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뺀질이 직원 처리해줘요”

헤드헌팅업체에 ‘직원 방출’ 은밀한 의뢰 늘어나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4-08-25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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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뺀질이 직원 처리해줘요”
    팀장 이하 동료들이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하든 말든 오후 6시면 ‘칼퇴근’하고, 상사가 시킨 일 외에는 관심조차 없으며, 바쁜 동료의 일을 나눠서 하라고 하면 “내 일도 아닌데 왜?”라고 치받는 부하직원 때문에 속병을 앓던 김영훈(40·가명) 팀장. 그는 헤드헌팅을 통해 해외 유학파 출신으로 똘똘하고 자신감 넘치던 30대 초반 이모 씨를 부하직원으로 영입할 때만 해도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4개월을 넘기지 못했고, 김 팀장은 이씨를 추천한 헤드헌터에게 연락해 은밀히 그의 이직을 부탁했다. 오랜 유학생활로 한국 조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기적, 개인적 성향으로 자주 마찰을 일으키는 이씨를 그대로 뒀다가는 팀 분위기가 나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제 직원 방출’은 헤드헌팅 본래 업무가 아니다. 이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며 입을 연 헤드헌터 박모 씨는 “‘골 때리는’ 상사, 업무 역량이나 조직 융화 측면에서 속 썩이는 부하직원을 내보내려고 은밀히 이직을 부탁하는 사례가 최근 많아졌다. 과거에는 없던 일이다. 얼마 전에도 ‘성격파탄자인 차장이 아랫사람을 너무 괴롭힌다. 이직을 좀 시켜달라’며 부탁해온 사례가 있다. 대상자(차장)의 평판을 알아보니 성격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일을 타이트하게 시켜 부하직원이 부담을 느꼈던 것”이라고 전했다.

    ‘직원 방출’이 목적인 경우 헤드헌팅 의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평소 친분을 쌓은 헤드헌터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박씨는 “의뢰인 처지를 생각해 우리도 마치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것처럼 이직 대상자에게 접근한다”고 밝혔다.

    스카우트 제의하면서 대상자에 접근



    ‘헤드헌팅’의 사전적 의미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간부, 고급 기술인력 따위의 전문인력을 확보해 기업에 소개해주는 것’. 현실에서도 헤드헌팅은 경쟁 기업에서 인재를 스카우트하거나 직장인이 이직을 통해 몸값을 높이려고, 혹은 좀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려고 이용하는 서비스로 통용된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최근에는 문제 있는 직원을 내보내거나 사내 경쟁자를 축출하는 수단으로 헤드헌팅이 이용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해고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우리 사회의 특성과 조직 구성원 간 치열한 경쟁이 있다.

    이 밖에도 최근 헤드헌팅업계에 다양한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잡코리아의 헤드헌팅 전문 포털사이트 HR파트너스가 상반기(1~5월)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헤드헌팅업체의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총 5만9821건에 이르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8.7% 증가한 수치다. 수년째 이어지는 경기 불황과 저성장 기조에 따른 기업들의 대규모 채용 중단, 상시 구조조정 등에도 헤드헌팅을 통한 채용이 증가한 이유는 뭘까. 잡코리아 헤드헌팅팀 안현희 이사는 “보통 연말, 연초에 기업에서 인사이동이 있다. 그 여파로 상반기 이직이 활발한 경향을 보인다. 최근 이직률도 높아졌다. 경력 직원이 한꺼번에 그만두는 게 아니라 들쭉날쭉 빠져나가니 헤드헌팅을 통한 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채용하는 직장인 경력 연차는 ‘3년 차’가 21.6%로 가장 많고, ‘5년 차’가 18.1%로 2위를 차지했다. 과거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40, 50대 임원급을 주로 영입하던 기업들이 실무 역량을 가진 좀 더 젊은 직원, 낮은 직급 간부를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특히 경력 3년 차는 29~30세에 해당하고 진급이 빠른 경우 대리급이라 기업은 이들을 ‘일을 제대로 시킬 만한 연차’로 본다. 따라서 최근 3년 차를 중심으로 한 헤드헌팅 시장이 크게 형성됐고 그 기회를 이용해 이직하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안 이사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젊은 세대는 한 회사에 오래 다니면 도태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취업대란, 경제 불황을 온몸으로 겪은 탓에 집단불안감에도 시달리고 있다. 더 나은 미래, 안정적인 미래를 고민하고 해법을 찾다 보니 헤드헌팅업체 문을 두드리는 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30세가 넘으면 나이가 걸림돌이 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초조감도 느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자발적으로 업체 찾는 사람들

    “뺀질이 직원 처리해줘요”

    마음에 안 드는 직장 동료가 있으면 헤드헌팅업체에 추천해 전직을 유도하라는 내용의 TV 광고. 역(逆)헤드헌팅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편 헤드헌팅업체에 구인을 의뢰하는 기업은 해당 직무에 딱 들어맞는 능력을 지닌 직원을 추천받기를 원하고 있어 헤드헌터들도 업종을 중심으로 전문화, 세분화하는 추세다. 또 직장인과 헤드헌터의 관계도 끈끈해지고 있다. 언제든 원할 때 이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헤드헌터를 통해 꾸준히 업계 정보를 수집하고 코칭을 받으면서 경력 관리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과거에는 가고자 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이직을 원하는 직장인이 맞췄다면, 최근엔 회사를 자신에게 맞추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외국계 기업 팀장직’을 원한 30대 중반 최모 씨는 헤드헌터에게 이직을 의뢰해 서류심사와 1차 면접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기업 심층면접에서 그는 크게 실망했다. 술과 고기 위주의 회식을 겸한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그는 면접관에게 “직원들이 고기를 좋아해 이런 회식을 자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입사를 포기했다. 이직을 위해 수년간 지켜온 원칙을 바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인’ 헤드헌팅사업본부 이인혁 과장은 “요즘 젊은이는 이직할 회사를 고를 때 자기 취향과 개성에 맞는 문화를 가졌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과거엔 유능한 직원에게 헤드헌터가 먼저 연락해 이직을 제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자발적, 적극적으로 헤드헌터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구조조정에 상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회사에서 밀려나기 전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부장급 이상의 경우 여러 헤드헌터에게 이직을 의뢰해놓고 조건을 저울질하기도 한다. 아예 이직할 회사를 점찍어놓고 연봉 협상 등 처우 문제만 헤드헌터에게 의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기업은 스카우트하려는 사람을 점찍은 뒤 헤드헌팅업체에 ‘레퍼런스 체크’만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는 학력 검증, 평판조회, 업무 역량 평가 등이 포함된다. 이인혁 과장은 “경력 직원을 채용했는데 얼마 못 가 그만두면 회사 손실이 크기 때문에 최근 기업들은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 보통 100만 원에서 최대 1000만 원대까지 쓴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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