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6

2014.09.29

다시 생각하자, 절약의 가치를

저성장·저금리 시대 상대적 수익률 높아…돈 씀씀이 재조정 필요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9-29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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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생각하자, 절약의 가치를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상반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존재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기업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성장에는 투입이 있어야 하지만, 비용 절감은 기존 투입량을 줄이거나 신규 투입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성장과 비용 절감은 반대로 향한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을 결합한 곳들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스틱!’의 공저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칩 히스와 댄 히스 형제는 최근 저서 ‘자신 있게 결정하라’에서 글로벌 위기를 겪은 기업들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란제이 굴라 등 하버드대 교수 3명은 기업들이 1980~82년, 1990~91년, 2000~2002년 3번의 위기를 어떻게 겪어냈는지를 조사했다. 4700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했더니 17%는 경기 침체로 무너졌고, 40%는 침체가 끝난 3년 뒤까지도 매출액과 이익을 과거 수준만큼 회복하지 못했다.

    교수들은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기업을 몇 개 그룹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그룹이다. 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다른 그룹은 공격적인 자세로 과감하게 전략을 짜고 투자했다.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시나리오에 입각해 투입량을 늘린 것이다.

    경영과 큰 차이 없는 살림살이

    방향은 달랐지만 이 두 그룹 모두 결과가 나빴다.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기업에는 비관주의가 팽배했고, 직원들은 해고에 대한 두려움과 엄격한 통제에 몸을 움츠렸다. 반대로 공격적인 그룹은 위기가 닥쳤음에도 여전히 낙관주의가 팽배했고, 그 결과 위기 대응에 실패했다.



    성공적인 그룹은 비용 절감을 하면서도 성장을 도모한 그룹이다. 이들은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고, 사업 효율성을 높여 비용을 절감했으며, 그 돈으로 새로운 성장 분야에 자원을 할당했다.

    기업 CEO는 어떤 의미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와 같다. 어떤 사업의 비중을 높이고 줄이느냐를 결정하는 일은 기업의 성장 및 운명과 직결하는 문제다.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은 “CEO로서 가장 중요한 소임은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라고 말한다.

    가정 살림살이도 사실 그 본질에서 기업 경영과 큰 차이가 없다. 줄일 것은 줄이고 거기서 절약한 돈으로 미래를 위해 저축이나 투자를 해야 한다. 이 단순한 과정을 얼마나 꾸준히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지금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비용 효율화를 통한 자산 배분의 재조정이 더욱 절실하다. 왜냐하면 저성장은 소득 정체 혹은 감소를 의미하고, 삶의 가치관을 재조정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업에 비유하자면 경기 침체기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자, 절약의 가치를
    고성장 시대에 경제적 가치는 평준화다. 중산층 소리를 들으려면 마이홈과 마이카, 그리고 가전제품이 있어야 했다. 이 세 가지는 평균 중산층을 상징하는 경제적 기준이었다. 그러다 소득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면서 평준화의 그림이 변하기 시작한다. 마이홈도 어디에 위치한 집이냐가 중요해지고, 자동차도 종류에 따라 경제적 기준이 달라진다. 소득과 취향에 따른 개별화와 양극화가 진행되고, 사람들은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교육을 원한다. 목표는 대부분 비슷하다. 갖고 있어야 하는 물건이나 기준도 높다. 최소한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그것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에 경제적 기준이 너무 높으면 좌절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금 50대는 과거 청약통장을 갖고 있고 저축만 잘해도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반면 20, 30대는 그런 방식으로 아파트를 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6년치 월급을 꼬박 모으면 대출금을 조금 끼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지만 지금은 그 돈으로 전세밖에 얻지 못한다. 만일 ‘내 집은 꼭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있다면 어떤 이는 그 기준을 달성하겠지만, 상당수는 좌절할 공산이 크다.

    돈 쓰면서 행복해지는 방법

    만일 이런 시대에 돈을 더 버는 데만 집중하면, 즉 성장에만 집중하면 십중팔구 좌절하게 된다. 따라서 먼저 비용의 효율성, 다시 말해 ‘절약의 가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돈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주제가 바로 ‘절약’이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는 절약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2.3% 선이다. 1000만 원을 1년 동안 예금하면 세금을 제외하고 약 19만 원의 이자를 받는다. 19만 원이면 한 달에 1만6000원 정도 아끼면 모을 수 있는 돈이다. 1000만 원을 모으는 것보다 한 달에 1만6000원 아끼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절약의 상대적 수익률이 높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절약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졌다. 적은 돈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인 엘리자베스 던 교수와 마이클 노튼 교수는 행복한 소비를 위한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 돈을 썼는가.

    둘째, 새로운 경험을 위해 이 돈을 썼는가.

    셋째, 좋은 시간을 위해 이 돈을 썼는가.

    자신만을 위한 소비보다 사람, 경험, 시간이라는 세 범주에 돈을 쓴 사람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고 한다. 물건보다 사람, 경험, 시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우리는 비용을 효율화해 미래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노년이 된 사람에게 ‘나이 들어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하면 순서에는 좀 차이가 있어도 1, 2, 3위는 동일하다. 국가 간 차이도 없다. ‘가족과 더 많이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건강에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저축(투자)을 더 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 3종 세트’다.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하지만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에 더 가까운 듯하다. 그렇다면 후회 없는 삶보다 후회를 덜하는 삶을 선택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덜 후회하려면 가치관과 씀씀이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엘리자베스 던 교수의 말처럼 “당신이 어디에 돈을 쓰는지가 당신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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