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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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하지 못한 ‘이란 걸림돌’

내년 아시안컵 우승 노리는 한국 축구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4-11-24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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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결하지 못한 ‘이란 걸림돌’

    11월 18일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사달 아즈모운에게 골을 허용한 한국 대표팀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고 있다.

    ‘이란을 넘어야 한다.’

    울리 슈틸리케(60·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중동 원정 평가전을 1승1패로 마무리했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첫 원정에 나선 한국은 11월 14일(이하 한국시간) 암만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평가전에서 한교원(전북)의 헤딩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한 뒤, 18일 테헤란에서 개최된 이란과의 경기에서는 석연찮은 판정 끝에 0-1로 석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10월 10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2-0 승리를 거뒀고, 나흘 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전에서는 1-3으로 패했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2승2패를 기록했다.

    중동 원정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희망을 품기에 충분했지만, 결과적으로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5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려면 이란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원정길 0-1 패 또 한숨

    한국은 이란에 또다시 패하면서 역대 상대 전적에서 9승7무12패를 기록했고, 특히 원정 경기 2무4패라는 절대 열세를 이어갔다. 아시아 무대에서 보면 일본보다 이란이 우리의 숙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란은 결정적인 길목에서 매번 한국의 발목을 잡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홈과 원정에서 두 번 모두 0-1로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고, 이번 테헤란 원정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빚어졌다.



    아시안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57년 1회 대회와 1960년 2회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한국은 이후 단 한 번도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이란은 1968년 4회 대회부터 1976년 6회 대회까지 3연패를 차지했다.

    놀랍게도 한국과 이란은 최근 5개 아시안컵에서 연속으로 8강에서 만났다. 2000, 2007, 2011년에는 한국이 이란을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지만 1996년과 2004년엔 이란이 승리했다. 그러나 최근 5개 대회 연속으로 양국은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양국 모두 8강전에서 전력을 쏟은 탓에 4강전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한국과 이란의 탈락으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은 2000, 2004, 2011년 우승을 맛본 일본이었다.

    내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개최국 호주, 쿠웨이트, 오만과 함께 A조에 속해 있다. 이란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과 함께 C조에 포함됐다. 이번에는 8강에서 만나지 않지만 4강 이후에는 다시 붙을 공산이 크다. 55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노리는 한국으로선 이란을 반드시 넘어야 하는 셈이다.

    이란전 실점 상황이 골키퍼 차징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오심도 게임의 일부이고 결과적으로 패했다는 점에서 이란전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듯하다. 그러나 패배 속에서도 ‘슈틸리케호’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요르단전을 포함해 이전 3번의 평가전에서 다양한 실험을 펼쳤던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전에서 최정예 멤버로 팀을 꾸렸다. 이근호(엘 자이시)를 최전방 원톱 공격수로 내세우며 기본적으로 4-2-3-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2선 좌우 날개 공격수로 손흥민(레버쿠젠)과 이청용(볼턴)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구자철(마인츠)이 선발 출전했고, 기성용(스완지 시티)이 포백 앞에 더블 볼란치로 나선 가운데 박주호(마인츠)가 기성용 파트너로 나섰다. 포백으로는 윤석영(퀸즈 파크 레인저스), 곽태휘(알 힐랄), 장현수(광저우 푸리), 김창수(가시와 레이솔)가 호흡을 맞췄고, 골키퍼 장갑은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이 꼈다.

    이란전 중심에는 ‘손세이셔널’ 손흥민이 있었다. 앞선 요르단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예열을 마친 손흥민은 자기 자리인 왼쪽 측면 날개로 이란 무대를 활발히 공략하며 풀타임을 뛰었다. ‘한국 축구의 대세’라는 최근 평가처럼 이란의 심장인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전반 10분에는 이청용의 크로스를 강력한 헤딩으로 연결했고, 전반 40분에는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공격 포인트는 없었지만 손흥민의 움직임만으로 한국 축구는 이란전 패배의 아쉬움을 위로받았다. 박주호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첫 호흡을 맞춘 기성용 역시 90분간 발군의 기량으로 빼어난 공수 조율 능력을 확인케 하며 중원의 핵 구실을 했다.

    해결하지 못한 ‘이란 걸림돌’
    ‘팀 코리아’ 최정예 조합 찾기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전에 앞서 열린 요르단전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박주영(알 샤밥)을 기용하고, 중앙 수비에는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를 내세워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과 호흡을 이루게 했다. 박주영과 홍정호는 슈틸리케 감독이 취임한 이후 처음 대표팀에 발탁됐다. 요르단전 결과보다 슈틸리케 감독은 박주영과 홍정호의 경기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데 중점을 뒀다.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처음 발탁된 박주영은 완벽하진 않지만 경기 감각이 많이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요르단전의 포인트는 박주영의 선발 출장보다 기성용의 결장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요르단전에서 손흥민, 이청용 등을 후반 교체 멤버로 투입했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출전 시간이 많았던 기성용은 아예 출전시키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 대신 한국영(카타르 SC)에게 그 역할을 맡기면서 나머지 미드필더에게도 언제든 경기를 조율할 수 있는 루트가 돼야 함을 강조했다. 내년 1월 아시안컵에서 기성용이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뛸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 ‘플랜B’도 테스트했다.

    부임 이후 4차례 평가전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선수들을 파악하고 ‘팀 코리아’의 최정예 조합을 찾는 데 주력했다. ‘타깃형 스트라이커’ 이동국(전북)과 김신욱(울산)이 부상으로 아시안컵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박주영과 이근호를 원톱 자원으로 점검한 것도, 김진현을 비롯해 정성룡(수원)과 김승규(울산) 등 이례적으로 골키퍼 3명을 중동 원정에 데려간 것도 모두 아시안컵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12월 중순에 발표될 아시안컵 명단에 박주영이 다시 포함될지, 주전 골키퍼 장갑을 누가 차지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찌감치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우승할 때가 됐다”며 전의를 불태운 슈틸리케 감독의 최종 선택에 관심이 모아진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쓰디쓴 좌절을 맛본 한국 축구는 이란을 넘고 55년 만에 아시안컵을 제패해 ‘아시아 맹주’로 다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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