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6

2014.12.08

중병 걸린 세계 경제 골골

내년 글로벌 경기 위험 크고 기회 적은 상황 지속될 듯

  •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jinskim@woorifg.com

    입력2014-12-08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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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병 걸린 세계 경제 골골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연말을 앞두고 모든 경제 주체는 내년 국내외 경제 흐름을 자기 나름대로 예상하게 된다. 경기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정부는 이에 대응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체와 투자자는 이에 걸맞은 사업 규모와 계획, 투자 방향을 구상하는 시기다.

    지금까지 나온 경제 예측 기관들의 전망을 모아 보면 대동소이하다. 내년 국내외 경제성장률은 올해보다 소폭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 출구전략, 일본 아베노믹스의 성패, 유로존의 위기 재연 가능성, 중국과 신흥국 불안 등 다양한 다운사이드 리스크가 산재해 있다는 게 이들 기관의 컨센서스(consensus)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는 2013년 말에 나온 2014년 전망과 판박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나. 올해 세계 경제는 2013년에 비해 어느 정도 회복했고 성장률도 소폭 상승했지만, 기대에는 많이 못 미치는 저성장과 저물가 시기였다.

    튜브 끼고 겨우 버티는 상황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은 가장 보편적인 경제 전망 보고서다. 이 보고서 부제(副題)에는 현재와 향후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 및 화두가 집약돼 있다. 최근 보고서에 실린 제목을 살펴보면, 올 상반기만 해도 지역별로 속도는 다르지만 회복세가 강화되거나 지속되리라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2015년에 초점을 맞춘 10월 전망에서는 ‘유산, 구름, 불확실성(Legacies, Clouds, Uncertainties)’이라는 어두운 톤의 단어가 나열돼 있다.



    현재 우리는 세계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밑돌며, 그나마 정책당국의 부양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글로벌 저성장 시대에 살고 있다. 잠복해 있던 구조적 문제점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표출된 이래, 연쇄적인 위기 전염과 확산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각국의 긴급 확장 기조에 의해 가까스로 버티는 형국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리인하와 통화 공급 확대를 거듭하면서 경기 회복에 집중해왔고, 올해 상반기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서는 주요국의 성장세가 다시 위축되고 있다. 일본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유로존은 디플레이션 우려와 더불어 성장 전망도 다시 후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지나친 통화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추가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완화를 확대할 태세다. 경착륙 가능성은 없다며 구조조정과 성장모델 전환을 추진해오던 중국도 최근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요소도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주요국 중에서는 미국이 유일하게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성장을 유지하며 양적완화를 종료했다. 그러나 향후 출구전략 일정이 예상대로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글로벌 수요 부진에 따른 저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데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대내외적으로 미칠 파장이 크고, 각국의 확장적인 통화정책이 환율전쟁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을 타개할 방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주요국의 통화완화가 실질적인 수요 회복으로 이어지는 대신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원-엔 환율 800원대 진입이 예상되는 등 가파른 엔 약세의 파장도 우려스럽다. 환율 변동의 영향이 모든 부문에서 일방적이지는 않지만 원화 강세는 여전히 부정적인 측면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적절한 통화가치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환율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중하고 보수적인 접근 필요

    이렇게 보면 현재 세계 경제는 마치 중증질환이 신체 주요 장기에 연쇄적으로 발생한 환자 같다. 중환자실에 들어온 환자는 각종 진단 장비와 튜브를 주렁주렁 단 채 부작용이 우려되는 고단위 처방을 계속 받으면서 장기간 입원한다. 튜브를 빼면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의사는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투약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상황을 봐서 점차 약을 줄이자는, 고비를 넘겼으니 회복 추세를 기대해보자는 말만 되뇔 뿐이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증상이 개선되더라도 투병이 장기화될수록 위, 간, 또는 심장과 혈관의 손상을 예상할 수 있다. 근육 등 운동기능도 크게 약화될 수 있다. 그리고 2차, 3차 질환이 언제든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 환자는 이제 더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내년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도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시나리오와 전략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특히 회복 전망의 논리가 명확지 않고 전망 자체의 신뢰도가 낮아진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헤드라인에 드러난 성장률 전망치와 완만한 ‘회복’이라는 문구보다, 행간과 뒷부분에 담긴 ‘위험’ 요인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

    회복이란 현재 위치에서 지향하는 경제적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과정을 의미하며, 위험은 그 과정에 잠복했다가 회복을 붙잡을 수도 있는 걸림돌을 의미한다. 많은 경제 예측 기관의 전망에서 회복을 이끌어내는 기회 요인은 흔히 현재 나타난 개선 조짐이 추세적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거나, 현재의 확장적인 정책 기조가 유지 혹은 강화된다는 전제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반면 하방 위험 요인은 해소하지 못한 구조적 결함과 점차 분명해지는 정책 효과의 한계, 그리고 잠재된 테일 리스크(tail risk·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다. 기회 요인은 적고 근거가 유동적인 반면, 위험 요인은 많고 근거가 구체적이다. 어느 모로 보나 만만치 않은 201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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