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2015.01.05

일과 섹스 버무린 色다른 웃음

정범식 감독의 ‘워킹걸’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1-05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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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 섹스 버무린 色다른 웃음
    현재 분위기로 보면 왜 이 영화 제목이 ‘워킹걸’인지 의아할 듯싶다. 영화 포스터에서 보기에도 민망한 운동복 차림에 가슴골을 내보이는 클라라나, 쇄골을 드러내며 야릇하게 입술을 깨문 조여정만 보자면 말이다.

    정범식 감독과 출연진이 보여준 제작보고회 분위기도 그랬다. 성인용 기구를 사용해봤다느니, 신음소리가 실감 났다느니 같은 말이 오고 갔으니 ‘워킹걸’의 ‘워크(work)’가 과연 뭘 의미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워킹걸’은 조여정, 클라라라는 두 배우에 대한 선입관에서 시작해 그 편견을 깨는 데 도달하는 작품이다. 일(워킹)과 여성(걸)을 고민하는 영화, 하지만 너무 심각하지 않게, 재밌고 발랄하게 풀어낸 영화가 바로 ‘워킹걸’이다.

    영화는 대조적인 두 여자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아동용 완구회사 마케팅 과장인 백보희(조여정 분)는 일에 미친 워커홀릭이다. 남편과의 잠자리, 딸아이와의 스킨십도 잊은 지 오래. 그에게 가정은 재충전을 위한 휴식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딸 하유의 육아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이 모처럼 마련한 이벤트를 즐길 여력도 없다. 직장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자 쾌락이기 때문이다.

    한편 보희와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치는 이웃 여자는 딱 봐도 보희와 딴판이다. 두 여성 캐릭터의 특징은 입고 나오는 옷으로 차별화되는데, 보희 옷장이 검은색 슈트와 하얀색 블라우스로 꽉 채워져 있는 반면, 이웃 여자는 늘 몸을 거의 다 드러내는 국적불명 의상을 입는다. 매일 집 앞에서 마주치는 남자도 외국인부터 늘씬한 모델까지 각양각색이다.

    어느 날 보희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망치고 해고를 당한다. 이웃집 그 여자, 오난희(클라라 분)에게 가야 할 택배가 보희에게 잘못 온 바람에 새로운 완구를 소개하는 자리가 섹스토이 전시회가 돼버린 것이다. 해고된 후 재취업하려 애썼지만 업계에 퍼진 악명 탓에 실패한다. 마침내 보희는 섹스토이도 ‘장난감’이란 발상의 전환을 하기에 이르고,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재기하겠노라며 잔뼈 굵은 마케팅 실력을 뽐낸다. 그 과정에서 ‘나가요’라 멸시하던 난희를 이해하고, 진지한 사업 파트너로 삼는다.



    일과 섹스 버무린 色다른 웃음
    영화 ‘워킹걸’의 웃음 포인트는 성적 요소다. 섹스토이라는 소재가 영화 곳곳에 웃음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결국 영화가 말하려는 최종 이야기는 가정과 일의 균형 문제다. 일하는 여성에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쪽을 고를 것인가. 여성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아이가 아픈지도 모르고 성 기구를 파는 데 혈안이 된 보희의 모습은 우리 곁의 워킹맘을 연상케 한다. 민폐 동료가 되지 않으려고 더 독하게 일에 매진하는 모습 말이다.

    만약 보희 직업이 교사나 회사원 같은 평범한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빤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이라는 금기의 소재를 결합시킴으로써 오래된 고민은 은밀하고도 새로운 웃음으로 거듭났다. 과연 일과 가정 중 무엇이 소중한가라는 질문에 영화는 그 나름의 답을 건네는데, 마지막으로 내려진 최종 대답은 꽤나 영악해서 흥미롭다. 결국, 일도 가정도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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