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6

2017.07.12

특집 | 지방분권 신호탄 100만 특례시

인구 100만 도시의 외침 “특례시를 許하라”

인구 늘어 행정 수요 폭발, 예산은 갈수록 삭감…특례시 지정은 실질적 지방자치의 첫걸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7-10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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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수원·고양·용인, 경남 창원, 충북 청주 등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특례시’ 추진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례시는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의 중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특례시가 되면 현행 법령상 시·군·구인 행정구역이 특례시·시·군·구로 변경된다. 한편 특례시는 일반시와 달리 조직·재정·인사·도시계획 등 행정과 재정 분야에서 재량권이 훨씬 넓고, 이는 곧 지방분권 강화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법은 인구 50만 명 이상인 기초자치단체에 대해 행정특례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는 도(道)와의 사무 배분에 대한 규정일 뿐, 실질적인 특례를 의미하는 재정운영, 국가지도, 감독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그렇기에 인구 100만 명 이상인 대도시들은 특례시 도입으로 각 시 규모에 걸맞은 행정과 재정 능력을 부여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특례시로 지정되면 인구 규모에 맞춰 공무원 수와 해당 직급이 늘어나고, 도가 받던 세원이 특례시로 이양돼 세수 증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 밖에 택지, 문화시설, 농지, 청사 건축 등에서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고 개발지구 지정 권한과 시립박물관·미술관 설치 권한도 생겨난다.

    특례시 문제는 2013년 박근혜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듬해 대통령소속 자문위원회인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대도시 유형별 차등분권방안 마련’에 대한 연구 용역을 실시하는 등 특례시 관련 안건을 수렴해왔으나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지방재정 개편에 따라 수원, 용인 등 경기도 4개 시가 조정교부금 감소 대상 지방자치단체(지자체)로 분류되면서 이들 도시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文 정부 취임 후 물 만난 특례시   

    이들 지자체는 불교부단체로 이미 정부로부터 교부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기도의 조정교부금마저 깎이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고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지방재정 개편은 올해부터 도입됐다. 이 일을 계기로 100만 대도시의 특례시 지정에 대한 열망은 더욱 뜨거워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취임 후 특례시 지정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지방분권 실현을 강조해왔기에 특례시 추진에 호의적일 것이라는 평이다. 

    특히 지자체 조직을 관장하는 행정자치부(행자부)의 움직임이 고무적이다. 행자부는 2007년 충남 천안에 구청 신설을 승인한 이후 10년째 기초자치단체의 ‘구’ 단위 행정기관 신설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인구 60만 명이 넘는 경기 화성시와 50만 명에 육박하는 평택시에는 여전히 ‘구’가 없다. 이랬던 행자부가 올해 초 ‘100만 대도시 조직진단 연구를 위한 용역’에 착수한 데 이어 5월에는 수원, 용인, 고양 등을 순회하며 특례시 지정과 관련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현재 수원시가 가장 적극적으로 특례시 지정에 앞장서고 있다. 수원시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수원 지역 대선공약 정책제안서’를 각 당에 전달하면서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로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특례방안 법제화’를 요구했다. 수원시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123만1499명으로, 울산광역시(119만6205명)보다 많다. 하지만 공무원 수는 2878명에 불과해 울산(5952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무원 인당 담당하는 주민 수는 수원 414명, 울산 196명이다. 예산도 울산이 수원보다 3조 원가량 더 많다(26쪽 표 참조).

