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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고전 속으로

우리 가문에선 몇 분이 급제했을까?

‘온라인 족보’ 따라가다 보면 집안 내력과 역사 공부 저절로

우리 가문에선 몇 분이 급제했을까?

우리 가문에선 몇 분이 급제했을까?

19세기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종가에서 필사한 ‘만가보’. 총 270여 가문의 족보를 알기 쉽게 간추려 엮은 자료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디지털 작업을 완료했다.

명절이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세대 구별 없이 공통 주제가 될 만한 것 가운데 하나는 단연 집안 이야기일 터. 돌이켜보면 우리네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우리 집안은 이러이러한 집안이다” “누구누구 같은 어르신을 배출해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며 조상을 본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곤 했다. 식상해 보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해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인의 롤모델이자 지난여름을 뜨겁게 달군 영화 ‘명량’의 주인공 충무공 이순신을 예로 삼아 집안 여행을 떠나보자. 이 글에서는 이순신 집안을 기준으로 설명하겠지만, 다른 성씨도 같은 경로로 유사한 수준의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출발점은 우리 역사의 역대 인물 정보를 집중 정리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인물관계정보’(www.kostma.net/FamilyTree)다. 이 웹사이트는 해남 윤씨 가문에서 편찬한 ‘만가보(萬家譜)’라는 종합 족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한 것으로, 해남 윤씨는 바로 고산 윤선도의 집안이다. 일반적으로 족보는 한 집안의 인물만 수록하지만 ‘만가보’에 실린 가문은 모두 270여 개에 달해 조선시대 유명 성씨가 거의 대부분 망라돼 있다. DB는 본관별, 성씨별, 책별 보기와 통계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다 인물 검색도 가능해 각 가문의 윤곽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각 가문의 윤곽 한눈에 확인

‘이순신’을 검색해보면 디지털 가계도를 통해 충무공의 아버지가 이정(李貞)이며 이희신(李羲臣), 이요신(李堯臣) 등 신(臣)자 돌림 형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족보는 세로줄이 할아버지-아버지-자식 순서를 나타내고, 가로줄은 같은 돌림자를 쓰는 형제를 나타낸다. 10대(代) 이상 사용할 수 있게 미리 만들어놓은 돌림자 일람을 항렬표(行列表)라 한다. 항렬표와 돌림자를 통해 비록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다르더라도 같은 세대에 속한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다시 돌아가 원문 보기를 눌러보자. 옛 향기가 나는 족보의 원문이 그대로 화면 위에 펼쳐진다. 자세히 보면 이순신의 증조부 이거(李据) 이름 옆에는 붉은색, 이순신 본인 이름 옆에는 파란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구별하기 위한 표식, 바로 과거에 급제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잠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people.aks.ac.kr) 웹사이트로 무대를 옮겨보자. 이 DB에는 고려와 조선의 과거(문과, 무과, 사마시, 잡과 등) 급제자 7만여 명의 신상정보가 시기별, 성씨별, 시험 종류별로 정리돼 있다. 합격한 이들의 시험 시기와 합격 등수, 당시 나이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이순신을 검색해보면 1576년 무과에서 29명 중 12등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자기 수련을 통해 영웅 자리에 오른 충무공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편 그의 증조부 이거를 검색하면 1480년 문과에 6등으로 급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만가보’의 동그라미 표식 중 파란색은 무과 급제자고 붉은색은 문과나 사마시 급제자를 표시한 것이다. 왕대별로 1576년 무과를 찾아가면 합격 순서에 따라 이순신의 과거 급제 동기생이 누구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만가보’의 원문 이미지에서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복(李百福)을 보면 붉은색 동그라미가 오른쪽에 표시돼 있고 왼쪽에는 생현령(生縣令)이라고 쓰여 있다. 이는 생원진사시 과거에 합격했고 이후 현령 벼슬까지 했다는 의미다. 생원진사시에 합격하면 생원이나 진사 호칭을 준다. 김 생원, 양 진사가 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시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서 이백복을 검색해보자. 진사시에 급제한 이백복을 볼 수 있고 상세 내용에 부친 이름이 이거로 나와 있어 ‘만가보’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원문 이미지를 꼼꼼히 살펴보면 이순신을 중심으로 위로는 주로 붉은색, 아래로는 파란색 동그라미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충무공 이후로 그의 집안인 덕수 이씨에서 무인이 많이 배출됐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웹사이트에서 무과 급제자의 성씨별 통계를 보면 현재까지 확인된 덕수 이씨 급제자가 75명으로 상당히 많다.

우리 가문에선 몇 분이 급제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관계정보’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충무공 이순신 가계도(왼쪽)와 ‘만가보’ 원본의 덕수 이씨 편. 무과 급제자를 의미하는 파란색 동그라미가 유난히 많다.

충무공 업적과 후손의 특채

덕수 이씨는 어떤 가문이었을까. 인물정보에서 ‘덕수이씨’ 역사를 검색하면 그 연원이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관련인물’ 메뉴를 보면 문과 급제자, 무과 급제자, 사마시 급제자, 잡과 급제자 등 해당 집안이 배출한 인물도 찾아볼 수 있다. 율곡 이이 선생 역시 덕수 이씨가 배출한 인물이라고 나타난다.

다시 ‘관련인물’ 메뉴에서 아래를 보면 ‘음관’이라고 분류된 인물이 많이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 관리를 선발하는 경로는 여러 가지였다.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쟁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큰 공을 세우거나, 훌륭한 업적을 세운 조상의 은덕을 입어 관리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음관은 바로 조상의 공적을 기려 시험을 보지 않고 그 후손을 관직에 특채하는 경우다.

덕수 이씨 관련 인물 중 음관을 보면 처음에 이가희(李可熙), 이건희(李健熙), 이겸희(李兼熙) 등이 나온다. 이 이름들을 클릭해 상세 내용을 보면 모두 무관으로 진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나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왜란 승리에 결정적 공훈을 세운 충무공의 업적을 기려 후손 상당수를 시험을 보지 않고 무관으로 등용한 것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는 실마리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국가유공자 우대와 흡사한 제도였던 셈.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는 그 밖에도 과거에 가장 많이 급제한 가문이 어디였는지, 형제가 가장 많이 급제한 집안은 어느 때 누구였는지는 물론, 대를 이어 급제한 부자(父子)가 가장 많은 가문, 과거에 여러 번 급제한 인물 등 흥미 있는 통계가 많다. 누가 알겠는가.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 집안일지. 추석 연휴 온 가족이 PC(개인용 컴퓨터) 앞에 둘러앉아 뿌리 찾기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주간동아 2014.09.01 953호 (p88~89)

  • 양창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uridul@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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