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2014.11.24

남자도 애 낳을 수 있다?

자궁 이식 통한 임신·출산 이론적으론 가능…호르몬 공급 등 해결할 과제 산적

  • 유문두 통영 성모의원 원장·소설 ‘임신夫’ 저자 yoomdoo@hanmail.net

    입력2014-11-24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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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이 세상의 수많은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 수를 자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는 의학이 발전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득과 실을 함께 갖고 있다. 교육을 많이 받고 경제적으로 부유할수록 자신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두려는 경향이 있어 결혼이 늦어지거나, 아예 독신으로 살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영향으로 선진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신생아 수가 해마다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필자는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남성도 애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소설 구상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가능한지 전국 의과대 산부인과 과장들의 의견을 수렴해 아이를 낳으려는 ‘남자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임신夫’를 출간했다.

    그렇다면 과연 남성은 의학적으로 애를 낳을 수 있을까. 남성과 여성은 먼저 외모로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 키, 근육, 골격 등에서 양적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생식기는 현저한 차이가 있어 더 확실하다. 한 생명이 탄생할 때 난자와 정자가 난관에서 만나 자궁으로 이동해 착상하고 분열해 태아로 변하는데, 동일한 원기(原基)에서 출발해 X와 Y염색체에 따라 성별이 달라지기에 외견상 차이를 보이는 남녀 생식기는 정밀한 상동(相同) 관계에 있다. 상동이란 생물 기관이 형태나 기능은 다르지만 발생 기원과 기본 구조는 같음을 뜻한다.

    이성 간 자궁 이식과 혈액 공급

    해부학적 근거를 토대로 이성 간에도 간, 신장, 폐 같은 장기들을 이식할 수 있기에 자궁도 못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설 초안을 잡았다. 이후 국내 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들에게 ‘이성 간 자궁 이식이 가능한지’, 더 나아가 ‘태아가 있는 아기집을 남자한테 이식해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전제로 임신 초기인 어떤 여성이 시한부라고 가정했다. 이에 절반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고, 나머지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원인으로는 호르몬 문제를 꼽았다.



    장기 이식에서 조직이 적합하다는 점을 전제로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혈액 공급이다. 혈액 공급이 제때 되지 못하면 장기이식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자궁 이식을 할 때는 아기집에 태아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주 신속히 혈관을 이어줘야 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탯줄이 막히거나 산소가 탯줄로 운반되지 않으면 태아가 사망 또는 뇌성마비가 될 수 있다.

    자궁은 크게 자궁동맥과 난소동맥, 두 군데로부터 피를 공급받는다. 둘 중 내장골동맥(골반벽이나 골반장기에 분포한 동맥)에서 갈라져 나온 자궁동맥만 있어도 혈액 공급이 가능하기에 이 혈관부터 신속히 이으면 된다. 정맥 또한 마찬가지. 이 과정이 가능하려면 자궁을 이식받을 남성은 미리 수술 준비가 끝난 상태여야 하며, 떼어낸 자궁을 곧바로 남자의 아랫배 속에 넣고 자궁동맥을 남성의 정관동맥과 연결하거나, 신장 이식처럼 완전히 다른 위치에서 내장골동맥에 연결해야 한다. 만약 공여자와 수혜자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에는 심장 수술처럼 기계로 산소를 공급하면서 자궁의 피를 순환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이식한 자궁을 고정하고 질을 내는 문제다. 자궁 고정은 사실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자궁을 고정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주위 조직에 유착되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는 고정하는 게 좋다. 질은 하복부에 낸다. 남자에게는 질이 없으므로 이식 전 여성의 질을 통해 자궁 경부를 묶어야 한다. 이 방법을 맥도날드 수술법이라 하는데, 주로 자궁경관무력증이 있는 환자에게 시행한다. 맥도날드 수술을 하면 환자 뱃속에 있는 자궁경부가 벌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자궁에서 나올지도 모를 분비물이 복강에 고이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해도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실패할 공산이 크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들이 가장 높은 실패 원인으로 꼽은 것도 바로 호르몬 불균형이다. 임신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은 태반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따로 호르몬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임신 7~10주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은 난소에서 분비되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자궁 이식을 한다면 난소도 함께 이식해야 한다. 난소동맥를 연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가능한 기술

    거기에 남성 호르몬이 임신 유지에 필요한 모종의 기능을 하는지, 해가 되는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인 만큼 태아 안전을 위해 남성의 고환을 떼어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이럴 경우 남성이 이식 수술을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점에서 남성의 출산은 의학적으로도 충분한 연구가 선행돼야 할 분야라 할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만삭이 되고 진통이 온다면 제왕절개술을 통해 아이를 분만하면 된다.

    앞서 말한 방법은 자궁 이식 후 배를 완전히 닫는 경우이고,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자궁경부 또는 질 상부나 그 절반을 함께 떼어 밖으로 내놓는 방법이다. 이는 항문암, 직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기존 항문을 쓰지 못하게 하는 대신 장을 배 밖으로 내어 대변을 배출하게 하는 원리와 같다. 하지만 암 환자와 달리 밖으로 노출된 자궁경부나 질은 균에 감염될 개연성이 매우 높기에 철저한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먼저, 남성의 치골 위를 절개하고 자궁을 이식한 후 절개한 복벽에 자궁경부나 질 입구를 봉합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여성처럼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삭이 돼 태아가 나오면, 분만 시 태아 머리가 나올 때 질이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회음절개술을 하는 것처럼 복벽을 충분히 절개하고 질도 개방해놓아야 한다.

    두 가지 방법으로 태아가 무사히 세상에 나오면 자궁을 제거하는 과정이 남는다. 상황에 따라 자궁 제거를 미룰 수도 있지만, 나중에 다시 수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윤리적, 종교적 이유로 아직은 남성의 자궁 이식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현대의학의 발전사로 본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가능한 기술이라고 본다.

    임산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경우, 태아도 엄연히 한 생명인데 엄마 때문에 태아까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한 가정에 자녀가 많아야 한두 명인 현대 사회에서, 그것도 핏줄을 중히 여기는 나라에서라면 시험관수정이나 대리모보다는 못하겠지만 경우에 따라 고려할 수도 있는 방법이다. 또한 자궁을 이식받는 남성의 고환을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면 그 실현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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