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8

2014.10.13

교황은 이혼과 재혼 許하는가

프란치스코 “가톨릭 자비 베풀어야”…가정문제 가르침 문서 작성 ‘뜨거운 감자’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입력2014-10-13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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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클루니가 베니스에서 매듭을 묶었다(George Clooney ties the knot in Venice).’ 9월 28일 미국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53)와 레바논 출신 영국 인권변호사 아말 알라무딘(36)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한 외신기사 제목이다. 결혼식을 흔히 ‘매듭을 묶는 것’으로 표현하는 서구식 표현법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이다.

    가톨릭교회의 혼인미사에선 보통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선 안 된다”는 복음서 구절(‘마태오복음’ 19장 6절)을 낭송한다. ‘마태오복음’에는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라는 구절도 나온다. 이에 기초해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혼과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16세기 초 영국 왕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 헤어지고 앤 불린과 결혼하려다 바티칸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아예 영국성공회를 세웠다.

    이혼판결 인정 않는 바티칸

    이 오랜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후 처음으로 소집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에서 이혼과 재혼 문제가 최고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 10월 5일부터 이탈리아 로마에서 2주간 열리는 이 회의에서 이혼과 재혼, 동성결혼, 피임, 혼전 섹스 등 현대 가톨릭교회 내에서조차 금기시해왔던 주제를 놓고 치열한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교황은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개막 미사에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신학적 상아탑에서 내려올 것을 주문했다. “시노드는 아름답거나 고상한 생각만 주고받는 자리가 아니고, 누가 더 지식이 많은지 자랑하는 회의도 아니다”라며 현대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핵심은 바로 섹스와 가정에 관한 문제. 미국의 이혼율이 40%를 넘고 동성결혼 합법화가 각 나라에서 첨예한 정치 이데올로기 이슈로 등장한 시대에 교회만 나 몰라라 할 수 없다는 취지다.



    시실리 팔레르모 출신의 마리아노 자곤느 씨(51)는 17년 전 이혼 후 재혼했다. 이후 성당 미사 중 진행되는 영성체 의식에 참여하지 못해 큰 고통을 겪었다.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이탈리아에서 교회로부터 배척받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는 “성찬 의식에서 제외됐을 때 매우 고통스러웠다”며 “프란치스코 교황 덕분에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신앙인에게도 희망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가톨릭계에선 사회 법정에서 받은 이혼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결혼 무효’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 이런 상태에서 재혼하면 결혼 기간 중 제3자와 간통한 ‘죄의 상태’가 되고, 교회는 갈 수 있어도 각종 성사(聖事)에는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가톨릭 신자는 이혼과 재혼에 유독 엄격한 교회 가르침이 시대착오적이며 배타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살인 같은 중범죄자도 회개하면 영성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황은 교회가 좀 더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4월 아르헨티나에서 한 여인으로부터 “이혼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신부가 영성체 의식을 거부했다”는 편지를 받자, 곧바로 전화를 들어 “교회에 가서 영성체를 모시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결혼식을 하지 않고 동거 중이거나 혼전 임신한 20쌍의 혼인성사를 직접 집전하기도 했다. 교회법상 이들은 모두 ‘죄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가정에 대한 가르침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교황청 의장 발터 카스퍼 독일 추기경을 지지해왔다. 또한 로렌초 발디세리 시노드 사무총장을 비롯해 디오니지 테타만치 전 밀라노 총대주교, 지난해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뒤 첫 아시아 출신 교황으로 후보에 올랐던 루이스 타글 필리핀 마닐라 대주교 등도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의 반발도 만만찮다. 베네딕토 16세가 임명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많은 신자가 혼인의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에 관한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교리를 바꿀 수는 없다”며 “이혼자와 재혼한 신자들이 영성체를 모실 수 없는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의 가르침과 교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맞섰다. 교황청 재무원장 조지 펠 추기경(전 호주 시드니 대교구장), 레이먼드 레오 버크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주교도 보수진영의 대표적 인물이다.

    시노드는 10월 6일 첫 프로그램으로 자녀 4명과 손주 8명을 둔 호주의 가톨릭신자 부부를 초청해 ‘성생활의 즐거움’에 대한 기조강연을 들었다. 론 피롤라, 마비스 피롤라 부부는 이날 교황과 추기경, 주교 등 고위 성직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55년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비결은 바로 ‘성적 매력’”이었으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부부의 신성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 친밀감”이라고 말했다.

    또한 피롤라 부부는 특강에서 “교황청이 발행한 가정문제 관련 문서를 읽어봤지만, 어려운 언어로 돼 있는 데다 현실과 동떨어져 마치 외계 행성에서 온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죄 안에 살다’ ‘본질적으로 무질서한’ ‘피임의 멘털리티’ 같은 문구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형이상학적 용어라는 것.

    “교리 못 바꿔” 보수 세력 반발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후 쉬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는 신학 논문에 나오는 용어를 즐겨 썼던 전임 베네딕트 16세와 비교된다. 베네딕트 16세는 추기경 재임 당시 동성애를 비롯한 주요 성 관련 이슈에 대해 바티칸의 주요 문서를 집필한 당사자다.

    그러나 이날 강연에서 피롤라 부부가 동성 부부까지 교회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보수 세력이 일제히 반발에 나섰다. 보수 단체 ‘가족의 목소리’는 “동성애 커플을 가족과 교구 일원으로 환영하는 것은 동성애라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치부해 모두를 망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영국의 낙태 반대 단체 ‘태아 보호를 위한 공동체’도 “동성애에 대한 논의가 학교, 대학, 직장, 운동모임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면서 “교회지도부가 동성애자를 받아들이라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러한 기류 탓에 올해 시노드에선 별다른 변화가 합의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교황청은 내년 가을에도 다시 이 주제로 시노드를 열고 토론과 합의를 거쳐 가정문제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을 담은 문서를 작성해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 사회의 가장 뜨거운 논쟁을 교회가 건드리게 되는 이 문서야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을 평가할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리라는 게 가톨릭계 안팎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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