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2

2014.06.16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나쁜 놈아

연극 ‘썸걸(즈)’

  • 구희언 ‘여성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06-16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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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나쁜 놈아
    시작 전 어셔(를 가장한 배우)가 “공연을 보다 화가 나더라도 물건을 던지지 마라”며 주의를 줄 때 알아챘어야 했다. 주인공에게 이처럼 짜증이 난 것도 오랜만이다. 주인공을 능청스럽게 연기한 남자 배우(정상윤, 최성원)도 이런 감정을 돋우는 데 한몫했다. 극이 별로였다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말길. 여자 관객 처지에서 연극 ‘썸걸(즈)’의 주인공 영민은 문자 그대로 ‘나쁜 놈’이라는 얘기다.

    ‘나…, 결혼해. 그전에 한 번만 만나.’

    작품은 젊고 아름다운 약혼녀와 결혼을 앞둔 잘나가는 소설가 영민이 그동안 사귄 여자들을 차례로 호텔 방으로 불러내는 황당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수줍고 순종적인 첫사랑 상희,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태림, 출판사 대표의 아내이자 담당 교수였던 미숙, 쿨하고 세련된 레지던트 소진. 각양각색의 네 여자는 화려한 영민의 여성 편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썸걸(즈)’는 미국 극작가 겸 연출가 닐 라뷰트의 원작을 번안, 각색한 옴니버스 형태의 작품이다. 장소는 같은 호텔 방으로, 영민과 상희의 이야기가 끝나면 무대가 전환돼 태림과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식이다. 작품을 보고 나오면서 프로그램북을 다시 살폈다. 기획 의도가 궁금했다. 남녀가 처한 기막힌 상황을 통해 사랑이라는 복잡 미묘한 권력관계를 보여주고자 했단다.

    네 여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영민에게 잔인하게 차였다는 점. 상대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지켜주는 게 사랑이라면 영민의 사랑은 0점짜리다. 영민은 연인이 가장 힘들어할 때 곁을 떠났고, 한때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저마다의 사랑을 말하던 여자들은 “사과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다시 상처받는다. 관객 대다수는 아마 여자 쪽에 감정을 더 이입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두가 혼연일체 돼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이 작품은 배우 이석준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하다. 2007년 초연 당시 주인공을 연기한 그는 두 번의 앙코르 공연에도 출연했다. 누구보다 작품을 깊이 이해한 배우답게 이번 시즌 연출에는 배우 시각을 더했다. 그는 “배우 움직임에 집중해 무대장치와 조명을 최소화하고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썸걸(즈)’에서 남녀가 바뀐 버전의 다른 연극 ‘썸걸?(즈)’도 공연 중이다. ‘썸걸(즈)’가 한 남자의 기억 속 ‘어떤 여자들’의 이야기라면, ‘썸걸?(즈)’는 ‘특별한 어떤 여자’의 기억 속 어떤 남자들의 이야기다. 배우 전미도가 발칙하지만 영악한 여주인공 미도를 연기하며 남성 관객의 ‘욕받이 무녀’로 자리매김 중이다. 7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나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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