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6

2014.12.08

화가 母子의 평탄치 않은 삶

발라동이 그린 위트릴로

  • 전원경 문화콘텐츠학 박사·‘런던 미술관 산책’ 저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4-12-08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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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母子의 평탄치 않은 삶

    ‘모리스 위트릴로의 초상’, 쉬잔 발라동, 1921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많은, 아니 대다수 화가의 삶은 행복하지도 안온하지도 않았다. 피카소, 모네, 르누아르처럼 생전에 경제적 성공과 명성을 모두 얻고 천수를 누리다 간 화가보다 가난하고 병마에 시달리며 고독하게 살다 간 화가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결국 예술가란 자신이 처한 불행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 불행을 창작에 대한 열망으로 승화했을 때, 화가의 손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는 걸작이 탄생하곤 한다.

    몽마르트르의 화가 쉬잔 발라동(1865~ 1938)과 그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1883~ 1955)의 생 또한 그러했다. 플랑드르의 브뤼헐 부자나 독일의 크라나흐 부자처럼 아들이 아버지 직업을 이어받아 화가가 된 경우는 적잖으나, 발라동과 위트릴로처럼 모자가 대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걸은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발라동과 위트릴로는 각기 아카데믹한 전통에서 벗어난 혁신적이고 대담한 기법과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 풍경을 그린 화가로 성가를 드높였다.

    그러나 이런 화가로서의 성공과 별개로, 두 사람의 삶은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발라동은 가난한 집 사생아로 태어나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모델을 서면서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운 화가다. 그는 모델로 일하던 열여덟 살 때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들 모리스를 낳았다. 아이 아버지로 화가 퓌비 드샤반, 르누아르, 드가 등이 세인 입방아에 올랐으나 이들은 모두 발라동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여덟 살 때 발라동의 친구 집에 입양돼 ‘위트릴로’라는 성을 얻기는 했지만, 출생의 불행은 위트릴로를 회복할 수 없는 알코올 중독의 늪에 빠뜨렸다.

    병적으로 예민한 성격인 데다 10대에 알코올 중독으로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으니 위트릴로의 앞날은 영 가망 없어 보였다. 그런 아들에게 발라동이 나서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웠던 어머니처럼 위트릴로 역시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었다. 발라동 외에는 아무 스승이 없고 미술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건만, 몽마르트르 를 그린 위트릴로의 그림은 곧장 팔려나갔다. 1920년대 들어서는 바다 건너 미국까지 그의 명성이 알려졌다. 28년 위트릴로가 국위 선양을 이유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것만 봐도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화가로서의 성공과 별개로 위트릴로는 알코올 중독에서 평생 헤어나지 못했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힘겹게 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1921년 위트릴로가 38세였을 때 발라동이 그린 위트릴로 초상화는 그의 예민한 정신세계와 어두운 성향을 한눈에 짐작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갈색과 초록색을 대담하게 사용한 이 초상화에서 잘 다듬은 콧수염에 말쑥한 양복을 입은 위트릴로는 깨끗한 팔레트에 막 물감을 섞어 캔버스에 칠하려는 참이다. 팔레트를 쥔 손에 붓 네 자루를 끼고 있는 모양새가 프로페셔널하게 보인다. 그 어떤 화가도 작업을 하면서 이 초상화 속 위트릴로처럼 정장을 빼입지는 않을 것이다. 이 초상화는 프랑스를 넘어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화가의 프로필 사진처럼 느껴진다. 발라동은 불혹에 접어드는 아들을 격려하고 자랑하고자 이 초상화를 그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이 그려진 21년 위트릴로는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서 2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짙은 음영이 드리워진 잘생긴 얼굴에도 위트릴로의 표정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정면을 응시하는 커다란 눈망울은 20대 소년의 그것처럼 불안하고 외롭게 흔들린다. 위트릴로가 그린 몽마르트르 그림에서는 대부분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텅 비어 있는 그의 캔버스 속 거리처럼, 위트릴로의 눈에도 삶에 대한 기대나 의욕보다 공허함만 가득해 보이는 건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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