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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범준의 이색 연구 16

뇌가 연결된 세상 ‘마음’도 이어지면 안 되겠니?

인간의 뇌, 인터넷 통해 실시간 교류와 정보 처리 가능

뇌가 연결된 세상 ‘마음’도 이어지면 안 되겠니?

뇌가 연결된 세상 ‘마음’도 이어지면 안 되겠니?
팔다리는 길고 머리는 둥글다.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사람 몸을 크게 나눌 때 오직 머리만 둥근 모양이다. 머리는 왜 둥글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기한 것이 또 있다. 손, 발, 팔, 다리, 가슴, 배, 머리 중 오직 머리만 피부 바로 아래 딱딱한 뼈로 거의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가재나 게 같은 갑각류가 딱딱한 겉껍데기로 몸 전체를 보호하듯 말이다. 사람이 갑각류 후예도 아닌데 이건 또 왜 그런 걸까.

사람 몸 안에 있는 것 중 무엇이 사람을 사람 아닌 생명체와 가장 분명히 구분 짓느냐 물으면 백이면 백 뇌라고 답할 것이다. 현대 의학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사용하는 것도 뇌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다(사실 뇌의 어느 부분이 죽었을 때 죽은 것으로 판정할지 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나를 나로 만드는 기관

현대 의학은 스스로 뛰지 못하는 죽은 염통도 적절한 외부 자극을 통해 계속 뛰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더는 염통 박동이 멈췄는지를 기준으로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르지 않는다. 의학 발달로 말미암아 인체 장기를 다른 동물의 것으로 이식하는 시도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원숭이의 염통을 이식해도 여전히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다. 그러나 원숭이의 뇌를 사람 몸에 이식하면 더는 그 사람으로 볼 수 없다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않을 이 경우를 좀 더 상식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사람 몸을 원숭이에게 이식했다’고 하는 쪽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아닌 생물을 구별 짓는 것, 또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 것, 즉 나를 나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관은 당연히 뇌다.

사람 뇌는 몸이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20% 이상을 사용한다. 질량은 1.5kg 정도로 성인 몸무게의 3%밖에 안 되는 기관이 말이다. 이처럼 뇌는 에너지 효용성 면에서 볼 때 엄청난 사치품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러한 뇌의 비효율성은 역설적으로 뇌가 수행하는 기능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가 주로 수행하는 구실이 정보 처리임을 생각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몸 밖 환경 변화에 맞춰 우리 몸의 대응 방안을 결정하고, 과거의 경험을 기억 형태로 조직해 미래의 의사 결정에 활용하는 등 뇌가 하는 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하다.

멍게는 어려서는 물속을 떠다니다 바위에 붙어 나머지 생을 살아간다. 물속을 움직여 다니던 어린 멍게가 바닷속 바위에 붙어 처음 하는 일은 자신의 ‘뇌’와 ‘눈’을 먹어치워 양분으로 써버리는 것이다. 외부 자극에 따라 스스로 적절한 움직임을 만드는 생명체에게는 뇌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생명체에게 뇌는 그저 사치품일 뿐이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에게도 마찬가지다. 소나무는 날씨 변화에 따라 다른 산으로 옮겨갈 일이 없고, 따라서 뇌도 없다.

그러나 사람은 정보 처리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뇌가 없으면 단 한순간도 살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호흡, 체온 조절, 염통 박동, 혈액순환 같은 무의식적인 생명 활동뿐 아니라 우리의 이성적인, 그리고 감정적인 모든 활동도 뇌가 없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뇌가 없는 마음이 가능하다’는 말은 필자에게 ‘많은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라는 물질적 실체 없이 자동차 ‘속도’가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처럼 허무맹랑하게 들린다.

하지만 자동차 ‘속도’를 자동차의 구성 부품 하나하나로 환원해 설명할 수 없듯이, 사람 마음도 뇌를 구성하는 미시적인 구성 요소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뇌 없는 마음’은 없지만, 현미경으로 본 작은 뇌 조각에 마음이 있을 리도 없다는 뜻이다.

자, 이처럼 중요한 뇌, 사람을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별 짓게 하는 이 중요한 뇌는 당연히 우리 몸에서 가장 소중히 보호해야 할 기관이다. 그리고 뇌를 보호하는 첫 번째 방법은 일단 딱딱한 무엇인가로 감싸는 것이다. 바로 우리 머리뼈가 하는 구실이다.

워낙 중요한 기관이다 보니 진화 과정에서 사람 뇌의 부피는 꾸준히 늘어왔다. 큰 부피를 가진 뇌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려면 뇌가 외부와 접촉하는 부분인 머리뼈 면적을 줄이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모양이 바로 둥그런 공 모양이다(작은 물방울이 둥근 이유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이 적을수록 에너지가 낮기 때문에 물방울은 다 동글동글하다).

