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8

2014.07.28

자살…자연사…타살…의혹 눈덩이

유병언 사인 놓고 온갖 설 난무…부실한 초동수사로 ‘음모론’ 불러

  • 박재명 동아일보 기자 jmpark@donga.com

    입력2014-07-28 0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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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자연사…타살…의혹 눈덩이

    7월 22일 오전 DNA 감식 결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가 발견된 전남 순천시 서면 야산에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원 안).

    “어이쿠. 도대체 이게 뭐지?”

    가랑비가 내리던 6월 12일 오전 9시. 20일 만에 잡초를 베려고 전남 순천시 서면의 뒷산 매실밭을 찾은 박윤석(77) 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거진 수풀을 베던 중 밭 한구석에서 ‘해골’이 된 변사체 한 구를 찾은 것이다.

    박씨는 “얼굴이 해골이 됐고 행색이 너무 초라해 늙은 노숙자가 여기서 죽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출동한 순천경찰서 경찰관들 역시 노숙자로 생각하고 부검에서 특이사항이 나오지 않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DNA 감식 신원 의뢰를 요청해놓은 뒤 시신 존재를 잊었다. 시신은 순천장례식장에 임시 안치됐다. 40여 일이 지난 7월 21일 저녁 경찰청에서 순천경찰서로 급박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변사자의 DNA 결과가 유병언으로 나왔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하루 평균 3만 명의 경찰이 100일 가까이 찾아 나섰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소재가 발견된 순간은 그렇게 허망했다.

    노숙자가 숨진 전형적 모습



    시신은 나왔지만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각종 의문이 제기됐다. 가장 큰 논란은 사인이다. 공개된 최초 현장사진에 따르면 시신은 잠자는 듯 똑바로 누워 있다. 상의는 이탈리아 고가 브랜드 ‘로로피아나(Loro Piana)’ 점퍼 안에 내복을 입었다. 벙거지 모자를 베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채 다리를 쭉 뻗은 모습이었다. 왼손은 아랫배 위에, 오른손은 땅 위에 1자로 뻗어 있었다. 허름한 천 가방도 곁에 있었다.

    경찰이 이 사건을 행려병자의 객사(客死)로 판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숙자가 밖에서 잠을 자다 저체온증으로 숨진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온몸을 쭉 뻗고 누워 있는 모습이 오히려 저체온증 사망이 아닌 증거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시신은 보통 몸을 웅크린 채 발견된다”며 “5월 말에는 노숙했다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만약 자연사가 아니라면 사건이 더 복잡해질 공산이 크다. 시신 몸에 아무런 타살 흔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신 발견 그다음 날인 6월 13일 순천 성가롤로병원에서 1차 부검을 실시했다. 당시 부검의는 “시신 훼손이 심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어렵다”며 “독극물 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평소 사용하던 안경이 없고, 도피 자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점 때문에 타살 의혹도 제기됐지만 이는 급박한 상황에서 허둥지둥 빠져나오다 챙기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다. 경찰은 7월 24일 유 전 회장의 것으로 보이는 안경을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서 약 1.5km 떨어진 밤나무밭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 전 회장은 양말조차 신지 못하고 산길을 걸은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검찰이 6월 27일 유 전 회장의 별장 ‘숲 속의 추억’에서 현금 8억3000만 원과 미화 16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발견한 점을 고려하면 금품을 빼앗기 위한 타살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자살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은 일상생활에서도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등 자기표현이 강했던 인물”이라며 “유서 한 장 없이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시신은 40일 만에 신원을 확인했지만 자살이나 타살, 자연사 등 어떤 것도 쉽게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명확한 사인 규명 어려울 수도

    자살…자연사…타살…의혹 눈덩이

    사망 당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지니고 있던 소지품들.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발견한 것과 관련해 7월 22일 오전 전남 순천경찰서에서 우형호 경찰서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위부터).

    유 전 회장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자 인터넷에서는 ‘발견된 시신이 유병언이 아니다’라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시신은 80% 이상 백골 상태가 됐는데, 짧은 시간 뼈가 드러날 만큼 부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여기에 순천 현장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4월까지 벙거지 모자를 쓴 노숙자가 자주 목격되다 최근 사라졌다는 주민 증언이 나오면서 ‘시신 바꿔치기’ 음모론은 정설처럼 굳어졌다. 누리꾼은 유병언 논란을 덮으려고 정부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가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개연성은 낮다. 유 전 회장은 검찰이 별장 ‘숲 속의 추억’을 덮친 5월 25일 도주했다 6월 12일 사체로 발견됐다. 만약 첫날 사망했다면 18일 동안 시신이 부패할 시간이 있었다. 권일훈 권법의학연구소 소장은 “6월에는 곤충 활동이 활발해 시신에서 구더기가 무수히 증식한다”며 “일반적인 생각 이상으로 빨리 뼈가 드러나는 등 시신 부패가 이뤄진다”고 전했다. 돼지 사체를 대상으로 한 부패 실험 결과 비슷한 조건에서 열흘 만에 사체의 백골화가 이뤄졌다.

    그 무엇보다 경찰과 국과수가 신원을 확인하려고 실시한 5가지 이상의 검사에서 이번에 발견된 시신이 유 전 회장이라는 점이 이미 증명됐다. 국과수는 시신 뼈에서 추출한 DNA가 유 전 회장과 일치하고, 형 유병일 씨의 DNA와 아버지 어머니를 공유하며, 아들 유대균 씨의 추정 DNA와 부자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에 시신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에서 채취한 지문이 유 전 회장 본인 지문과 일치했다.

    결국 이 같은 ‘유병언 사망 괴담’의 근원에는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가 깔려 있다. 경찰은 국과수의 DNA 확인이 있은 후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유류품(遺留品)을 재조사했다. 그동안 노숙자의 허름한 물건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유 전 회장의 유류품이라 생각하고 분석하니 모조리 증거가 됐다. 시신 옆에 있던 가방에는 유 전 회장의 책 제목인 ‘꿈같은 사랑’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구원파 계열사인 한국제약이 생산한 ‘ASA스쿠알렌’ 제품도 있었다. 애초 제대로 수사했다면 40일 동안의 혼란은 없었으리란 얘기다. 여기에 발견 현장에 시신 머리카락과 지팡이 등 주요 증거물을 ‘흘리고’ 온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초동수사의 부실 문제가 더 커졌다.

    7월 25일 국과수의 2차 부검 결과 발표 이후에도 명확한 사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같은 음모론이 계속 제기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사인 규명이 쉽지 않아 보인다. 뼈가 유일한 단서인 상황에서 사망하고 40일이 지난 시신을 두 번째 부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빈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명예교수는 “구체적인 사인은 물론 자살인지, 자연사인지도 판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약 시신에서 독극물이 발견될 경우 사망 원인은 밝혀지겠지만 이 역시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하지 않아 소모적인 논란이 계속 제기될 수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찰이 초기에 그야말로 ‘오합지졸’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며 “음모론은 항상 제기되는 것이지만 유 전 회장 수사와 관련해서는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이 강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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