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6

2014.09.29

어른 이권 싸움 아이 교육 뒷전?

‘유아교육·보육 통합’ 저출산 해결 큰 틀에서 고민과 추진 필요

  • 김지현 객원기자 koreanazalea@naver.com

    입력2014-09-29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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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핵심 과제로 내세운 유·보 통합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보 통합이란 유아교육·보육 기관 및 정책을 합친다는 뜻으로, 담당 부처와 적용되는 법률이 서로 다른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을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국무조정실 산하에 ‘영유아교육·보육통합추진단’(유보통합추진단)을 출범했고,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8월 “유·보 통합을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2016년까지 정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9월 17일 국회에선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 주최로 기획토론회 ‘유·보 통합 어디까지 왔나?’가 열리기도 했다. 행사에는 국회의원, 교육부 및 보건복지부 관계자, 전국 유아교육·보육계 종사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보 통합의 필요성은 젊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제기됐다. 현재 유치원은 교육(education)을, 어린이집은 아이의 보호와 돌봄(care)을 위주로 운영된다. 이에 교육과 보육 기능을 합치는 에듀케어(educare)를 실현하자는 취지다.

    맞벌이 부부가 많이 이용하는 어린이집은 만 0~5세 영·유아를 돌보며 보통 오후 5시나 9시까지 운영하는 데 비해, 유치원은 만 3~5세 유아를 가르치면서 오후 2~3시쯤 수업을 끝낸다. 이후 학원에 가는 유치원생도 많아 어린이집 원아들과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진다. 따라서 유·보 통합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육의 형평성을 확대한다는 목표도 있다.

    관련 업계 수십 년간 이견과 대립



    어른 이권 싸움 아이 교육 뒷전?

    9월 17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유·보 통합’ 토론회에서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유·보 통합 이슈는 사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업계에서는 20~30년 전부터 화두였지만 유치원과 어린이집, 정부 부처, 국공립과 사립 교육기관 간 이견과 대립으로 오랜 세월을 끌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어른들의 이권 다툼으로 아이들 교육만 병든다”고 지적한다. 유·보 통합을 둘러싼 쟁점은 무엇일까.

    첫째,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이원화다. 유치원은 초·중등교육법을 근간으로 교육부가 관할하고,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을 따르며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각 기관을 평가하는 지표도 다르다. 유치원은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에, 어린이집은 보육과 안전에 중점을 둔다.

    각 기관에 대한 지원도 상이하다. 누리과정(정부가 2012년부터 만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만든 교육과정)의 유치원 학비와 어린이집 보육료는 동일하게 월 22만 원이 지원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기관을 이용하는 평균 시간을 따지면 어린이집이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다. 이창미 시공미디어 어린이교육문화연구소장은 9월 17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유치원은 5시간, 어린이집은 12시간 기준으로 한 달(20일) 표준 유아 1인의 시간당 지원 비용을 계산하면 유치원은 2200원, 어린이집은 917원”이라고 밝혔다. 또한 어린이집은 하루 급식비 2000원이 보육료 지원에 포함돼 있지만 유치원의 급·간식비는 수익자 부담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어린이집 지원비에서 급·간식비를 빼면 750원으로 유치원 지원비의 약 34%에 불과하다.

    유·보 통합을 어느 행정 부처가 담당할 것인지도 문제다. 교육부나 보건복지부 한쪽이 뚜렷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현장 종사자들은 부처 간 이권 다툼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예산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한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 될 것”이라며 “강남구의 경우 각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1년에도 몇 차례 바뀌고 보육·유아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낮다. 교육부가 관할하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둘째,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소임 논란이다. 유치원 교사 자격증은 4년제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시험을 봐야 받을 수 있는 반면, 보육교사는 3년제 대학 또는 학점은행제를 통해 보육 관련 과목을 이수하면 될 수 있다. 자격증 취득 과정과 난도가 상이한데, 이는 보육교사의 처우가 상대적으로 낮은 현실로 이어진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1급) 초임은 143만4050원, 4년제 대졸 국공립 유치원 교사 초임은 162만3600원이다. 사립 어린이집의 경우 유치원과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따라서 ‘유치원 교사가 보육교사보다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적잖다. 서울 목동에 사는 주부 김지희 씨는 “내 아이만은 특별한 교육을 받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라며 “유·보 통합이 되면 교육 수준이 하향 평준화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교사 수준을 적정하게 맞추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안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이에 교사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인터넷 유아교육 포털사이트 키드키즈(www.kidkids.net) 게시판에는 “보육교사인데 새로운 자격증을 따야 하나요” 같은 질문이 최근 부쩍 늘었다. 포털사이트에는 “지금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면 나중에 유치원 교사와 동등한 처우를 받을 수 있으니 어서 교육과정에 등록하라”는 학원과 사이버교육원광고가 급증하는 추세다.

    어른 이권 싸움 아이 교육 뒷전?

    서울 강남구 ‘ㄷ’ 어린이집 원아들이 교사의 지도 아래 수업을 하고 있다.

    셋째, 사립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먼저 개인이나 법인 재산으로 설립한 시설인 만큼 시설 관리나 세금과 관련해 정부 규제가 강화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또한 국공립기관은 정부가 정한 항목과 예산 내에서만 지출할 수 있는 반면, 사립기관은 재정을 좀 더 자율적으로 쓸 수 있고 기관의 교육 이념에 따라 커리큘럼도 짤 수 있는 편이다.

    하지만 유·보 통합이 되면 교육내용과 재정을 정부가 더 통제할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전망한다. 서울 노원구의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누리과정은 의무교육이 아닌 유아교육의 내용을 정부가 규제한 결과로, 교육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국공립기관은 각종 제약이 많아 교육환경 개선이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그나마 수익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경비를 쓸 수 있는 만큼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시행하는 여건이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 22만 명

    유·보 통합의 핵심은 저출산 문제 해소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교육 수준이 유치원에 비해 낮다고 인식되고, 유치원 비용은 비싸다. 이는 부모가 아이를 좋은 기관에 맡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싼 전국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현재 대기자만 약 22만 명이 몰려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9월 4일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을 통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1000개 확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장 실무자와 전문가들은 유·보 통합을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정부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16년까지 통합한다는 것만 밝혔을 뿐 세부적인 실행 계획이 알려지지 않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주장이다. 한국아동학회장인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유·보 기관만의 통합이 아니라 정책, 교사 자격 기준 등 통합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형식적인 틀만 수정할까 봐 우려스럽다”며 “‘직장맘’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교육의 질에도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보 통합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도 중요하다. 학부모들은 무상보육 등 내 아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는 관심이 높은 반면, 유·보 통합에 대해서는 인식도가 낮은 편이다.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배현진(가명) 원장은 “유·보 통합에 대해서는 정부와 학계, 현장에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모가 아이의 보육·교육 환경에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 유·보 통합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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