부피 늘리고 뼈로 보호하고

동그란 모양의 이점은 또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은 산의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려고 동그랗다. 중세 유럽 건물의 높은 천장 모양이 아치형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고, 같은 이유로 달걀 역시 네모반듯하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머리뼈가 공처럼 둥근 모양이 되면 외부의 어느 방향에서 충격을 받아도 그에 따른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리하면, 머리가 둥근 이유는 큰 부피의 뇌를 머리뼈 안에 가장 효율적으로 담기 위해서이며, 그와 동시에 외부 충격으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비슷하게 생긴 다른 형제 영장류와 구별 짓게 하는 뇌의 특징은 뭘까. 여러 연구를 통해 사람 뇌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피질’, 즉 뇌의 바깥 부분이 발달해 있다는 게 알려졌다. 뇌는 부피가 클수록 좋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바깥 부분 면적이 넓을수록 유리하다. 참고로 사람 뇌의 피질 부분을 판판하게 펴면 면적이 0.25㎡가 된다. 이는 가로세로가 모두 50cm인 정사각형 면적과 같다.

사람 대뇌 피질의 면적 중 바깥에서 보이는 부분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3분의 2는 안으로 접혀 있다. 뇌의 바깥 면이 쪽거리 모양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뇌의 바깥 부분 곡률을 재면 음의 곡면(말안장 같은 모양)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주어진 부피 안에 최대한 넓은 면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머리뼈가 둘러싼 공간 안에 가능한 넓은 피질을 꼬깃꼬깃 넣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면 사람 뇌와 이를 둘러싼 머리뼈 구조가 상당히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 뇌 구조가 상당히 효율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소모하는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는 뇌에서 그 20%의 70%, 즉 사람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5% 정도를 사용하는 작업은 ‘주간동아’ 947호에서 설명한 신경세포 내부와 외부의 전위차를 마이너스로 유지하는 것이다. 신경세포의 활동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즉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서 전체 에너지의 70%에 달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뇌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하다 보니 문제도 생겼다. 자식을 낳으려면 어미가 거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머리가 클수록 출산에 수반하는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당연히 머리가 많이 자라지 않은 태아를 되도록 일찍 낳는 것이다. 영장류 중 사람 아이처럼 연약한 새끼를 낳는 동물이 없는 점을 떠올려보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아이를 출산하는 위험에 비해 커다란 뇌가 주는 생존과 번식의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람은 아이를 일찍 낳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가 이미 눈치챘겠지만, 사람이 머리뼈가 서로 붙지 않은, 이른바 ‘머리가 말랑말랑한’ 아이를 낳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큰 사람의 출생 시기는 너무 일찍 태어나 엄마 몸 밖에서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어야 하고, 그렇다고 너무 오래 엄마 몸 안에 머물러 출생 시 엄마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할 정도도 아닌,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신생아의 뇌는 출생 후 급속히 자라난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 부피는 성인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돌이 지나면 절반이 되고, 두 돌이 지나면 어른 뇌 크기의 80%에 육박한다.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 사람이 지구 전체 생태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어찌 보면 너무 과도한) 힘을 가지며 성공적으로 생존하게 만든 가장 큰 생물학적 이유는 바로 뇌 크기다. 영장류의 뇌에서 피질 부분 부피를 비교해보면 각 영장류종이 만드는 집단 크기에 비례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책은 머리뼈 밖의 박제된 뇌

뇌가 연결된 세상 ‘마음’도 이어지면 안 되겠니?
사람 뇌의 피질 부피에 해당하는 집단 크기는 다른 영장류보다 월등히 커서 150명 정도다. 사람 사회의 조직이 이 정도 수로 이뤄질 경우 효율성이 높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사람이 큰 뇌를 가진 이유는 우리가 영장류 중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 집단은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의 단순한 총합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열 번에 걸쳐 들 수 있는 돌멩이와 열 사람이 한 번에 들 수 있는 바위 크기가 엄청 다른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정보 저장 장치다. 과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신의 기억을 돌이켜보던 사람은 다른 사람의 뇌 정보를 이용하려고 커뮤니케이션 장치인 언어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마을 연장자의 뇌 속에 기억된 정보에도 접근하게 됐다. 문자 발명은 정보 접근에서의 동시성(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동시성)이라는 제약을 무너뜨려 이미 죽은 사람의 뇌에 있던 정보까지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책은 우리 머리뼈 밖의 박제된 뇌인 셈이다.

그뿐인가. 길게 잡아도 20여 년 전쯤부터 우리는 컴퓨터로 연결된 인터넷이라는 전자 ‘뇌’도 갖게 됐다. 인터넷은 전 지구적인 규모로 엄청난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수정되고 확장된다. 이제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의 기억을 돌이켜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책을 펼치지 않아도 인터넷에 연결된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장치를 통해 그 답을 곧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뇌를 구성하는 엄청난 수의 신경세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성하는 놀라운 개개인의 마음을 생각하자. 이제 우리는 개개인의 뇌가(마치 뇌 하나 안의 신경세포들처럼) 시시각각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연결돼 작동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지구적 규모의 마음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마음도 자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쁜 마음이 다른 마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심지어 동료 마음의 죽임도 서슴지 않는 지금, 지구는 어떤 마음일까.

입력 2014-09-15 11:33:00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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