    더군다나 중앙정부가 기초자치단체의 조직과 인원, 예산 등을 쥐고 있어 자율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수원시는 100만 이상 대도시 특례법 제정을 꾸준히 요구하면서 2013~2015년 국회에서 ‘국회의원·5개 대도시(수원·고양·용인·성남·창원) 정책간담회’를 주도했다. 지난해에는 청주까지 포함시켰다. 또 올해 3월 고양시, 용인시와 함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100만 대도시 조직체계 개선 공동연구 용역’을 의뢰해 이달 말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수원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지난해 8월 수원시 등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행정적, 재정적 특례를 부여하는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가칭 ‘100만 대도시 특례법’이라 부르는 이 법안은 부시장 2명을 3명으로 확대하고, 취득세를 시의 세목으로 하는 특례조항을 담았다. 또한 개정안에는 인구 100만 대도시와 중앙정부의 상호 연계성 확보를 위한 인사 교류 특례도 포함돼 있다.

    개정안 발의 당시 김 의원은 “수원 등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가 늘어나면서 지방자치제의 근간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이들 도시가 일반 시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게 돼 있어 행정의 비효율이 심각한 실정이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기존 광역과 기초 사이의 준광역급 도시행정 수요를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주민 편의 증진 및 복지, 문화 등 행정 서비스 질을 높이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후 김 의원이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자 수원시의 특례시 지정 기대는 더욱 커졌다. 앞서 지난해 7월 국민의당 이찬열 의원(경기 수원갑)은 ‘지방자치법 개정안 특례시 법안’을, 같은 달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경기 수원병)은 ‘지방자치법 개정안 지정광역시 법안’을 발의했다. 

    입법부 수장인 정세균 국회의장도 5월 29일 취임 1주년 합동 인터뷰 자리에서 특례시 지정과 관련해 찬성 의사를 밝히고 적극 돕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 의장은 “새 정부가 지방분권을 위해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많이 이양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때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 대한 특례도 함께 논의되도록 국회에서 꼼꼼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용인시도 특례시 지정을 위한 ‘대도시준비 TF(태스크포스)팀’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8월 기초자치단체 중 4번째로 인구 100만을 돌파한 용인시는 현재 공무원 인당 주민 407명을 담당하고 있다. 인구 50만 이상 도시의 평균 담당 주민 수 347명보다도 많다.


    특례시 되면 공무원 수, 세수 늘어

    용인시 관계자는 “우리 시는 특례시 지정뿐 아니라 기흥구 분구, 처인구 2개 면의 읍 승격 등 인구 증가에 따른 조직 개편이 대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례시 지정 후 일어날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공무원 충원과 세수 증가다. 현재 공무원 인원을 결정하는 기준은 총액인건비인데, 현재 전체 예산의 3% 이내로 제한된 것을 더 증액해 인원과 직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총액인건비 제도는 그동안 확대된 도시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공무원 인원 확충의 걸림돌로 인식돼왔다.

    재정 부문에서도 자율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원시는 지방세기본법 제8조를 개정해 지역자원시설세·지방교육세를 ‘특례시’ 세목으로 분류할 경우 세수가 1458억 원 증가할 것이라 보고 있다. 또한 현재 11%인 지방소비세율을 16%로 인상하고, 도세인 취득세·등록면허세·레저세·지방소비세를 ‘시 60% 대 도 40%’ 비율로 바꾸면 3986억 원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대신 그동안 도에서 교부받던 예산을 일정 부분 삭감하거나 폐지(조정교부금)하겠다는 방침이다.

    용인시 역시 지역자원시설세·지방교육세를 특례시 세목으로 분류해 1430억 원을 추가 확보하고, 취득세·등록면허세·지방소비세 공동과세(시 60% 대 도 40%), 지방소비세율 5%p 인상으로 세수가 3438억 원 늘어나, 올해 징수목표액 기준 총 1663억 원이 순수 증액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특례시 지정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 도 처지에서 특례시는 결코 달갑지 않은 변화일 수 있다. 현재 도 재원의 54%가 취득세인 데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인 대도시에서 걷히는 취득세가 만만치 않아 법안이 현실화될 경우 도 재정에 적잖은 타격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특례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폐해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이광희 충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100만 도시 청주 만들기가 불편하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청주시의 특례시 추진 정책을 비판했다. 현재 청주시 인구는 80만 명에 불과하지만, 김진표 의원이 발의한 지방분권법 개정안에 ‘면적 900km2 이상인 지방자치단체로서 인구 80만 이상인 경우에는 이를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로 본다’는 내용이 포함된 덕에 지난해부터 특례시 지정 가능 도시로 꼽히고 있다.

