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2015.01.05

미래권력에 밀려나는 친박

갈 길 바쁜 청와대, 당에선 벌써 세력 교체 시작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01-05 09: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래권력에 밀려나는 친박

    2014년 12월 30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가진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오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왼쪽). 같은 시간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친박(친박근혜)계 모임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송년 오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5년은 임기 동안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인 만큼 노동, 금융, 연금, 교육, 주택, 공공기관 개혁 등 개혁과제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2월 29일 ‘2014년 핵심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2015년을 ‘국정과제 중점 추진의 해’로 삼을 것임을 밝혔다. 임기 3년 차를 맞는 박 대통령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

    5년 단임 대통령에게 임기 3년 차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해다. 임기 1년 차에 국정 로드맵을 짜고, 2년 차에 핵심 과제를 착실히 준비한 뒤 3년 차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임기 종료로 치닫는 4년 차와 5년 차에도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가 예정된 만큼 박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은 2015년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예고된 당내 세력 교체

    5년 단임제가 정착한 이후 역대 대통령은 임기 3년 차에 ‘역사에 남을 자신만의 치적’을 남기려 노력했다. 노태우의 북방정책, 김영삼의 세계화, 김대중의 남북정상회담, 노무현의 세종시 건설,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이 임기 3년 차를 맞아 ‘국정과제 완수’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통령이 국정을 원활히 수행하려면 국회, 특히 원내 다수당인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당청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갈등이 고조돼 있다.

    당청 갈등은 2014년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전대)에서 비박(비박근혜)계 좌장 김무성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이미 예고됐다. 김 대표는 서청원 의원을 앞세운 친박(친박근혜)계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당권을 손에 넣었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며 당대표에 오른 그가 청와대 2중대 노릇에 만족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 더욱이 김 대표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미래권력 가운데 한 명이다. 당청 갈등은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새누리당은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친이(친이명박)계에서 친박계로 전폭적인 당권 교체가 이뤄졌다. 세력 교체를 주도한 이는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4년 가까이 친이계 주도로 운영되던 한나라당은 박 비대위원장 시절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교체했다. 외형적 변화뿐 아니라 총선 후보자 공천 등을 통해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대대적인 인적 교체도 이뤘다. 당의 세력 교체 결과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압도적인 당선과 대선 승리로 귀결됐다. 2014년 7월 전대에서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친박계는 새누리당은 물론 정부와 청와대까지 아우르는 사실상 ‘친박 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박 좌장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당내 권력구도는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2014년 12월 30일 친박계 모임에서는 김무성 대표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한 친박계 의원은 “전대에서의 득표율에 비해 대표가 혼자 모든 걸 전횡하는 듯한 모습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앞으로 인사를 할 때 최고위원 등과 의논해가면서 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또 다른 친박계 의원도 “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할 수 있게끔 여당이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에서 제구실을 잘해줘야 하는데 당청 관계가 전례 없이 삐거덕거리고, 금이 가 있다”며 “기름 치고 금 간 곳을 보강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친박계가 당 지도부 전횡을 문제 삼는 배경에는 최근 진행된 당원협의회(당협) 운영위원장 교체와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은 2014년 12월 중순 부산 사하갑 당협위원장을 김척수 위원장에서 문대성 의원으로 교체했다. 김 전 위원장은 친박계가 당권을 쥐고 있던 2년 4개월 동안 사하갑을 지켜온 인물. 총선을 1년 4개월 앞둔 시점에 당협위원장을 교체하는 것은 사실상 예비 공천을 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20대 총선은 여야 할 것 없이 상향식 공천이 예고돼 있어 당협위원장이 되면 당원과 대의원 등을 일찌감치 접촉하며 지역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총선 텃밭을 가꿀 수 있다.

    새누리당 대변인 출신 민현주 의원과 친박계로 분류되는 지상욱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격돌하는 서울 중구, 김상민 의원과 서청원 최고위원의 최측근 박종희 전 의원이 맞붙은 경기 수원갑 당협위원장 선출 갈등도 비박 대 친박의 계파 다툼 양상을 띠고 있다.

    의도된 초청 누락?

    친박 대 비박 갈등은 지난해 10월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구성 때 특위위원 선정을 두고 이미 표출된 바 있다. 당시 친박계 맏형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김무성 대표에게 크게 항의한 끝에 조강특위 위원 2명이 서 최고위원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로 교체됐다. 그러나 특위위원 몇 사람으로 당내 세력 교체를 저지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마치 당대표와 최고위원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차이만큼이나 그 간극은 넓고도 크다.

    당협위원장 교체를 둘러싼 당청 갈등은 1월 2일로 예정된 청와대 신년회 참석자 명단에 당 3역 가운데 하나인 사무총장의 배제로 나타났다. 그동안 청와대 신년회에는 당대표 외에 당 3역이라 부르는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이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이군현 사무총장 대신 친박계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명단에 포함됐다. 이 사무총장을 청와대 초청자 명단에서 누락한 것은 친박 배제로 흐르는 조강특위 활동에 대해 청와대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이란 관측이 많다.

    임기 3년 차를 맞아 박 대통령은 국정과제 추진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지원할 여당 내 우군인 친박계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당청 갈등에 따른 파열음이 커질수록 박 대통령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원장 등장과 함께 화려하게 권력의 중심에 섰던 친박계는 4년 만에 미래권력에게 당권을 내주고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의 등장으로 친이계가 속절없이 한꺼번에 무너졌다면, 친박계는 서서히 고사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