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7

2014.12.15

뒷북 특별감찰관제 무딘 칼날?

청와대 권력 감시 대상 확대와 독립성 강화 논의 필요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전예현 내일신문 기자 whatisnew@naver.com

    입력2014-12-15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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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북 특별감찰관제 무딘 칼날?

    특별감찰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위한 여야 첫 회의가 열린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운영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새누리당 김도읍, 이장우,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서영교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왼쪽부터).

    “발이 썩어가고 있으면 발목을 잘라야 한다. 안 그러면 다리 전체를 못쓰게 된다. 문제는 어딘가 썩어가고 있다는 걸 대통령은 잘 모른다는 거다. 대통령에게 ‘최측근’은 든든한 언덕이자 항상 조심해야 할 존재다.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측근 그룹은 대통령에게 절대 충성을 바친다.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주군을 중심으로 뭉쳐 의리를 지키는 그들에게 대통령은 각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수족(手足)’이란 표현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청와대 고위직 출신의 한 야당 의원은 대통령과 측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역대 정부의 비선 논란이 보여주듯 대통령 최측근은 때로 골칫거리다. 대통령에 기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온갖 논란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대통령 측근이란 이유로 헌법상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은 아무것도 없지만 실상은 다르다. 특히 인사 정보에 민감한 공직자에게 대통령 측근의 말 한마디는 자신의 출세 가도를 결정짓는 고급 정보로 여겨진다. 또 다른 전직 청와대 핵심 인사의 설명이다.

    6개월 동안 유명무실한 상태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검찰과 장차관급 인사 소식을 ‘빨리 아는 것’을 활용해 승진 대상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마치 본인이 힘을 써준 것처럼 과시했다. 실상과는 별개로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승진 소식을 접한 대다수는 크게 감격한다. ‘보답’도 알아서 준비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청와대 주변에 ‘줄’이라도 대보려는 사람이 넘치는 현실에서 국정 최고 지도자의 측근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가 엄청난 권력의 상징이다. 최근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로 촉발한 ‘청와대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 논란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 정윤회 문건 이후 여야가 바빠졌다. 한동안 사실상 방치했던 특별감찰관제를 시행한다고 분주해졌다. “특별감찰관제가 시행됐다면 이번 사건은 어느 정도 예방됐을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 때문. 이를 두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다행”이라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현재대로라면 비선을 감시하기엔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감찰관제는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을 감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국회가 후보자 3명을 추천하면 그중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박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척결을 위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특별감찰관제 시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별감찰관제는 2월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해 6월 10일 발효됐지만, 후보자 인선 작업이 늦어지면서 6개월여 동안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국회가 사실상 법을 위반한 셈이다.

    여야는 7월 야당 몫의 민경한, 임수빈 변호사와 여당 몫의 조균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3명을 감찰관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지만, 조 교수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새누리당이 민 변호사의 시국선언 참여 등의 경력을 문제 삼아 임명 절차가 중단됐다. 최근 새누리당은 이석수, 정연복 변호사 등 2명을 새로운 후보로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양당이 추천 인사 수를 놓고 대치 중이다.

    이번 문건 파문의 경우,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도 관련 의혹이 나오는 만큼 특별감찰관제가 일찌감치 시행됐더라면 ‘워치도그’(watch dog·감시견)가 미리 짖었을 테고, 이런 식의 비선 논란은 어느 정도 사전에 차단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의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시절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12월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 내 민정수석실이나 공직기강비서관팀 이런 곳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데 비해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긴 하지만 직무상 독립돼 활동한다. 그래서 이런 (이른바 ‘정윤회 의혹’) 사건이 재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감찰관이 빨리 임명되도록 국회가 얼른 추천하고 절차를 거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도 “올해 초부터 특별감찰관제가 시행됐다면 이른바 ‘정윤회 의혹’ 등을 차단하는 예방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뒷북 주장’이 나오자 국회 논의는 탄력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김도읍, 이장우 의원을, 새정치연합은 김관영, 서영교 의원을 운영위원으로 하는 ‘특별감찰관 후보자 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군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여야는 12월 29일 예정된 본회의에선 후보자 3명을 최종 의결할 방침이다.

    뒷북 특별감찰관제 무딘 칼날?

    2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권력형 비리 등의 수사를 위한 상설특검법안 및 특별감찰관법안 등이 의결됐다.

    감시견의 ‘이빨’ 세워주기

    특별감찰관을 임명한다 해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특별감찰관법에는 감찰 대상을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경우 ‘문고리 권력’을 감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윤회 의혹’ 사태를 특별감찰관제에 적용해보면, 박지만 회장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감시 대상에 포함되지만, 정윤회 씨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대상에서 빠진다. 현행 특별감찰관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 출신 한 인사의 지적이다.

    “사실 수석급은 언론의 관심도 크고, 전문가 출신이나 오랜 기간 공직 경험이 있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서관급이나 행정관은 주로 대선 공신이 많다. 청와대에 줄을 대려는 사람은 ‘높으신’ 수석보다 당과 청와대를 잘 아는 대선캠프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감찰 대상자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새정치연합은 감찰 범위를 청와대 비서관까지 확대해 이번에 논란이 된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해야 한다고 뒤늦게 주장하고 나섰고, 일각에선 국회의원과 장관, 권력기관장 역시 감찰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불어 특별감찰관의 ‘실질적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제도에 따라 감찰 개시와 종료, 기간 연장 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과연 특별감찰관이 대통령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압수수색과 강제소환 등 강제수사권이 없는 점과 자료 요구, 청문 조사만 가능한 것도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감시견’을 세워놓고 ‘이빨’을 날카롭게 해주지 않는다면, 비선 실세를 향해 용맹하게 짖기 어렵다는 것.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특별감찰관제가 현재 상태로 도입된다면 기존의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이 하던 대통령 친족 관리 임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며 “일단 감찰 대상을 확대하고 기소권까지는 어렵더라도 수사권을 부여해 ‘첩보 수준’을 넘어 실질적으로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통령의 리더십 변화가 맞물려야 제도가 힘을 발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을 봐도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코드가 맞는 인물’이었고 측근도 ‘심기를 읽는 눈치 빠른 사람들’이었다”며 “대통령이 이들에게 의존할 경우 결국 감찰 보고서도 ‘중간선’에서 정리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되는 수족은 단호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감시견들이 제대로 일하고 실세에 대한 감찰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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