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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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산적에 레드 와인 환상이네

추석 음식과 와인

  •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9-01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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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고기 산적에 레드 와인 환상이네
    고기 요리에 레드 와인이, 생선 요리에 화이트 와인이 어울린다는 말은 굳이 와인애호가가 아니어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있게 식사할 때는 이 말을 참고삼아 화이트 또는 레드 와인을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모처럼 집에서 와인 한 잔을 하고 싶을 때면 망설여진다. 고기를 구울까, 간단히 치즈와 햄을 준비할까, 아니면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까. 와인을 즐기려면 뭔가 특별한 음식을 마련해야 할 것만 같다. 밥, 국, 찌개, 반찬이 올라오는 우리 밥상에 와인을 곁들이자니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서양식과 한식은 재료와 조리법에 큰 차이가 없다. 서양인은 먹지만 우리는 먹지 않는 재료가 별로 없고, 서양에는 없는데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조리법도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와인이 한식과 어울리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다. 그런데도 왠지 한식에 와인을 곁들이는 게 썩 내키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 느낌은 어쩌면 재료와 미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식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차이를 알면 우리 음식과 와인을 조합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와인은 국, 찌개, 김치 구실

    쇠고기 산적에 레드 와인 환상이네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에 이어 주요리가 나오고 디저트로 마감하는 서양 식탁은 음식이 대체로 건조한 편이다. 그래서 와인은 목을 축여주고 그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는 구실을 해 서양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한상차림인 우리 밥상 위에는 밥을 먹다 목이 메면 떠먹을 수 있는 국과 찌개가 자리하고,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존재한다. 국, 찌개, 김치가 서양 식탁에서 와인이 하는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게다가 주요리 재료가 한정된 서양 식탁과 달리 우리 밥상 위에는 각기 다른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든 반찬이 즐비하다. 그래서 밥상에 와인을 곁들이고자 할 때면 어떤 반찬에 맞춰야 할지 난감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밥상이 굳이 음료를 갖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조화롭고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반주 문화가 있지만, 이는 식욕을 돋우려는 식전주에 더 가까워 밥을 먹는 내내 와인을 동반하는 서양 문화와는 다르다.

    이쯤 되면 우리 밥상에 와인을 곁들이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겐 서양에 없는 또 다른 문화가 있다. 바로 안주 문화다. 서양인은 한국인이 술을 마실 때 늘 음식을 곁들이는 것을 매우 신기해한다. 서양 문화에서는 식전주로 칵테일을 마시고 식사와 함께 와인을 즐긴다. 식사가 끝나면 별다른 안주 없이 증류주를 몇 잔 마시거나, 맥주를 마신다면 짭짤한 스낵을 조금 먹기도 하지만 안주다운 음식을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안주 없이 술을 마시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고, 술을 괴롭게 마시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와인을 우리 문화에 접목하자면 밥상보다 술상을 고려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민속명절 추석에는 흩어져 사는 가족이 다 모이고 음식까지 풍성하니 술이 빠질 수 없다. 추석 음식은 차례상에 올렸다 물리면 밥상에 다시 올라 반찬 구실을 하지만, 오랜만에 모인 친척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좋은 안주가 된다. 평상시 우리 음식에는 고춧가루, 젓갈, 파, 마늘이 들어가 대체로 자극적이지만 추석 음식은 담백한 편이라 와인을 곁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모처럼 만난 친지들과 둘러앉은 정겨운 술상에 늘 마시던 소주나 맥주보다 평소 좋아하던 와인을 준비하고 그에 어울리는 추석 음식을 곁들이는 것은 어떨까.

    묵직한 와인엔 묵직한 음식

    쇠고기 산적에 레드 와인 환상이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묵직하면서도 탄탄한 타닌이 느껴지는 레드 와인이다. 프랑스 오메독(Haut-Me′doc), 미국 나파 밸리, 남미 등지에서 생산하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아르헨티나산 말벡, 프랑스 론 지방의 시라와 호주의 시라즈를 꼽을 수 있다.

    이 와인들은 대체로 씹는 질감이 단단한 육류와 잘 어울린다. 추석 음식 중에는 쇠고기산적, 갈비찜, 육포가 그런 종류다. 이 음식들은 조리할 때 간장 양념이 들어가는데, 간장향은 와인 오크향과 잘 어울린다. 카베르네 소비뇽, 시라, 시라즈 와인은 기본적으로 오크 숙성을 거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산의 경우 레이블에 레제르바(Reserva)라고 표기된 것이 오랜 오크 숙성을 거친 것이므로 구매할 때 참고한다. 말벡 레제르바는 특히 육포와 잘 어울린다.

