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2014.11.24

반갑다! 짐 캐리 바보연기

보비·피터 패럴리 감독의 ‘덤 앤 더머 투’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4-11-24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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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다! 짐 캐리 바보연기
    웃음 코드라는 게 워낙 복잡 미묘하다. 내게는 우스운 게 남에게는 시시할 수 있고, 누군가는 박장대소하는 개그가 내게는 유치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감대를 찾는 것, 그건 아마 모든 코미디 배우의 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희대의 코미디언은 대단한 배우라 할 수 있다. 가령 짐 캐리 말이다.

    1994년 ‘덤 앤 더머’ 개봉 후 20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아온 ‘덤 앤 더머 투’는 짐 캐리표 코미디다. 그게 과연 뭘까. 짐 캐리를 일약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은 ‘에이스 벤츄라’라는, 한마디로 ‘골 때리는’ 슬랩스틱 코미디였다. 이후 짐 캐리는 ‘마스크’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통해 과장된 얼굴 표정과 말투, 행동이 하나의 코믹 코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런 코미디가 보편화하기는 어렵다. 배우 역량, 즉 짐 캐리라는 배우의 하드웨어와 어울려 만들어진 고유한 개성이기 때문이다.

    특히 ‘덤 앤 더머’는 20세기 코미디의 한 획을 그은 보비·피터 패럴리 형제 감독과 짐 캐리가 만나 만들어낸 작품이다. 여기엔 지난 세기 우리가 즐겼던 코미디 요소가 가득하다. 화장실 개그나 성을 소재로 한 웃음 등이 그렇다. ‘킹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같은 작품들에서 패럴리 형제는 저급 유머의 마지노선을 개척했다. 정액을 머리카락에 바른 채 웃고 있는 금발 미녀 배우라니! 이런 지저분한 유머를 킬킬거리며 소비한 게 1990년대였고, 그 중심에 패럴리 형제가 있었다.

    세계 경제의 호황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관객들은 유치하고 지저분한 농담에 웃어줄 준비가 돼 있었다. 2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먼저 몇 번의 경제 위기를 호되게 앓은 관객이 변했다. 위기의 관객은 실없는 웃음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코미디 장르는 위기와 함께 위축됐다. 미국식 코미디는 말 그대로 미국에서나 먹히는 코미디로 축소됐다.

    2014년 개봉하는 ‘덤 앤 더머 투’는 그런 점에서 추억의 동창회 같은 작품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때 그 배우, 그 감독이 고스란히 2편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스크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격세지감이다. 누가 더 멍청한지 내기하던 그 배우들, 짐 캐리와 제프 대니얼스의 노쇠한 얼굴이 스크린을 채우는 순간 이 감상이 절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 어색함을 지우고자 두 배우는 왕년의 바보 연기를 맘껏 뽐낸다. 웃음을 노리는 코드는 1편과 비슷하다.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하고, 섹스에 대한 농담을 건넨다. 여기에 인종 차별이나 여성 차별적 요소도 양념으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덤 앤 더머 투’는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나 도덕, 이성 같은 것을 한쪽에 밀어둔 채 즐기는 저급한 농담 같은 작품이다.

    짐 캐리와 제프 대니얼스 같은, 이제는 중견이 된 배우들의 망가지는 연기를 다시 보는 건 무척 반갑다. 문제는 영화 정서 역시 반가움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덤 앤 더머’의 추억을 가진 관객에게는 매우 즐거운 동창회일 수 있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무척 무례하고 불쾌한 개그로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 그래서 때로 변하지 않는 건 나쁜 것이 되기도 한다. ‘덤 앤 더머 투’는 변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 되고, 또 변하지 않은 게 단점이 되기도 한 작품이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오랜만에 그들을 봐서 반갑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말하자면 그다지 훌륭한 코미디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추억을 공유하고픈 관객에게 반가울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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