채용을 실시한 공공기관 76곳 가운데 지역인재를 35% 이상 채용한 곳은 11곳으로 전체의 14.4%에 그쳤다. 정부 방침대로 30% 이상 채용한 곳도 16곳(21.1%)에 불과했다(표 참조).



    지역인재를 30% 이상 채용한 기관 가운데 다수는 지난해 신규 채용이 20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조직 규모가 작아 지역할당제의 원래 목표인 지역 균형 발전에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16개 기관 중 대한석탄공사(29명), 한국원자력환경공단(22명), 한국감정원(45명), 한국남부발전(97명) 등 네 곳만 20명 넘는 인원을 채용했다. 채용 인원이 100명 이상이던 23개 기관은 단 한 곳도 지역 출신 인력의 신규 채용 비율이 30%를 넘지 않았다. 지난해 가장 많은 인원을 신규 채용한 곳은 전남 나주시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한전)다. 한전은 채용 인원 1412.5명(소수점은 시간선택제로 채용된 인원의 일일 근무시간을 전일제 근로자의 근무시간으로 환산한 것) 가운데 124명(8.8%)만 지역 대학 출신이었다. 전체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현황을 봐도 지역할당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해 76개 공공기관이 채용한 신규 인력 8987.25명 중 지역 출신은 12.8%(1147명)에 불과하다.

    지역인재채용 실적이 저조해 정부가 의무화 규정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일부 취업준비생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능력 대신 출신 대학을 기준으로 인원을 할당해 채용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역할당제 의무화 계획을 밝힌 6월 22일 “(각 공공기관이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 이력서에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소는 일절 기재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능력으로만 선발하는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이번 달 안에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 등이 합동으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실천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기로 했다.



    블라인드 채용 한다더니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모(27) 씨는 “현 정부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가 능력 위주의 채용 문화를 정착하겠다는 것인데, 공공기관 지역할당제 의무화는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채용 과정에서 지역인재임을 드러내려면 출신 대학을 밝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취업준비생 유모(28) 씨 역시 “결국 지방 대학끼리 학교별 줄 세우기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지역인재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29조의2 1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자리한 지역에서 초중고교를 모두 졸업하더라도 다른 지역 대학을 졸업한다면 지역인재에 해당되지 않는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정모(26) 씨는 “지방에서 고교를 졸업했고 가족이 모두 지방에 사는데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지역인재가 아니고, 서울에서 20년간 살아왔지만 서울 소재 대학 진학에 실패해 지방 대학에 간 사람은 지역인재가 돼 공공기관 채용에서 우대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한편 모든 공공기관에 지역할당제를 강제하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개연성도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도 지역할당제 강제 도입을 검토했으나 위헌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지금과 같은 ‘채용 장려제’로 방향을 틀었다. 유사한 제도인 ‘공공기관 청년고용할당제’(청년할당제)도 위헌 논란을 겪었다. 청년할당제는 공공기관이 15~34세 청년 미취업자를 매년 정원의 3%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2014년 헌법재판소(헌재)는 청년할당제가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기된 헌법소원 심판에서 합헌 4명, 위헌 5명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법상 위헌 결정 정족수가 6명이 돼야 해 합헌 결정이 났지만,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많았다는 점은 그만큼 위헌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헌재도 “공공기관은 사기업이나 사적 단체와 달리 직원 채용 시 일반 국민에게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청년할당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더라도 채용 정원의 일정 비율을 할당하기보다 정원 외 고용을 할당하는 방법 등을 사용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할당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지역할당제는 각 지방 인재가 서울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 지역 균형 발전을 돕는다. 게다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지역민이 늘면 그만큼 지역 내 공공기관의 지지가 공고해진다는 이점도 있다. 물론 지역할당제가 능력 위주의 선발 등 대원칙을 해쳐선 안 된다. 따라서 할당 비율을 적절히 조정하고 한시적 시행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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