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어디 인생이 달콤하기만 할까?

우디 앨런 감독의 ‘매직 인 더 문라이트’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4-08-25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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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인생이 달콤하기만 할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술은 뭘까. 엉뚱한 대답 같지만 아마 사랑일 것이다. 마술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설명을 할 수 없는 사랑, 그런 게 있으니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작든 크든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다. 술 마시는 여자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던 남자가 알코올 의존증 여자를 만난다든지, 덜렁거리는 여자를 싫어하던 부잣집 외아들이 그런 여자를 만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반대로 심각한 장애물도 있다. 친일파를 죽이려고 접근했다 사랑하게 된 스파이나, 집안의 원수와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말이다.

    우디 앨런 감독은 이런 장애물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매치 포인트’ 같은 영화에서는 세속화한 낭만 앞에서 무너지는 사랑을 그렸다. 반면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낭만적 사랑을 믿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앨런 감독의 낭만적 태도가 돋보이는 영화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합리적 이성과 과학을 믿는 남자 스탠리와 초월적 신비를 믿는 여자 소피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렸다. 영화가 시작하면 웨이링수라는 이름의 중국인 마술사가 펼치는 이국적인 마술쇼가 펼쳐진다. 그런데 쇼가 끝나자 마술사는 가발과 수염을 뜯어내고 쇼를 도와준 스태프들에게 독설을 내뱉는다. 웨이링수라는 가명과 중국인 가면을 쓴 채 쇼를 하는 마술사, 그가 바로 스탠리다.

    스탠리는 역설적이게도 마술을 믿지 않는다. 기쁜 마음으로 눈속임을 보려고 온 관객과 달리 그는 마술이란 과학과 합리성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이 믿음에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관객에 대한 약간의 비웃음도 자리하고 있다.

    그런 스탠리에게 친구가 한 가지 사건을 의뢰한다. 프랑스 남부 카트리지가(家)에 놀라운 심령술사가 등장했다고, 자신은 눈속임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지만 스탠리 자네라면 그것을 밝힐 수 있지 않겠느냐고. 곧장 현장으로 간 스탠리는 매력적이지만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심령술사 소피와 만난다. 그리고 속임수를 밝히려다 오히려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두 배우의 매력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삐딱하고 의심 많고 투정도, 잔소리도 넘치는 스탠리 역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주인공 ‘다시’로 잘 알려진 콜린 퍼스가 맡았다. “삶은 추하고, 잔혹하고, 짧다”고 일갈하는 그는 어쩐지 투덜거리는 아이처럼 귀여운 데가 있다. 서른 살가량 나이 차이가 나지만 콜린 퍼스의 상대역을 맡은 엠마 스턴도 상큼하고 풋풋하다.

    두 배우의 시너지 효과가 영화적 매력의 7할이라면 나머지 3할은 바로 프로방스 지역의 아름다움이다. 영화 ‘아무르’의 촬영감독이던 다리우스 콘지는 프랑스 남부의 높은 일조량을 마치 인상파 화풍처럼 화면에 찍어낸다. 1928년 재즈 시대 낭만적인 음악과 여성의 옷차림도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시폰 소재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스턴은 뤼미에르나 모네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선사한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앨런 감독의 스타일인 냉소나 아이러니를 원한 관객이라면 지나치게 관대하고 여유로운 우디 앨런식 낙천주의에 실망할 법하다. 인생의 달콤함만을 보여주는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인생은 비극일 뿐이라고 투덜거리는 태도와 닮아 있다. 잠시 숨 고르기 위한 소품으로 딱 알맞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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