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5

2014.12.01

유럽 극우정당에 손 내미는 푸틴

프랑스 국민전선 은행 대출 등 정치자금 지원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입력2014-12-01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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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밉든 곱든 올해 지구촌에서 가장 뜨거웠던 남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푸틴을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선정했다. “아무도 푸틴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아무도 그를 약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게 포브스의 묘사다.

    푸틴은 2월 소치겨울올림픽에서부터 ‘위대한 러시아제국’의 현대판 차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맘껏 드러냈다. 3월에는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전격 합병했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해 우크라이나를 내전으로 몰아넣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며 ‘마초적 카리스마’도 뽐냈다.

    서방에 맞서 ‘트로이 목마’ 키우기

    푸틴은 반(反)유럽연합(EU), 반동성애, 종교적·도덕적 보수주의를 내걸고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들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푸틴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은 유럽 극우정당들은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러시아를 지지했다. 푸틴이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대항하고자 ‘트로이 목마’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탐사보도 전문 온라인 독립언론 ‘메디아파르’는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이 9월 러시아 재벌이 소유한 ‘퍼스트 체코·러시아 은행(FCRB)’으로부터 900만 유로(약 124억 원)를 대출받았다고 폭로했다. FCRB의 최대주주는 푸틴 측근인 로만 포포프 회장. 그가 크렘린의 승인 없이 프랑스 정당에 거액을 대출해주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마린 르펜 FN 당수는 11월 24일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 보도를 시인했다. 그는 “2017년 대통령선거 출마를 앞두고 선거자금이 필요하지만 프랑스와 서방은행이 FN에 한 푼도 대출해주지 않아 러시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러시아로부터 돈을 빌렸다고 FN의 외교정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며 “FN은 이미 오래전부터 러시아의 노선에 동조해왔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독일에서도 반유로화 기치를 내건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러시아로부터 비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폭로됐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11월 23일 푸틴의 직속 싱크탱크인 ‘전략커뮤니케이션센터’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AfD와의 ‘금괴 비즈니스’ 거래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유럽연합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AfD는 10월부터 210만 유로어치의 금괴를 수입, 판매함으로써 당 재정을 확충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는 두 나라의 극우정당뿐 아니라 벨기에 ‘플랑드르 이익당’, 그리스의 네오나치 ‘황금새벽당’, 헝가리 ‘조빅당’, 이탈리아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에도 자금을 지원해온 것이 밝혀져 각국이 수사에 나섰다고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는 “인간적인 면을 제외하고 지도자로서의 면모만 볼 때 푸틴을 가장 존경한다”고 칭송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빌트’지는 “유럽 극우 포퓰리스트의 새 총통으로 등극하기 위한 푸틴의 음모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11월 23일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18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2024년까지 장기 집권할 가능성을 비쳤다. 그러나 ‘종신(終身)’ 집권에 대해서는 “그건 나라에 좋지 않고, 나도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부인했다. 또한 그는 서방에 대해 “러시아는 철의 장막을 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30% 폭락하고 물가상승률이 9%로 치솟는 한편, 석유가 러시아 수출액의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유가(油價)가 곤두박질치는 ‘삼중고’를 겪으며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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