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7

2014.12.15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은 별로였다

빈 국립 오페라의 ‘살로메’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12-15 10: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은 별로였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에서 공연된 오페라 ‘살로메’(왼쪽). 살로메 역을 맡은 미국 소프라노 리즈 린드스트롬.

    무대 배경은 고대 갈릴리 왕국, 연회가 열리는 분봉왕(分封王) 헤롯 안티파스의 궁전. 유대 공주 살로메는 계부의 음흉한 눈길을 피해 정원으로 나온다. 그곳 지하 수조에는 예언자 세례 요한이 수감돼 있는데, 그는 갇혀서도 천륜을 거역한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를 질타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호기심을 느낀 살로메는 자신을 흠모하는 경비대장 나라보트를 구슬려 세례 요한을 꺼내오게 한다.

    지상으로 올라온 세례 요한의 당당한 모습과 신비한 음성에 매료된 살로메. 그녀는 그의 육체, 머리칼, 입술로 시선을 옮기며 접촉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는 헤로디아의 딸인 그녀를 한사코 거부한 채 감옥으로 돌아가고, 그녀는 치욕과 분노로 몸서리친다.

    잠시 후 살로메를 찾아 정원으로 나온 헤롯. 그는 이복동생의 부인을 아내로 취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의붓딸의 환심을 사려고 혈안이 돼 있다. 급기야 그는 살로메에게 자신을 위해 춤을 춰주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살로메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관능적인 춤으로 헤롯의 찬탄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세례 요한의 목’!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희곡에 기초한 오페라 ‘살로메’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오페라는 190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직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세계 각지의 오페라 무대를 차례로 점령해나갔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의 성공 덕에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며 별장까지 마련했고, 이후 창작 활동의 무게중심을 관현악에서 오페라로 옮길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유수 오페라 극장의 인기 레퍼토리로 절찬받는 이 작품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과 광기’가 자리한다. 그것은 오페라 역사상 손꼽히는 ‘팜파탈’ 살로메에 의해 상징되고 표출된다. 그런데 이 관능적인 주인공의 나이는 겨우 15세! 이러한 설정은 인간 욕망은 지극히 본능적이며, 순수와 광기는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살로메가 헤롯 앞에서 겹겹이 감싼 베일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추는 ‘일곱 베일의 춤’이지만, 이보다 더 주목할 것은 그녀가 세례 요한의 잘린 얼굴에 입을 맞추는 엽기적인 장면이다. 한때 필자는 이런 오페라를 보는 이유가 대체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살로메의 키스’ 장면 전후에 그녀가 읊조리는 의미심장한 대사에 도사리고 있지 않나 싶다. “나는 잘 알아. 사랑의 미스터리는 죽음의 미스터리보다 위대한 거야!” “너의 입술에서는 쓴맛이 나는구나. 피 때문일까. 아니야, 아마 사랑의 맛일 거야. 사랑의 맛이 쓰다고들 하잖아.”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에서 봤던 ‘살로메’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기도 했겠지만, 음악감독 부재의 시기를 보내는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어딘지 산만했고, 젊은 프랑스 지휘자는 그것을 추스를 능력이 부족했다. 아르누보풍의 무대 위에서 펼쳐진 ‘일곱 베일의 춤’도 가수가 전라를 감행하며 열연했지만 조금 겉도는 인상이었다. 보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뇌리를 맴돌았다. ‘역시 세상엔 끝내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존재하는 것인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