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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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다 모닥불 피우고 다시 시작

작은 공동체 ‘러브캠프’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8-18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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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워하다 모닥불 피우고 다시 시작

    ‘홍천 모곡 러브캠프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Remember Love Camp) 페이스북.

    ‘큰 것’에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다. 압도적 규모의 외국 페스티벌은 경이로웠고,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공연은 동경 그 자체였다. 수많은 거대 공룡 이름을 줄줄이 외며 어느 게 더 큰지 친구들과 다투던 어린 시절 심리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일본 서머소닉,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가서 그 거대함에 놀랐다. 한국은 언제나 그 정도 규모의 페스티벌을 가질 수 있을까 부러웠다.

    하지만 문화는 공룡과 다르다. 자연의 선택과 진화의 신비가 공룡 크기를 결정하지만, 현대 대중문화에서 거대함은 결국 투입한 자본에 정비례한다. 가치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대자본의 속성은 이상의 영역에 속한 것들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형태를 바꾸고 본질을 흐트러뜨리곤 했다. 설렘이 줄어들었다.

    그때 떠오른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친한 형의 차를 얻어 타고 훌쩍 강원 홍천으로 떠났다. 비포장도로조차 나 있지 않은 산골 갈대숲을 헤치고 올라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울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보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말로만 듣던 히피가 떼로 모여 있었다. 조립식 건물에는 사람들의 짐이 부려 있고 마당에는 돼지고기와 고등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마당 한구석에 흙을 돋우어 만든 간이무대도 있었다. 밴드들이 공연을 시작했고, 그 한편에선 모닥불에 돼지고기와 고등어를 구워 소주와 함께 먹었다.

    그것은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었다. 딱히 이름조차 없던 하룻밤은 이듬해 ‘러브캠프’(‘주간동아’ 897호 참조)로 불리기 시작했다. 소문도 조금씩 났다. 홍대 앞 골수 ‘딴따라’들이 늦여름만 되면 버스를 타고 홍천으로 향했다.

    2009년 러브캠프를 마지막으로 찾았다. 조립식 가옥이 불타 없어져 완연한 공터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간이 천막을 치고 돗자리 위에 널브러져 아무렇게나 잠을 잤다. 흙으로 된 무대는 그대로였다. 땅을 판 뒤 천 쪼가리만 두른 화장실이 새로 생겼다. 50여 명에 불과하던 관객(?)이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외국인도 꽤 보였다. 동이 틀 때까지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몸을 맞춰 춤도 췄다.



    노숙에 가까운 수면이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함께 간 일행에게 “이게 진짜지!”라고 외칠 때의 감정이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 탈 때까지 식지 않았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이요, 재미였다. 과정을 채우는 내용의 산물이었다. 그랬던 러브캠프가 어느 날 중단됐다. 행사 주최자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년 하루뿐인 그 특별한 밤을 결국 다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꾸준한 시도와 기획 끝에 그 사람들이 올해 캠프를 이어나간다. 8월 30~31일 강원 평창의 민박 예다랑에서 러브캠프가 다시 열린다.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함께 먹을거리를 나눈다. 예전에도 그랬듯 입장료는 꽃 한 송이면 된다. 무대에 서는 팀들은 이름조차 낯설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의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런 작은 것들이 건강한 문화 생태계를 만든다. 큰 것 하나보다 작은 것 수백 개가 발아하고 자라날 때 비로소 다양성이 발현된다. 페스티벌 거품이 꺼져가는 지금, 더 많은 선의의 작은 공동체가 생겨나길 바란다. 자본이 장악한 한국 대중문화의 참다운 초원은, 그때 다시 푸른빛으로 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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