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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코인 투기에 컴퓨터 부품 시장 들썩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기바람이 불러온 그래픽카드 대란

코인 투기에 컴퓨터 부품 시장 들썩

코인 투기에  컴퓨터 부품 시장 들썩

[shutterstock]

“이 업계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물건이 없어 못 파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6월 17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만난 유모(41) 씨의 말이다.

최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채굴 열풍이 불면서 채굴용 컴퓨터의 핵심 부품인 그래픽카드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높지 않던 과거에는 채굴보다 채굴된 화폐를 매매하는 식의 투자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의 가치가 급등하자 일부 투자자가 직접 채굴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성이 큰 만큼 고액을 들여 직접 채굴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게다가 가상화폐 가격이 떨어져 채굴용으로 사용한 그래픽카드가 대거 시장에 나오면서 컴퓨터 부품 시장에도 혼란이 올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도 있다.  

“웃돈 주고도 그래픽카드 못 구해”

코인 투기에  컴퓨터 부품 시장 들썩
6월 17일 찾은 용산전자상가의 조립식 컴퓨터 매장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래픽카드를 구하지 못해 고성능 컴퓨터를 조립할 수 없기 때문. 컴퓨터 부품 판매업자 김모(43) 씨는 “여기에 부품 판매 업체가 200여 곳 있는데 하루에 거래되는 그래픽카드는 20~30개에 불과할 정도로 품귀현상이 심각하다. 최근 가상화폐 채굴업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전자상가를 돌며 그래픽카드를 사재기 식으로 구매하는 바람에 물량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임용 컴퓨터에 주로 사용하던 그래픽카드까지 전부 품절돼 조립식 컴퓨터 매장이나 PC방 업계도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판매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6월 14일 컴퓨터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코인 채굴용으로 각광받는 AMD사의 그래픽카드 RX580의 6월 첫 주 판매량은 전주 대비 280%로 폭발적 상승세를 보였다. 27일 기준 해당 제품은 품절된 상태로 구매가 불가능했다.

최근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가상화폐는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신원 불명의 프로그래머가 개발해 유통한 것으로 알려진 ‘비트코인’과 러시아계 캐나다인 비탈리크 부테린이 2015년 개발한 ‘이더리움’이다. 이 두 가상화폐를 획득하려면 컴퓨터를 통해 고도의 수식으로 구성된 암호를 풀어야 한다. 이처럼 암호를 풀어 직접 가상화폐를 얻는 방식을 광석을 캐내는 일에 빗대 ‘채굴’이라 부른다.

물론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6월 11일 비트코인이 개당 3000달러(약 342만6000원) 정도에 거래되는 등 값이 폭등하자 직접 채굴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래프 참조).

가상화폐는 통화량에 따라 채굴 난도가 점차 상향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채굴된 양이 많을수록 가상화폐를 얻고자 풀어야 하는 수식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방식. 가상화폐 암호를 풀어내는 방식은 대입법만으로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것과 유사하다. 채굴이 진행될수록 대입해야 할 경우의 수는 늘어난다. 한번에 많은 연산이 이뤄져야 빠르게 채굴이 가능한 것. 이 때문에 중앙처리장치(CPU)보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내장된 그래픽카드가 가상화폐 채굴용 컴퓨터의 주요 부품으로 각광받게 됐다.

실제로 채굴용 컴퓨터 한 대를 만들려면 많은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증권사 RBC캐피털 조사에 따르면 대당 3000달러(약 340만 원) 안팎의 채굴용 컴퓨터 가격에서 그래픽카드가 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RX580의 통상 가격은 20만~30만 원 선. 즉 채굴용 컴퓨터 한 대에 최소 7개에서 최대 11개의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상화폐 채굴 때문에 그래픽카드 수요가 급증하자 제조사인 AMD와 엔비디아는 각각 RX400, GTX1060을 개선한 채굴 전용 그래픽카드를 출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채굴 전용 그래픽카드는 일반 그래픽카드에 비해 보증기간을 줄이고 가상화폐 채굴에 불필요한 부품을 제거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채굴 투자는 크게 채굴용 컴퓨터를 구매해 가상화폐를 모으는 ‘소유형’과 채굴회사에 위탁해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수익형’으로 나뉜다. 업계에 따르면 투자자는 대부분 수익형 투자를 하고 있다. 소유형 투자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

채굴, 투기로 번지는 건 위험

코인 투기에  컴퓨터 부품 시장 들썩

가상화폐 채굴기 모습. 다량의 그래픽카드가 사용된다. [사진 제공 · ReallyCoolDeals.com]

개인이 쓸 수 있는 채굴용 컴퓨터는 현재 온라인상에서 250만~350만 원에 팔리고 있으나 한 대로는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게다가 채굴용 컴퓨터는 전력 소모와 발열량이 많아 전기요금이 비싼 가정에서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채굴업체는 대부분 공장 창고를 빌리는 등 저렴한 산업용 전기를 사용한다.

가상화폐 채굴 열풍은 비단 한국의 일만은 아니다. 가상화폐 최대 채굴국인 중국은 세계 비트코인 채굴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상화폐가 안정적인 투자 수단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보도를 통해 ‘가상화폐의 가격이 한 달 만에 10배씩 증가하는 것은 전형적인 거품 징후’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가상화폐는 추후 결제수단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아 차세대 화폐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투자가 늘어나 가치 변동성이 높아지면 화폐로 인정받기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시세 변화가 클 경우 투자 위험성도 덩달아커진다”고 경고했다.

특히 직접 가상화폐 채굴 설비를 갖추는 등의 투자는 더 위험하다. 익명을 요구한 채굴업계 한 관계자는 “이처럼 (가상화폐) 시세 등락이 큰 상황에서 직접 채굴에 큰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채굴용 그래픽카드를 중고로 파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용산전자상가에서 12년 간 컴퓨터 부품 판매업을 해온 정모(48) 씨는 “2014년 비트코인 거래소가 해킹당해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하자 채굴용 그래픽카드가 대거 중고시장에 나오면서 값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의 가상화폐 투자 열기도 차츰 가라앉고 있다. 1월에는 중국 정부가 가상화폐 주요 거래소 3곳에 대해 감사에 착수했다. 정부의 규제 움직임이 보이자 글로벌 비트코인 거래 규모 중 중국 거래소 비중이 지난해 94%에 육박했지만 1월에는 23%로 급감했다.


입력 2017-07-03 15:02:51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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