    가족과 친지 가운데 와인 초보자가 많다면 중간 정도의 타닌과 묵직함을 가진 레드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프랑스 생테밀리옹, 코트뒤론, 지공다스와 스페인 리오하, 남미산 메를로 또는 카르메네레 와인을 꼽을 수 있다. 이 와인들에는 육류 요리라도 질감이 좀 더 부드럽고 양념향이 덜 강한 육전이나 불고기, 또는 고기와 채소를 꼬치에 꿰어 만든 산적이나 누름적을 곁들이면 좋다. 전통 추석 음식은 아니지만 명절에 많이 먹는 빈대떡과 잡채에도 이 와인들이 잘 어울린다. 불고기와 잡채에는 간장 양념이 들어가고 전류도 간장에 찍어 먹는 경우가 많으므로 남미나 스페인산 와인을 살 때는 오크 숙성이 긴 레제르바 와인을 구매하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덜하지만 육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식에는 오히려 쓰임새가 더 많다. 묵직한 샤르도네의 경우 두부전과 특히 잘 어울린다. 두부전은 양념 간장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오크통에서 숙성된 부르고뉴 샤르도네가 좋고, 신대륙 샤르도네는 ‘oaked’라고 표기된 것을 사도록 한다. 소비뇽 블랑을 좋아한다면 퓌메 블랑(Fume Blanc) 또는 oaked라고 표기된 것이 보디감이 좋아 두부전과 잘 어울리며, 샤르도네보다 신선한 향을 지녀 색다른 조화를 즐길 수 있다. 오크 숙성 샤르도네와 퓌메 블랑은 화이트 와인이지만 묵직한 편이라 다양한 채소, 고기가 섞인 잡채와도 잘 어울린다.

    화이트 와인 중에도 무겁지 않고 산뜻함을 자랑하는 와인으로는 보르도의 그라브(Graves), 이탈리아의 가비 디 가비(Gavi di Gavi)와 소아베 클라시코(Soave Classico)가 있다. 이 와인들이 가진 상큼한 산도가 생선전의 기름맛을 잡아주고 생선구이에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생선전과 생선구이에 잘 어울린다. 마치 서양에서 생선요리에 레몬을 뿌려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뉴질랜드산 화이트 와인이 많이 수입되는데, 그중에서도 소비뇽 블랑은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애호가층이 확대되고 있다. 코에서는 허브와 풀향이, 입에서는 열대과일향이 매력적인 이 와인은 추석 음식 중에서도 나물류와 잘 어울린다.

    탕류와 와인은 궁합 안 맞아

    쇠고기 산적에 레드 와인 환상이네
    달콤한 화이트 와인으로는 아이스 와인과 귀부(貴腐) 와인이 있다. 이 와인들은 얼거나 귀부균에 감염돼 수분이 줄고 과당과 향이 농축된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열대과일향, 꽃향, 꿀향이 복잡하면서도 풍부하게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서양에서 디저트 와인으로 인기 높은 이 와인들을 송편, 한과, 말린 대추와 함께 내면 멋진 디저트 술상이 완성된다. 와인을 자주 접하지 않아 거부감이 있는 어르신도 달콤한 디저트 와인은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스 와인은 캐나다산, 귀부 와인은 독일산이나 헝가리산이 추천할 만하다.

    디저트 와인은 당도를 번호나 이름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럽처럼 너무 단 와인보다 중간 정도 당도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독일산 리슬링 귀부 와인은 아우스레제(Auslese) 등급이, 헝가리산 토카이(Tokaji) 와인은 4나 5 푸토뇨스(Puttonyos)가 적당하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몇 가지 원칙만 알아도 어렵지 않게 음식에 맞는 와인을 찾을 수 있다. 음식과 와인의 무게감을 고려해 묵직한 음식에 묵직한 와인을, 가벼운 음식에 가벼운 와인을 맞추되 육질과 동물성 지방은 레드 와인의 타닌으로 다스리고, 식물성 기름은 와인의 산도로 잡는 것이 기본이다. 단 음식에는 잔당이 있는 와인을, 신 음식에는 신맛이 강한 와인을 곁들인다. 음식의 짠맛과 와인의 단맛이 만나면 서로 좋은 궁합을 이루지만, 알코올도수가 높은 와인이 짠 음식과 만나면 맛이 쓰게 느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마저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간단히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이는 방법도 있다. 맥주가 우리 음식에 두루 잘 어울리는 것처럼 스파클링 와인의 기포 또한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스파클링 와인 하면 샴페인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가격이 비싸므로, 청량감만 따져 스페인산 카바(Cava)나 이탈리아산 프로세코(Presecco), 독일산 젝트(Sekt)를 선택하는 것도 좋다.

    추석 음식 중에는 와인과 함께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가장 피해야 할 음식이 생선포인데, 건어물에 와인을 곁들이면 비린내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국물이 많은 탕류도 와인과 어울리지 않는다. 서양에서도 수프와 와인은 잘 조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이것은 음료에 음료를 곁들이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굳이 탕류와 함께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건더기만 먹을 수도 있겠지만, 탕류에는 전통주나 소주가 더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추석을 맞아 와인 전문점과 대형마트 와인 코너에서는 할인행사가 한창이다. 이럴 때 추석 음식과 어울릴 만한 와인 한두 병을 구매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는 선물로 받고 마땅히 마실 기회가 없어 보관 중이던 와인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고향에 가져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 추석 음식에 와인을 곁들인다면 더욱 향기로운 가족 모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쇠고기 산적에 레드 와인 환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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