    이에 청주시는 ‘인구 100만 늘리기’ 운동에 한창이다. 청주에 신규 전입하는 시민에게 각종 혜택을 주고, 심지어 청주시청 전 직원을 대상으로 다자녀 공무원의 인사 우대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또 100만 특례시에 대비해 도로를 정비하고 교통안전시설도 확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이광희 도의원은 “외형적, 양적 성장에만 집중하는 ‘보여주기 식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인근에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로 청주시 인구가 대거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인구 100만 돌파’는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적은 인구 안에서 문화나 교육 등을 특화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이 도의원은 “청주는 수원, 용인 같은 100만 대도시와는 처한 현실이 다르다. 청주시가 지금 집중해야 할 문제는 미세먼지 해결, 녹지율 확대 등이다.

    100만 인구가 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공사가 벌어져 난개발이 심각하다. 녹지율도 전국에서 꼴찌인 43%밖에 안 된다. 세수 증가 역시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와 마찬가지인데, 과연 이런 주먹구구식 행정이 시민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구 500만 규모 ‘광역지방정부’ 등장할까

    100만 특례시 제도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분권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분권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6월 14일 청와대에서 가진 17개 시·도지사들과 간담회에서 “내년 개헌 때 헌법에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조항과 함께 제2국무회의를 신설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며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선공약인 ‘제2 국무회의 신설’ 의지를 밝힌 동시에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 시·도지사가 참석하는 제2 국무회의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공약을 수용한 것으로, 이날 문 대통령은 “법 개정 때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 도지사 간담회 형태로 수시로, 필요하다면 정례화해 제2 국무회의 예비모임 성격으로 사실상 제도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국무회의가 국정 이행과제나 정책을 심의하듯이, 시·도지사 간담회에서는 지방분권과 지방발전에 관한 내용을 심의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안 지사는 금세 ‘광역자치단체 통폐합’을 새로운 화두로 들고 나왔다. 6월 21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중부권 7개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서 “인구 500만 명을 기준으로 하는 광역시·도를 통폐합해 연방제 수준의 ‘광역지방정부’ 구성안을 함께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

    안 지사는 “서울 중심의 남북축 국토·경제개발 전략이 동서축으로 확대되고,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도 ‘5+2경제광역권’(수도권·충청권·호남권·대경권(대구, 경북)·동남권(부산, 울산, 경남)의 5대 광역 경제권과 2대 특별광역 경제권(강원권, 제주권)으로 나누자는 논의)을 얘기했다. 때마침 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제안한 만큼 지방자치단체(지자체)도 연방제 수준의 정부연합이 되기 위한 재편 방안을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방분권에 대해 안 지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전문가가 적잖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인구 500만 내외의 광역지방정부가 실효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핀란드, 덴마크, 싱가포르처럼 인구 500만 명인 국가가 최적의 경쟁력을 갖는다고 한다. 우리도 인구 500만 내외의 광역지방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물론 여러 지자체를 하나로 합치는 게 정치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서울과 수평적 관계를 맺으려면 연방제 형태의 광역지방정부가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방제 형태의 지방분권을 시행하려면 지방정부가 ‘징세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7월 5일 부산시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은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니라, 권한까지도 지방으로 이행돼야 한다. 특히 ‘징세권’을 지방정부가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8 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개선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한 이는 현재 특례시를 추진 중인 대도시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6 대 4로 바꾸려 하는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한편 진정한 의미의 징수권은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세목을 만들어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뜻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앞서 과연 지자체의 자주 재원 확보와 연방제 형태의 지방분권이라는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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