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의료과실에 형사 책임 지우려면 완벽 증거 있어야

  • 박영규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4-08-25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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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과실에 형사 책임 지우려면 완벽 증거 있어야

    침에 의한 감염으로 한의사에게 형사 책임을 물으려면 검찰이 그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당뇨병 환자가 한의사에게 침을 맞고 발가락이 괴사해 절단했더라도 침 시술 과정에서 환자가 균에 감염됐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하지 못하면 한의사를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7월 24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2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씨는 2008년 2월 당뇨병을 치료 중인 환자 B씨가 왼쪽 발이 저리다고 호소하자 혈당수치를 측정하지 않고 왼쪽 발에 16차례 침을 놓았다. 이후 B씨는 균에 감염돼 왼쪽 발가락이 괴사했고, 결국 절단했다. A씨는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선 무죄 판결 선고를 받았으나, 검사가 항소해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한의사 A씨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먼저 재판부는 B씨 족부에 생긴 괴사가 침 시술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B씨는 1999년쯤부터 대학병원에서 당뇨병 치료를 받고 있었고, 또한 그 사실을 한의사 A씨에게 말했기 때문에 다리 통증 치료를 맡은 A씨는 당뇨병에 대해선 B씨가 대학병원에서 적절하게 치료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괴사해 절단한 B씨 족부에서 배양된 균은 통상 족부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침 등을 시술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균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B씨가 한의원을 찾은 후 다른 대학병원에서 찍은 족부 상처 부위 영상의학 자료에 따르면 한의사 A씨가 침 치료를 하기 전에도 또 다른 상처가 이미 가까운 부위에 있었고, 한의원 치료 후 생긴 상처가 침을 놓거나 사혈을 한 부위와 다소 거리가 있는 점 △한의사 A씨가 B씨에게 왼발 상태가 심상치 않다면서 당뇨병을 치료하는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던 점 등이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대한한의사협회 사실 조회 결과 당뇨 병력이 있는 환자 또는 당뇨병성 족병변에 대해 침을 놓거나 사혈을 하는 것이 금지돼 있지는 않고, 다만 시술 전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자침 시 너무 강하게 찌르거나 너무 깊게 찔러 상처를 필요 이상으로 크게 하거나 기타 조직을 손상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일반적인 한의사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했을 때 당뇨 병력이 있는 피해자에게 침을 놓거나 사혈을 한 행위 자체만으로 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료사고에서 과실 유무를 판단할 때 같은 업무와 직종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하고, 사고 당시 일반적 의학 수준과 의료 환경 및 조건, 의료 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야 하며, 이는 한의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점을 환기한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의료과실과 관련한 민사소송에서 전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아닌 의사가 의료과실이 없음을 입증하게 해 그 입증 책임이 전환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의료과실을 인정할 때 그 판단 기준이 좀 더 엄격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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