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여유와 대화 딱 맥주 한 잔 좋지 아니한가

낮술 예찬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입력2014-08-25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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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와 대화 딱 맥주 한 잔 좋지 아니한가
    요즘 유행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스몰비어다. 가볍게 한잔하는 맥주 문화로, 맥주 2잔에 감자튀김 같은 간단한 안주를 포함한 1만 원대의 ‘감맥’ 세트를 판다. 감맥(감자튀김+맥주)은 치맥(치킨+맥주)에 버금가는, 가벼운 술자리의 새로운 대명사가 되고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값이면 감맥을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요즘 직장인의 후식으로 커피 대신 맥주 한 잔이 주목받고 있다. 점심에 엄두를 못 낸 이들은 퇴근길에 감맥집에 들러 한 잔 가볍게 걸치고 집으로 향한다. 물론 여기서도 좀 비싼 안주에 맥주를 많이 마시면 돈이 꽤 들지만, 최소한으로 마시면 1인당 5000원 정도로 맥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게 포인트다.

    스몰비어 유행은 좀 더 가벼운 술자리와 함께 낮술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다. 물론 낮술은 술집보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마시는 게 좋다. 술집은 왠지 술을 더 많이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자칫 한 잔으로 정해둔 제한선을 넘기기 쉽다. 피자와 맥주를 함께 먹는 피맥, 그리고 수제버거와 맥주를 함께 즐기는 버맥도 낮술의 좋은 레퍼토리다. 맥주가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기 전에 음식과 함께 먹는 음료로 선택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작은 사치는 바로 낮술이다. 아니, 벌건 대낮부터 술 먹는 게 무슨 사치냐고 하겠지만 그건 낮술 의미를 잘 몰라서다. 낮에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다는 얘기는 그만큼 덜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여유가 있어서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라, 여유를 부리다 보면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 즐거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술이 아닌, 식사에 곁들이는 음료



    대개 식사하면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면 수다를 떠는 동안 술이 깨기 때문에 오후 업무에도 지장이 없다. 술을 아예 못 마시는 사람에겐 엄두도 못 낼 미션이겠지만, 맥주 한두 잔을 가볍게 비우는 수많은 이에게 낮술은 여유로움의 대명사와 같다. 그렇다고 매일 마시자는 게 아니다. 아주 가끔 반가운 사람이나 친한 사람과 점심때 반주로 곁들이자는 얘기다. 물론 업무가 바쁠 때는 절대 피해야 한다. 그리고 자주 마셔도 안 된다. 뭐든 좋은 건 가끔씩 해야 제맛이다.

    낮술이 과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방점은 ‘과하면’에 찍힌다. 낮술은 절대 과해선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참여하는 낮술 자리에선 맥주 한 잔이 기본이고, 좀 더 흥이 나도 2잔이 최대치다.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대화가 목적이라 그렇다. 사실 맥주 한두 잔이면 취기가 오르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나는 약속을 가급적 점심시간대에 잡는다.

    밥 먹고 얘기를 나누기엔 점심이 더 편하다. 저녁은 자칫 술자리로 이어지기 쉽고, 그 술자리가 도통 끝나질 않는다. 먹고 마시다 보면 술에 취하고, 그다음 날까지 피곤하다. 이것을 수시로 하는 사람도 많은데, 만성피로도 문제지만 가족과 보낼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밤에 책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등 온전히 자신을 위해 투자할 기회가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저녁 약속은 정말 신중하게 잡는 편이다. 한국 남자들의 저녁 약속에서 술이 빠질 수 없으니 말이다.

    한국은 술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는 나라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3년간 술 소비량을 평균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술 소비량은 1인당 연간 12.3ℓ이다. 큰 생수 페트병이 2ℓ이니까 6병 분량인 셈이다. 우리가 먹는 술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건 역시 소주다. 양으로 따지면 맥주나 와인을 즐기는 나라의 국민이 더 많은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알코올 도수로 따지면 우리나라 국민이 세계 강자임에 틀림없다. 특히 17년산 이상 된 고급 위스키 소비에선 전 세계 부동의 1위다.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미국과 중국이 2, 3위인 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마시는 것만큼 흘리는 술도 많다. 우리에겐 술 권하는 문화가 있는 데다 폭탄주를 마시고, 과음과 폭음 등 술 자체를 즐기기보다 취하려고 마시는 특성이 있다. 하여간 밤 시간대 술자리는 짧고 가볍게 끝나기가 무척 어렵다.

    그렇다면 낮술은 어떤가. 우리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은 1~2시간에 불과하다. 이때 술을 마시려면 맥주 한 잔이 딱 좋다. 술을 많이 마셔야 대화가 술술 풀리는 게 아니다. 한낮의 쉼표는 맥주 한 잔으로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낮술을 예찬하는 데는 밤술을 줄이자는 의미도 있다. 술자리를 가벼운 낮술로 바꾼다면 우리의 술 소비량도 크게 줄어들지 않겠나.

    햇살이 따가운 한낮, 그늘이 드리워진 카페테라스에서 맛있는 식사에 와인이나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가볍게 곁들이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거기서 술은 즐거운 점심을 위한 아주 작은 조연에 불과하다. 수다삼매경에 빠지면 점심은 오후까지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최고 사치다. 그만큼 일상이자 마음이 여유롭다는 방증일 테니 말이다.

    그럼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아마 전 세계적으로 식사시간 짧기로 우리를 따라올 나라가 없을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밥이 나오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먹는다. 한 테이블에 앉았어도 대화 없이 그냥 먹는 일에만 충실하다. 우리는 뭐든 빨리빨리 하는 걸 당연시 여긴다. 직장인의 평일 점심은 더하다. 1시간 안에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휴식까지 취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신기한 건 휴일 점심에도 우리는 밥 먹기에 바쁘다는 점이다. 평소 몸에 밴 빨리 먹는 문화가 여유로운 시간대까지 지배하고 있는 거다.

    유럽 사람과 휴일 점심을 먹으면 긴 시간에 먼저 놀란다. 낮 12시가 안 돼 시작한 점심이 오후 3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천천히 먹고, 수다 떨고, 와인 한 잔 하고, 또 수다 떨고, 후식을 먹다 보면 몇 시간이 후딱 간다. 점심의 주연은 역시 함께 한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찾는 즐거움이다. 어떤 맛있는 밥도 주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점심이나 저녁이나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함께 어울려 대화하고 서로 친해지자는 것 아니겠는가.

    여유와 대화 딱 맥주 한 잔 좋지 아니한가

    맥주 한두 잔을 가볍게 비우는 직장인에게 낮술은 여유로움의 대명사와도 같다.

    신나게 수다 떨고 기분 전환

    그런 점에서 우리는 너무 급하게 먹고, 음식에만 집중한다. 이젠 좀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일상의 사치는 결국 자신에게 얼마나 여유를 허락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돈이 많아서 생기는 여유가 아니라, 마음이나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다. 적어도 점심이 주는 사치부터 누려보는 건 어떨까.

    물론 나쁜 낮술도 있다. 점심부터 소맥을 말고 과음하는 건 최악의 낮술이다. 이건 낮술의 본질을 흐리는 거다. 저녁에 마시는 술과 점심에 마시는 술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영업을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이에겐 낮술도 업무의 연장이겠지만, 술은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편한 사이끼리 마실 때 최고로 맛있고 즐거움을 선사한다. 낮술은 모든 이에게 권장할 사치는 아닐 수 있지만, 가끔씩 넥타이를 풀고 신나게 수다 떨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 데 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 이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중요 포인트, 바로 낮술은 딱 한 잔만 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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